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가족여행(2003. 8.11 ~ 8.14)
놀이터에서 살던 두 아들이 조선소나무처럼 쑥 자라서 이젠 내가 올려다보면서 눈을 맞춰야 한다. 강릉의 바닷가를 떠나온 지 십 수년만에 피붙이들과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학교생활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가족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만들지 못하여 항상 미안하던 차였다.
지난 주말 백학에서 고교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다소 피곤한 몸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아내와 두 아들과 처남을 태운 자동차는 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自由路의 햇살을 힘차게 뚫고 내달린다. 내부순환로를 지나 남양주시에 들어선다. 눈에 들어오는 맑은 공기가 벌써부터 상큼하게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은 신이 났는지 종알거리고, 아내의 눈빛은 그믐날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늘씬하게 뻗은 경춘가도의 자태가 북한강과 어우러져 우리 일행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얗게 물거품을 쏟아내는 청평댐이 보이고, 상천역이 보이고, 남이섬으로 들어서는 길목엔 10여 년 전 내가 근무했던 가평종합고등학교의 느티나무 울창한 교정이 양팔을 흔들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드디어 경강대교를 건너면서 강원도를 안내하는 표지가 나온다. 삼악산, 강촌을 지나 의암댐을 뒤로하고, 호반의 도시 춘천에 도착하였다. 시내에 들어가 공용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리고 명동골목의 춘천 닭갈비집의 원조라는 ‘시골 닭갈비집’으로 들어갔다. 가평에 살 때 가끔 춘천바람을 쐰 이후, 오랜만에 춘천을 깔고 앉은 것이었다. 빨간색 양념을 듬뿍 바른 윤기 흐르는 토종닭, 거기에 양배추를 비롯한 갖가지 채소가 들어가고, 또 우리 식구들의 즐거운 이야기가 들어가고... 그것을 상추에 싸서 먹는 맛은 가히 천하일품이었다. 옆자리엔 대만에서 온 여행객들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우리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있었다. 아! 이것은 국제적인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지 더욱 맛이 있었다. 음식점에서 나와보니, 이 일대가 닭갈비 촌이었다.
시내를 산책하며 햇빛에 달궈진 도시의 공기를 마시고, 다시 차에 오른다. 자동차는 소양강을 지나 양구 쪽으로 향한다. 굽이굽이 강변을 따라 난 국도는 마치 뱀이 기어간 것처럼 이어졌고, 오후의 여름햇살은 차창을 소나기처럼 세게 두드린다. 잠시 차를 세우고 벼랑 아래 흐르고 있는 소양강을 내려다본다. 녹즙을 뿌려놓은 것 같은 강물 위에 펼쳐지는 보석처럼 현란한 물비늘이 눈부시게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덩달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강원도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인제를 지나 원통을 지나, 자동차는 용대리를 지나고 있었다. 설악의 물소리가 유리알처럼 맑게 귓가로 흐르고, 8월의 녹음은 도시의 생활에 찌든 온몸을 말끔히 씻어주는 듯 하였다.
잠시 차에서 내려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근다. 온몸의 뼈마디 마디마다 투명하게 설악의 싱그러움이 파고들었다. 자동차는 어언 미시령 정상에 다다른다. 동해의 높새바람이 만든 산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차창마다 눈부시게 석양빛이 반사되고, 구름 속의 울산바위는 모두 일어나 손을 흔들며 우리들을 부르는 것 같았다. 온몸 가득 설악의 여름을 들어부으며, 속초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속초에 사는 큰동서네 집에 도착하였다. 장모님도 와 계시고, 막내 동서네 가족도 전라도에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서, 처제, 그리고 조카들과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처럼 반갑게 상봉하였다. 저녁식사는 싱싱한 동해 바다의 오징어회를 소주와 함께 하였다. 서울에서 마시던 한잔 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맛이었다. 이런저런 얘기와 함께 동서와 바둑을 몇 판을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떠서 새벽바람을 가르며 막내동서와 함께 청초호와 영랑호에 들러 아침해가 호수에 담겨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차를 가볍게 몰아 설악산으로 향하였다. 한여름의 땡볕더위가 땅에서 솟아오른다.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설악에 몸을 담근다. 신흥사에선 한 생명이 쓸쓸히 떠나고 난 뒤, 유품을 태우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노스님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 하늘로 높이, 높이 오르고 있었다. 단풍나무 숲을 지나, 전나무, 상수리나무, 오리나무, 그리고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드디어 흔들바위에 도착하였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울산바위로 오른다. 물에 씻어 얹어놓은 듯한 뽀얀 빛깔의 바위들이 夏安居에 빠진 부처님처럼 여기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길은 고등학교 때 까까머리로 수학여행 때 올라가 보고, 이제 32년 만에 다시 오르는 길이다. 돌계단을 지나고, 철계단을 다시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암벽을 오르고 또 오른다. 가파른 철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만 아래쪽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제는 외아들이 안 보인다고 안절부절한다. 더위를 몰아 내쉬며 나는 맨 나중 정상에 도달하였다. 그렇게 걱정하던 막내조카는 혼자 올라와 있었다.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여름 설악! 그 위에 서있는 나는 마치 신선이나 된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까마득한 지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바위 아래에서 펼쳐지는 신록의 바다가 동해바다를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반대방향으로 보이는 대청봉, 소청봉이 또 다른 바깥 세상 같았다. 바위를 배경으로, 나무를 배경으로 그리고 하늘을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울산바위 정상의 바위에 가려진 응달엔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마치 강남에 아파트라도 분양 받은 것처럼 행복하게 동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얼굴을 담그고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내려온다. 겁먹은 모습으로 한 손은 난간을 잡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내려온다.
흔들바위에 내려와서 일행들을 만났다. 김밥을 먹는다. 정말 시장이 반찬이었다. 음료수 한잔과 먹는 식사는 珍羞盛饌보다 더 맛있었다, 꿀맛이었다. 흔들바위를 밀어보고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온다. 중간에 계곡에서 찬물이 양발을 담그고 속세의 찌든 때를 벗기기도 하였다. 안도현의 시에 나오는 여름이 뜨거워 우는 매미 소리가 쏘프라노, 앨토의 합창처럼 들리고 있었다. 설악산을 뒤로하고 차를 몰아 청간정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호젓한 해수욕장이었다. 나는 바다에 나가 잠시 다리를 적시고 파도가 부서트리는 모래성을 만들어보기도 하였다. 옛날처럼 동해바다는 오늘도 싱싱하게 내게로 와 안기었다. 시내를 거쳐 동명항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저녁바다가 황홀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멀리 난바다에서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집어등을 밝히고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우리는 장사동에 있는 횟집거리로 향하였다. 이름도 썰렁한 ‘남북횟집’. 4집 15명의 대식구들이 모둠회를 잔뜩 시켰다. 나는 막내둥이 남규가 대학에 들어가서 장학생이 된 기념으로 내가 저녁을 사겠다고 선언하였다. 광어, 놀래미, 우럭, 오징어... 초장에 찍어서 먹는 그 맛이 점점 온몸 전체를 자극하였다. 거기에 곁들이는 소주 맛은 錦上添花였다. 실컷 배를 채우고 횟집을 나선다. 음식점에서 차를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여 영랑호를 지나서 집까지 걸어오기로 하였다. 뜨문뜨문 켜져 있는 가로등을 따라 호수의 주위를 따라 식구들이 정겹게 걷는다. 불빛 아래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날쌔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잠깐이면 도달할 것 같던 길이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범바위를 지날 땐, 새벽 한시가 다 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야단이었다. 나도 술이 거나하게 올라 졸면서 걷고 또 걸었다. 시내에 들어와 겨우 택시를 붙잡아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났다. 어제 게으름으로 일출 장면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막내동서와 남인이, 남규, 그리고 조카와 함께 등대전망대로 향했다. 동해의 불그스레한 새벽바다엔 구름이 약간 끼어 있었고, 벌써 사람들이 등대 위에 올라와 동쪽으로 비디오카메라를 대고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바다가 붉은 태양을 하늘 위로 서서히 밀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붉은 타조알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일출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동서는 열심히 캠코더에 일출장면을 담고 있었다. 30여 년 전 고교시절 경포대에서 본 일출의 느낌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땐, 해가 중천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느지막키 아침 식사를 한 후 시내를 거쳐 양양 쪽에 있는 정암리 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조카들은 바다에 들어가 웃음을 활짝 펼치고 즐겁게 파도와 어울리고 있었다. 튜브를 타고 바닷물에 출렁이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장모님은 아이들이 혹시 물에라도 빠질까봐 걱정을 하셨다. 잠시 후 처남은 장모님과 남인이 그리고 조카들을 데리고 잠수함을 태우러 갔다. 해수욕장에서는 바나나보트가 동해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원색의 젊음이 태평양과 연결된 동해바다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점심을 대신해서 해수욕장에서 먹는 컵라면 맛,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이곳은 군사지역인지라 일몰 전에, 해수욕객들은 철수해야만 했다. 저녁식사는 동서가 잘 아는 시내의 고깃집으로 가서 때를 넘긴 상어처럼 갈비를 뜯었다. 목을 타고 넘는 소주의 감칠맛은 역시 최고였다. 늦은 밤 시내를 산책하며 집으로 와서 꿈의 바다를 또 건넜다.
이제 매캐한 도시로 돌아 가야할 날이 왔다.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오늘도 날씨가 아스팔트 바닥처럼 뜨겁다. 장모님과 처남, 그리고 막내동서네 식구들은 울진 성류굴을 거쳐서 강원도 남부지방을 거쳐 서울로 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미리 계획한대로 백담사를 들르기 위하여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미시령을 오른다. 왼쪽으로 우뚝 솟은 울산바위를 올려다보면서 자동차는 한바퀴, 한바퀴씩 굴리면서 힘겹게 고개를 오른다. 미시령 정상에서 다시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다. 그날따라 안개는 간데 없고 짓푸른 동해바다가 아쉬운 듯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자동차의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며 다시 인제 쪽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미 계획에 잡은 대로 용대리를 지나 백담사로 향했다. 주차장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관리소에서 표를 끊어 놓고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소공원에서 백담사 입구까지 4km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3km 정도 걸어가야 백담사가 나온다고 한다. 백담사 입구에서 내려서 계곡으로 난 시멘트 길을 걷는다. 푸른 숲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드디어 백담사를 알리는 정문이 보인다. 卍海 스님 겸 詩人이 修行하면서 조선불교유신론, 그리고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와 같은 주옥같은 시를 남긴 명사찰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속죄하려 머물렀던 그 곳엔 만해박물관, 만해 동상, 시비... 등 만해 한용운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1년에 한번씩 만해축전이 열리는 곳이 이곳이다. 아내는 설악산을 오른 후유증으로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백담사에서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기도 하였다.
백담사 구경이 끝나고 소공원 주차장에서 다시 차를 몰고 설악산을 빠져 나온다. 원통을 지나 인제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기린 농협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든 두부찌개, 오랜만에 먹어보는 어머니의 맛이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운전대를 잡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홍천을 지날 때쯤, 큰아들 남인이에게 잠시 운전을 하도록 하였다. 군대시절 105mm 곡사포로 매봉산을 향해 쏘며 젊음을 불태웠던 양덕원리를 지난다. 잠을 깨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자동차는 양평을 지나 한강을 따라 뻗은 올림픽대로에 진입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퇴근시간에다, 휴가에서 돌아오는 차량들 때문인지, 앞의 자동차가 계속 브레이크 등을 밝히고 있다. 내 자동차의 연료도 거의 떨어져가고, 날은 어두워가고 있었다.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또 밟으면 여의도를 지나면서 길이 뚫렸다. 가양대교를 지나 자유로에 진입하였을 때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지고 있었다. 이산포 인터체인지를 통과하여 일산에 들어왔다. 내일 벌초 준비로 농수산물센터에 들러 준비물을 사 가지고 집에 도착하였을 땐, 온 가족이 파김치처럼 퍼져 있었다. 10년 만에 만든 한 권의 앨범 같은 우리 가족의 3박4일간의 여행이었다.
(2003. 8.11 ~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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