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의 여름 여행-베트남, 캄보디아
2004.01.06(화)
오후 4시쯤 일행들이 S중학교로 모여든다. 이들을 실은 버스는 한강의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자유로를 달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철책 아래서 강을 주시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군에 나간 우리 아들의 모습이 되어 애잔하게 다가온다. 평상시 차량운행 중엔 못 보았던 강변의 녹슨 철조망과 허리가 꺾인 들풀들을 내려다보며 차는 한가롭게 김포대교를 넘는다. 철새들은 겨울을 그리면서 강물 위에서 다양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영종대교를 건너서 썰물이 빠져나간 서해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 물이 빠져나간 뻘 위엔 뱀처럼 구불구불 흙탕물이 도랑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비행기가 드디어 밤하늘로 날아오른다. 모니터에서는 제주 상공을 지나 중국의 상하이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화면이 어두운 기내를 밝히고 있었다. 하노이까지의 거리 2,685km, 현재 10,700m 상공. 비행기는 소리의 파도만 일으키며 색시처럼 날고, 또 날아간다. 적도를 향하여 날아가는 비행기는 어둠의 공간 위에 둥둥 떠서 광저우를 지나 하이난섬 위를 지나고 있다. 고도 12,000km, 운항속도 시간당 744km, 맞바람 속도 시간당 133km로 성층권 하부의 오존층을 뚫으며 줄기차게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계는 이제부터 두 시간 뒷걸음 쳐졌다. 드디어 캄캄하게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진 베트남 하노이(河內)에 발을 딛는다. 훅 들어오는 열대의 바람이 내 숨을 잠시 멈추게 한다. BMW택시, Nikon 간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중고버스로 팔려 온 아시아자동차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40km의 밤길 달린다. 연 7%의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베트남. 국제 통화료가 세계 최고라는 나라. 미국을 이긴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자존심이 대단한 그 나라. 캄캄한 왕복 4차선 도로엔 가끔씩 낯선 차만 지날 뿐 한산하였다. 하노이 대우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가방에 넣어간 소주를 몇 잔씩하고 동남아의 첫날밤을 품고 잠을 청한다.
2004.01.07(수)
새벽 다섯 시의 모닝콜에 맞춰 눈을 떴다. 샤워 후 TV를 켜니, 키가 작고 눈썹이 짙은 남방의 아가씨들이 하늘거리는 춤으로 아침을 알린다. 검은 눈동자에 간드러진 목소리로 이국을 알리는 Sahara 방송. 거리엔 오토바이의 행렬이 자동차를 밀어내며 달리고 있다. 월남전 하루의 전사자들보다 오토바이의 사망자가 더 많다는 베트남. 1,000년 고도 하노이엔 지금 100만대의 오토바이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GNP 700달러의 베트남엔 집집마다 사람 수만큼 오토바이가 있다고 한다. 돈이 생기면 달러나 금으로 바꿔서 보관한다는 베트남. 체감물가 세계 10위의 베트남. 인구 8,000만 명의 베트남. 5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엠족이 87%인 베트남. 남북의 길이 2,500km, 폭은 70∼400km인 나라. 북쪽 국경은 주로 험준한 산으로 되어 있고, 남쪽은 길고 긴 강줄기로 되어 있다. 연 강수량이 2,700mm인 물이 풍부한 나라. 베트남 물건의 80%는 중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석유매장량 세계 2위, 쌀 생산량 세계 1위인 나라. 한국의 중고 승용차들이 눈에 들어오고, 개별 화물이라고 쓴 차가 이 나라의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도 오토바이가 다니는 재미난 나라. 베트남의 수탈목적으로 프랑스가 건설한 철도가 하이퐁에서 중국의 운남성까지 달리고 있다. 인구 380만인 베트남 제2의 도시 하노이. 세금을 안 내기 위해 신고하지 않은 사람까지 더하면 인구는 더 불어난다는 도시. 하이퐁시 200만, 호치민시 공식인구 500만명(실제는 700만명), 중부지역의 변방인 다낭은 50만명이라고 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는 기차로 32시간이나 걸리는 좁고 기다란 나라.
1년 3∼4모작한다는 논엔 물을 퍼 올리는 농부의 힘에 겨운 모습이 보인다. 그 논에서는 오리 떼가 자유형으로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모내기한 논에서는 푸르름이 자라 줄을 맞춰 도열하고, 길엔 스카프로 얼굴을 두르고 월남 차양모자를 눌러 쓴 사람들이 평화롭게 오고간다.
신짜오-베트남 말로 '안녕하세요.' 깜언-'감사합니다.' 논두렁과 수로엔 우리나라의 황소를 닮은 베트남의 소들이 몇가닥 밖에 보이지 않는 들풀을 뜯고 있다. 아침 내내 시야를 가렸던 짙은 안개가 걷히고, 이제 멀리 이국의 들판이 우리의 눈 앞에 전개되기 시작한다. 베트남 길거리의 집들은 좁다랗게 3∼4층으로 올려져서 불안하게 서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국가에서 대지를 좁게 분양하였기 때문에 좁고 높게 짓을 수밖에 없는 것이란다. 대개 1층은 식당 또는 다른 용도로 쓰고, 2층부터 주로 주거공간으로 쓰인다고 한다. 산이 없어 논의 중앙에 묘지들이 박혀 있다. 커피와 녹차가 특산물인 베트남, 근친결혼이 많다는 베트남, 처녀들의 몸매가 32, 21, 32라는 베트남. 학력은 높은데 막상 일할 직장이 없다는 베트남. 두안조우섬 리조트 건설을 위해 대만 자본을 비롯한 국제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다는 이 나라. 우리는 지금 대한항공의 선전에 나오는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80km 떨어진 통킹만에 자리잡은 하롱베이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에메랄드빛이 출렁거리는 하롱베이는 조차가 4m 정도라고 한다. 9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의 하나인 하롱베이. 아시아 3대 절경이라는 하롱(下龍: 용이 내린 곳이라는 뜻)베이.
배에 오르니 눈앞엔 우리나라 남해의 다도해를 대량으로 복사해 놓은 듯한 아름다운 바다가 끝없이 사랑의 변주곡을 울리면서 펼쳐지고 있었다. 바다 위를 헤엄치는 배를 따라 섬들의 풍광을 보고, 태양을 보고, 멀리 보이는 크루즈함들을 보고 다시 보낸다. 원래 계획은 천궁동굴을 들를 예정이었으나 가이드의 충고를 듣고 의논하여 사람들이 덜 붐비지만 웅장하다는 항성솟(Hang Sung Sot) 동굴로 발길을 돌렸다. 자연이 조각해 놓은 동굴 안엔 갖가지 형상의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들이 바닥에서 올라오는 석순들과 어울려 멋진 하모니의 협주곡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하수가 거의 없어서 메마른 상태로 갈증을 호소하느라 소리치는 것 같았다. 석회암으로 되어있는 하롱베이의 6,000여 개의 섬엔 발견되지 않은 동굴들이 얼마나 많을까?
넓디넓은 바다에 바람이 모두 다른 곳으로 가버린 듯하다. 바다 위엔 가끔 파도만 고개를 들뿐, 배 위의 소주잔은 미동도 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수 같은 바다가 우리의 주위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섬, 섬들. 그 섬의 전망대에 올라가 하롱베이의 섬들을 내려다본다. 섬들은 각각 배가 되어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베트남의 통일의 영웅 호치민이 방문하기도 했다는 이 전망대엔 모래사장이 여름에는 해수욕장이 되어 사람들을 부른다고 한다. 서양의 두 남녀가 다정하게 백사장을 거닐고 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가을 단풍빛으로 석양이 물든 바다 위에서 점심 때 먹은 새우회가 잘못되었는지 순간 뱃속이 시끄럽다. 그래도 참고 붉게 물드는 하롱베이의 석양을 촬영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태양을 뒤로 밀며 다시 항구에 배를 내려놓고 사이공 하노이 호텔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6시간이나 선경 속에서 노를 저은 바다는 그저 자연의 신비 그 자체였다.
저녁식사 메뉴의 풋고추는 한국 것의 3배 정도는 족히 될 것처럼 크다. 저녁식사 후 호텔까지 동료들과 산책하는 걸음으로 돌아온다. 노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경찰이 서있어 자세히 보니 오토바이의 사고 때문에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경찰도 별 말 없이 서 있고 자기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았다. 다친 사람은 오토바이가 미는 택시에 실려 병원으로 휙 가고 있었다. 호텔 근처의 맥주집에 들러 일행들과 사이공맥주를 시원한 남방의 바람과 뜻도 모를 이야기들과 함께 목젖으로 넘긴다.
2004.01.08(목)
아침에 눈을 뜨고 호텔에서 나오는 식사를 한다. 밥, 채소, 계란 프라이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과바, 오렌지, 망고, 파인애플, 사과 등의 과일로 후식을 하였다. 호텔의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안개를 녹이며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하롱베이로 출발하던 베이짜이항구를 지나 다시 하노이로 가고 있다. 닭발 육수물로 만든 베트남 국수의 맛이 일품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일품이다. 첨가된 국물에 따라 닭고기 쌀국수, 소고기 쌀국수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다시 거리에는 오토바이의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 새우양식의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는 베트남. 화물차의 80%, 버스의 90%가 한국산이라는 베트남. 차창에 보이는 들판의 풍경은 우리나라 6,70년대의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 물지게를 지고 논두렁 위를 걸어가는 농부, 경운기로 논을 갈고 있는 늙은 남자…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눈에 잡힌다.
베트남 최대의 화력발전소가 흰 연기를 펄펄 내뿜으면서 차창으로 다가온다. 하노이 근방의 노천광에서 채굴한 석탄으로 터빈을 돌린다는 발전소, 호치민 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10∼20년 낙후된 하노이를 개발하기 위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건설된 발전소라고 한다. 정부에서는 남쪽이 경제적으로 상대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북쪽으로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꽤나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말하는 베트남을 그 사람들은 비엔남(=越南)이라고 부른다. 베트남은 여자들을 많이 우대하는 나라라고 한다. 실제 베트남 영웅들의 6,70%가 여자들이라고 한다. 전쟁이 나면 스스로 참전하여 위안부 노릇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 사람들은 그 행동을 오히려 성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드디어 하노이 시내의 호치민 광장에 내렸다. 붉은 색 바탕에 노란 별 무늬의 베트남 국기가 펄럭이고, 넓은 광장 위로 사각의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의 아버지라는 호치민의 웅장한 묘가 보인다. 베트남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다. 묘소를 지키는 군인과도 사진을 정답게 찍어본다.
하노이의 재래시장으로 들어갔다. 난전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 옷가게, 각종 공구, 정리되지 않은 풍경들이 정겹게 들어오고, 어려운 삶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이 옛날 우리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모습으로 덧칠이 되고 있었다. 한국타워라는 건물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다, 돼지 불고기에 상추쌈을 싸서. 작은 체구의 베트남 아가씨의 정성스런 접대를 받으면서. 마치 한국의 음식점에서 베트남 아가씨들의 접대를 받는 기분이었다. 식당 앞 매장에는 주로 옷가게인데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공항으로 이동하여 캄보디아 시엠립행 16:50 발 베트남 항공 VN845기에 오른다. 태양을 오른쪽으로 하고 저녁 하늘의 운해가 펼쳐진 남쪽으로 대기권을 뚫는다. 19:30에 시엠립에 도착하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버스로 20분 정도 이동하여 톤레삽 레스토랑에 들어가 압살라 민속쇼를 보면서 저녁식사를 한다. 비행기에서 저녁식사를 한지라 간단히 과일만 먹었다. 젊은 남녀, 그리고 아이들의 화려한 민속 공연이었다. 붉은 색, 또는 푸른 색 옷에 금박 무늬가 박힌 원색들이 남국의 여름햇빛처럼 내 눈으로 파고들었다. 금탑 모양의 의상, 희고 긴 손가락을 뻗어 휘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태국사람이 경영한다는 카마라앙코르 호텔에 들어오니, 시아누크국왕 내외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자야바르만 7세 왕의 제단이 호텔의 현관을 지키고 있었다. 아름다운 호텔에서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우리를 대한다. 호텔카페에서 맥주를 마신다. 하이네겐, 앙코르비어를 마신다. 호텔에서는 한국사람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귀에 익은 한국노래를 흘려 보낸다. 그래도 캄보디아에서는 여기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웨이터에게 얘기하여 캄보디아 고유음악을 틀어달라고 하였다. 맥주를 몇 잔하고 자정쯤에 호텔 밖에 나와 보니, 머리 위의 맑은 하늘엔 보름달이 보인다. 그리고 오리온자리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적도지방 근처에서만 볼 수 있는 밤하늘의 진풍경이었다.
2004.01.09(금)
앙코르의 나라, 폴포트 공산정권이 살육을 저질렀던 끔직한 나라 캄보디아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눈을 떴다. 산보 차 호텔 밖에 나와 주위를 살피니, 근처에서 결혼식 준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몇 장 촬영하고 아침식사를 한 다음 급하게 다시 나가 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여자들은 전통예복을 입고 남자들은 일반복장으로 깨끗하게 입고 나와 손마다 과일을 정성스럽게 비닐에 싸서 들고 줄을 지어 서있다. 앞에는 마을의 어른 같은 분이 어여쁜 아이 들러리와 함께 신랑, 신부의 앞에 서서 의식을 진행하고 시가 행진을 나간다.
캄보디아는 교통법규가 따로 없다고 한다.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다니고 사람들이 그 사이를 피해서 다니는 듯 했다. 시엠립엔 교통신호등이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인사할 때, 불교식으로 손을 모은다. 존경하는 사람일수록 손을 머리 쪽으로 높이 올린다고 한다. 캄보디아 인사 "섭섭하이"는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이다.
자야바르만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고려와 중국의 징기스칸이 있었으며, 그 유명한 징기스칸도 자야바르만 7세가 지배하던 캄보디아는 침공하지 못 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캄보디아의 상징인 사원이 1,000개가 넘는다는 앙코르 유적지를 찾는 날이다. 앙코르톰의 남문에 도착하니, 사원도 보이기 전에 "모자 사세요, 모자 사세요" 캄보디아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코끼리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주의 형상을 땅에다 건축하였다는 앙코르. 나무 건물은 세월에 모두 없어지고, 돌을 하나하나 잘라서 석재건물만 남아있는 앙코르. 인도사람의 우주와 합치된다고 하며, 우주의 바다가 앙코르를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그 안쪽의 신의 세계에 우주의 중심 베르산이 있었다고 한다. 3km 정사각형의 건축물에 오차가 2cm 밖에 안 난다는 정교한 건축의 세계. 이것은 완벽한 신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앙코르와트가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가'라는 뱀이 둘러싸고 있는 입구에 54명의 선신과 54명의 악신들이 지키고 있었다.
라테라이트(땅 속에서는 말랑말랑하고 밖에 나오면 딱딱하다는) 토양 위에 지어진 앙코르톰. 앙코르에 많이 등장하는 'APSARA'라는 단어는 캄보디아의 정부 부서의 하나인 앙코르 전문부서라고 한다. 우주의 중심이었다는 바이언 사원엘 들렀다.캄보디아의 대표급인 30m씩 되는 이엉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크고 단단한 이 나무는 목재로서 뛰어나며, 수액은 기름으로 쓴다고 한다. 기름을 받아내느라 나무마다 커다란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괴물 모습을 하고 있는 스펑나무가 뿌리를 뻗어 사원을 파괴시키고 있었다. 사람의 키와는 비교되지 않는 거대한 뿌리, 돌 위에 씨가 뿌려지면 발아하여 건물의 벽을 타고 내려가 뿌리를 땅에 박는 괴물, 건물의 틈을 벌리며 돌을 밀어내면서 사원을 넘어뜨리고 있었다. 그 수꾸엉나무엔 다시 뱅골보리수나무가 기생하면서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무에 기어다니는 불개미를 입에 넣어보니, 개미산 맛이 시큼하게 혀를 자극한다. 열대지방 소나기 시원한 스콜을 한번 맞고 싶을 정도로 날씨가 더웠다.
점심식사 후 오후엔 앙코르와트를 구경하였다. 1,200년전 세계를 호령하였던 캄보디아. 망고꽃이 피는 계절 무지개 다리 위엔 가난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춘분, 추분날 중앙첨탑 위로 태양이 지나간다는 앙코르와트. 프랑스와 일본이 열대의 태양 아래 땀에 범벅이 되어 앙코르를 복원작업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앙코르와트를 구경 후 근처의 프놈바겡산으로 올랐다. 평원에 펼쳐진 산이었다. 주위의 열대림이 눈부시게 들어와 카메라에 담는다. 산의 서쪽으로 태양을 향하여 사람들이 몰려있다. 구름을 헤치고 태양이 달려온다. 잠시 후 프놈바겡의 일몰광경은 산에 몰려든 사람들의 카메라 필름 속으로 모두모두 스며들고 있었다. 나도 자그마한 소원을 빌며 프놈바겡의 열대일몰을 담고 있었다.
중국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캄보디아의 택시인 오토바이 '툭툭이'를 타고 시내를 일주한 다음, 북한에서 경영하는 평양냉면 집엘 갔다. 진달래빛 원피스를 입은 북한아가씨들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간드러진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가씨들이 음식을 나른다. 배달민족으로서 북한 아가씨들이 '반갑습니다'를 부를 땐 가슴이 찡하였다. 북한 아가씨 최향옥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응하였다. 나는 무대 앞에 나가서 북한아가씨들의 박수를 받으며 노래도 한 곡 불렀다. 음식점 벽에 기어다니는 도마뱀도 볼거리였다.
2004.01.10(토)
아침 일찍 일어나 7시에 톤레삽호수로 향한다. 날씨가 더운 상하의 나라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하여 낮에는 식사 후 낮잠을 즐긴다는 나라. 아침 7시면 출근이 거의 끝난다고 한다.
오토바이 기름을 페트병에 넣어서 파는 나라. 땅값이 제곱미터 당 100만원 선이라는 시엠립, 단독주택 가격이 4,5억이나 한다는 이 곳이 그 옛날 크메르였던 캄보디아왕국이다.
시엠립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중앙선도 없는 길을 따라 버스가 걸어가고 있다. 출렁이는 야자수가 집집마다 부채춤을 춘다. 맨발의 주민들이 버스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먼지가 뽀얀 비포장도로엔 굴곡이 심해 버스도 또한 출렁인다. 시야에 들어오는 시골풍경은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처럼 널브러져 있다. 시야에 하천 둑이 보이고, 다리가 나오고 길 주위엔 원두막 같은 집 속에서 눈만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쉬기도 한다. 아이의 머리에서 이를 잡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옛날 어릴 적의 우리 어머니의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 멀리 호수가 새로 눈에 들어온다. 배를 타는 포구에 다다르니, 오토바이에 두 마리의 돼지를 신음과 함께 싣는 모습이 보인다. 냉장고가 없는 이 나라에선 돼지를 산 채로 옮겨서 잡는다고 한다. 20여 마리의 닭을 끈에 매어 오토바이에 싣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 모두다 새로운 모습들인지라 연신 카메라를 눌러댄다. 호수의 입구 주위는 폐비닐들이 잡초와 뒤엉켜 바람에 나풀거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배에 오른다. 호수 주변의 풍경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호수 주변에 떠 있는 수상가옥이 그들의 삶의 터인 것이다. 흙탕물에 나와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한다. 조그만 노 젓는 배에 바나나, 망고 등 열대과일을 싣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수상학교에는 때에 찌든 아이들이 떠들고 또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도 캄보디아에서는 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상류계급인 것 같다. 수상교회도 보인다. 고개를 드니, 멀리 호수의 수평선이 보인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의 수위를 조절한다는 톤레삽호수. 여기는 호수가 아니라 흙탕물로 이루어진 바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배를 향해 달려오는 열대의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호수 위에 떠있는 수상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배 위에는 호수에서 잡아 올린 고등어 같은 물고기들이 펄떡이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음료수를 한잔씩 마시고 이것저것 살핀다. 배 위의 주방에 들어가 보고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냄비들을 정성스럽게 카메라에 담는다. 주인 아저씨와 사진을 찍고, 주인 아줌마와도 촬영을 하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내 얼굴을 또 카메라에 담는다.
물에서 나서 물에서 살다가 물에서 죽는 사람들. 이들은 전생에 저 먼바다를 떠다니던 물고기들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포구에 와서 땅 위에 발을 내딛는다. 멀리 보이는 농토엔 베트남과는 다르게 뭔가 바쁘게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이 우리나라 6,70년대의 잠에서 깨는 모습이라면, 캄보디아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나라처럼 보인다.
시내 쪽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따라 숨도 안 쉬며 따라오는 여자아이가 손가락 하나로 1달러를 외치며 달려온다. 1달러에 모든 것을 걸고 달리는 목숨, 목숨들…
시내 초입에 들어와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황버섯 가게에 들렀다. 고국에 계신 아버님과 장모님을 생각하면서 일행 몇 명과 함께 상황버섯을 구입했다. 쇼핑몰에서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밖에 나와보니 학교가 보인다. 나는 얼른 학교에 들어섰다. 위에는 흰옷에 짙은 감색 바지와 치마를 입은 꾀죄죄한 아이들. 그래도 눈빛은 맑고, 웃음을 띄며 다가온다.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그 장면을 담는다. 교실에 들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또 한 컷을 찍는다. 교문 앞에는 군것질을 하는 아이들 소리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옆엔 페트병에 오토바이 기름을 담아 파는 사람의 시선이 물끄러미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다시 킬링필드로 유명한 살육 당한 캄보디아 사람들의 유골을 모아놓고 추모하는 와트바이 사원엘 들렀다. 중앙의 뾰족한 첨탑으로 된 건물엔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착각을 하게 하는 수많은 해골들. 그리고 그 사람의 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굴절되어 내 눈으로 들어온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들을 죽여서 저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사원엔 노란색 옷을 입은 승려들이 눈에 보인다. 일행 중 여자가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멀리 떨어져서 찍는다. 캄보디아의 스님들은 여자들과 몸이 닿으면 안 된다고 한다. 머리에 총구멍이 난 해골이 마치 내 머리에 총을 겨누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한다. 그래도 사원 마당엔 천진난만한 동네 아이들이 웃옷을 홀랑 벗고 맨발로 그들만의 어린 시절 추억의 앨범을 만들면서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음식은 매운 고추도 있고, 또 쌀의 찰기가 베트남 것보다 나아서 그런지 먹을 만 했다.
오후엔 다시 바라이호수로 향한다. 톤레삽호수가 수많은 원주민들의 삶을 거느리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바라이호수는 관광객들을 태운 배들만 이따금씩 오고갈 뿐 한산하였다. 호수입구에서는 벌써부터 아이들이 엽서를 팔기 위해 우리들을 쫓아다닌다. 일행은 3대의 배에 나눠 타고 호수로 진입한다. 옛날 앙코르 시절에 만든 인공호수로서 동양 최대라고 한다. 물살을 가르며 호수 가운데 있는 섬에 닻을 내린다. 민가가 몇 집이 있고 거기에도 엽서를 팔기 위해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가이드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국 노래 공연을 시킨다. 아리랑, 학교 종, 송아지, 산토끼, 그리고 2002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와 함께 유명해진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우리 일행은 한 동안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이국에서 동포를 만난 것처럼이나 반가워한다. 가이드는 공연이 끝나자 캄보디아 지폐를 한 장씩 건네준다. 이 애들이 어떻게 이런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아이들이 엽서를 사달라고 벌떼처럼 몰려든다. 바라이호수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이런 일들을 하는 비교적 수준이 있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호수 구경을 하고 시간이 조금 남아 지뢰 박물관엘 들렀다. 발목지뢰, 대전차지뢰, 크레모아, 3.5″로켓포…등이 눈에 들어온다. 지뢰에 다리가 잘린 아이들이 허벅에 누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폴포트 공산치하에서 묻혔던 지뢰들이 아직도 1,000만개가 국토의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다고 한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 한국인 식당에 와서 저녁식사를 한다. 한국식 된장찌개, 상추쌈, 고추장, 일회용 커피… 캄보디아인 종업원들의 극진한 대접… 이제 동남아 방문의 일정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다.
시엠립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하노이행 비행기에 오른다. 다소 피곤하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2 시간쯤 지나 하노이에 다시 내린다. 몇 일 전 보았던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첫날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 보았던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다시 아이쇼핑을 하였다. 4시간 정도의 기다림이 지나고, 새벽 1시쯤 되어서 대한항공에 오른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졸리다. 그대로 잠에 푹 빠진다. 기내식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잠에서 고개도 들지 않는다. 안내 아가씨의 목소리가 인천공항을 알린다. 시간은 다시 두시간을 앞질러 일요일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영하 6도의 고국의 한겨울 바람이 칼끝처럼 옷깃으로 파고들었다. 지도책에서만 보았던 인도차이나반도의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 여행. "전쟁이 끝난 어려운 나라에 태어났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일어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겨울 속의 김포대교를 넘는다. 아침 햇살이 뒹구는 한강의 물비늘이 눈부시다. 성냥곽 같은 신도시 아파트들이 잘 다녀왔느냐고 묻는 것 같다. 가방을 두루루 끌며, 집에 들어서니 아내와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양팔을 서로 내민다. 살가운 가족들과 재회의 포옹을 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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