허공의 집 / 김춘기
녹양동 연립주택 창가 거미집 한 채
밀잠자리 한 마리 거미줄에 양 날개 반듯, 십자가의 예수처럼 박제되어 있다. 다리에 거미줄 감겨 미동도 않는 몸, 찢긴 날개 무늬 선명하다. 어두운 길목 덫을 던진 주인 어디로 갔나. 난간에 걸려있는 시간이 어둠의 귀퉁이 붙들고 흔들린다.
동네 소식 궁금한 바람 진종일 드나들고, 담뱃가게에나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 못 본 채 서로 외면이다. 실핏줄처럼 얽힌 전선들이 오후 내내 진눈깨비 털어내고 있다. 캐럴송이 가로등 불빛 접으며 산동네로 오른다. 평생 집 없이 떠돌던 잠자리, 빈집 한 채 얻어 긴, 긴 겨울 나고 있다.
길 건너 옥탑방 남자 혼자서 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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