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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아내와 제주도 겨울말미 여행(제주 이주의 계기가 된 여행)

by 광적 2013. 2. 28.

 

아내와 제주도 겨울말미 여행

 

2013. 2. 24()

지난 겨울은 철저히 춥고, 온 나라가 눈 잔치를 벌인 별난 계절이었다.

졸업식, 2학기 종업식을 끝내고 학생들은 교실에 없는 2월 방학기간이다. 하지만 교장이란 자리는 신학년도 준비관계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래도 억지로 시간을 쪼개어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을 만들었다.

짐을 챙겨 의정부 신천병원 앞에서 김포공항에 3700번 버스에 오른다. 겨울 빛이 아직도 하얗게 남아있는 도봉산을 바라보며, 아내의 손을 잡는다. 송추 장흥 고양동 원당 능곡을 지나 버스는 행주대교를 건넌다. 파시 때의 항구처럼 가득하던 한강의 얼음이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의외로 빨리 달려 그런지 비행기의 출발시간(14:40)보다 2시간 이상 일찍 공항에 들어선다. 아내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이스타항공 표를 바로 끊는다. 나는 아내와 건물 밖으로 나와 발걸음을 맞추며 햇빛샤워를 한다. 아직 남아있는 겨울하늘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장 찍고, 여유를 부려본다.

비행기에 오른다. 맑은 눈의 스튜어디스와 짧은 웃음을 마주친다. 이륙한 비행기가 구름 위로 솟아오른다. 우리는 새가 아니지만, 사람이기에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날씨는 흐림이다. 그러나 구름 위의 세상은 오늘도 햇빛으로 가득 차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봄은 이미 와있었다. 렌트카의 창문을 열고, 남녘의 봄을 마신다. 바람이 푹신푹신하다. 1135번 도로 위를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질주한다. 풋풋한 공기, 물로 씻은 것 같은 하늘, 들판에 이미 찾아온 봄의 색깔. 역시 제주도는 계절을 미리 맞이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우리 부부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에 내려놓는다. 앞으로 5년쯤 후 퇴직하면 와서 살고 싶은 곳이다.

재작년에 장비를 대어 약간 손을 보고, 황칠나무를 심어놓았다. 그러나 밭은 주인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갈색의 잡초들이 가슴께만큼까지 우거져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서 제주밀감 몇 개를 따며, 동네를 살핀다. 밭가의 해송은 아직도 늠름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마을의 보호수인 팽나무와 해송이 우뚝 솟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돌담, 낮은 지붕, 밀감, 동백나무가 우리 곁을 지난다. 산방산을 배경 삼아 아내를 모델로 사진을 연방 찍는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 남자분이 지나간다. 아내가 즉시 그 남자를 향해 이 동네에 사세요?’하고 반응을 살핀다. 어딘가로 향하던 그 분은 즉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이 동네 주민이라며 커피 한 잔 하자고, 우리 부부를 집으로 안내한다.

염치없이 우리는 그 남자의 집에 들어선다. 제주도엘 여러 번 왔지만, 가정방문의 첫 경험이었다. 주인아줌마까지 방에서 나와 우리를 맞이한다. 거실에 들어서자 어서 앉으라고,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부산에서 왔다며 어떤 아줌마가 건넛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아줌마와 같은 나이의 범띠 여자분들(그들의 말로 갑장)이 우르르 모였다. 거기에는 서울에서 내려와 정착했다는 분도 있었다.

홍원권 이장님 부부 그리고 동네 분들과

동네 이장, 그리고 새마을 지도자를 했던 주인 남자는 동네 농수로공사 감사관계로 잠시 외출을 한다. 제주밀감, 한라봉이 나온다. 백세주에 떡국까지 완전히 제주에서 VIP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주인장은 우리에게 특별히 숙소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하루 묵어서 가란다.

건넛방에서 나온 부산 아줌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분은 부산에서 건축업을 하는 부군과 함께 당신의 자식 둘을 키웠단다. 그리고 다시 어려운 아이들 두 명을 입양하여 키우신 분이었다. 입양한 아이 중 큰 아이는 머리가 좋지 않고, 키까지 작아 부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입양한 아들의 학업을 위하여 함께 대학을 다시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주위 분들에게 부탁하여 취직을 시켰단다. 지금은 빌라까지 사주어 일본 며느리와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단다.

둘째 아이는 이곳 덕수초등학교에서 데려간 아이란다. 도벽뿐만 아니라 많은 문제를 가진 아이였다고 한다. 그의 생부모까지는 물론 동네에서도 내놓은 아이였다니까 말이다. 그래도 끈질기게 노력하며 사랑으로 키운 결과, 지금은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대단한 분이시다. 경의를 표한다. 세상이 이런 분 때문에 진정 따뜻한 것이다.

술잔이 오간다. 떡국까지 먹는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런 대접을 한다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뉴스거리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제주도 분들도 양반에 합류시켜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복을 안고 다니는 예쁜 내 아내의 덕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주인남자분이 돌아오고, 다시 술잔이 돌아간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동방예의지국의 인심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줌마들은 내일 아침 육지로 여행을 간단다. 부산을 유람하고, 영덕에 가서 대게를 먹고, 울진의 백암온천을 거쳐 양양까지 다녀오는 계획이란다. 주인이 안내해 주는 방으로 들어선다. 휘영청 밝아야 할 제주의 보름달은 구름 속에서만 오갔다. 주인의 배려 속에 보일러를 올리고, 따뜻하게 꿈속으로 들어갔다.

 

2013. 2. 25()

아침 06:00에 떠나는 아줌마들을 배웅하였다. 어떤 아줌마가 온천 할인표까지 가져다주었다. 방에 들어와서 아내가 달력을 한 장 뗀다. 그리고 감사의 편지를 쓴다. ‘즐거웠다구, 고마웠다구, 제주의 훈훈한 인심에 감격했다고 말이다.

잠든 주인 남자 분께 인사도 못하고 나왔다. 내비게이션을 조정하고, 산방산 탄산온천으로 간다. 병을 고쳤다는 사람, 건강이 좋아졌다는 사람들이 많단다. 물 솟아오르는 소리가 비둘기 우는 소리를 닮았다고 鳩鳴水라고도 하기도 하고, 이곳에서 솟아오르는 물로 주민이 목숨을 건졌다고 求命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산방산 탄산온천이다. 탄산이 몸에 흡수되면 혈관이 확장하여 혈액순환을 좋게 한단다.

사우나를 하고, 찜질방에 잠깐 들러 우선 아내에게 가파도로 가자고 했다. 아내도 좋단다. 자동차로 모슬포항으로 향했다. 아침식사, 아내는 전복죽으로 나는 조기매운탕을 시켰다. 싱싱한 생선이라 그런지 아침밥이 입맛을 당긴다.

식사 후 포구에서 낚시질하는 모습, 갈매기가 노는 모습을 본다. 집어등이 다닥다닥 붙은 어선이 내 눈을 자극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사람들을 무심코 따라가다가 마라도로 가는 배에 오를 뻔 했다. 다시 안내를 받고, 가파도행 배에 오른다. 갚아도 그만 말아도 그만인 두 섬 중, 가파도로 간다.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로 몇 번이나 자장면을 먹으러 갈 때, 옆을 지나치던 섬. 어떤 섬인지 궁금했던 곳이다.

오늘은 마침 제18대 박근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취임식이 TV를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아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바다의 풍광과 대통령이 취임하는 모습에 번갈아 눈을 돌린다. 가파도로 가는 배가 산방산의 주위를 도는 것 같았다. 20여 분을 지나 가파도(면적 0.84km2, 134세대, 인구 292, 14개반)에 도착한다.

가파도에서 아내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다는 섬, 친환경 명품섬, 탄소 없는 섬, 행정안전부 선정 10대 명품섬이라는 글귀들이 보인다. 실은 탄소가 없으면, 식물이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데쓸데없는 상상을 해보면서 가파도의 상동 선착장에 진입한다.

돌하루방, 물통을 멘 할망, 연자방아 등, 현무암으로 된 조각들이 나를 반긴다. 마을에 들어서니, 낮은 지붕에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이 정겹다. 바람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람을 잘 보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돌담, 마을은 온통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가파도의 늦겨울 청보리밭, 멀리 한라산과 산방산 정상이 보인다

돌담 위에는 용설란, 넓적 선인장이 머리를 내밀고 집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아직 육지에는 봄이 오지 않았지만, 여기 가파도의 들판엔 청보리가 미리 봄을 불러다 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내와 번갈아 사진을 찍는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제주도의 산방산과 한라산이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이곳 가파도엔 300여명 주민이 살고 있다지만,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곳에 구경 온 사람들만 가끔씩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갈 뿐이다. 마라도에서 느끼지 못한 남국의 낭만이 여기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샛노란 점퍼를 입고 어린 아들과 여유를 즐기는 아낙이 보인다. 혼자 사진을 찍으며 고독과 함께 걷는 사람도 곁을 지난다. 그들과 물허벅을 등에 멘 아줌마 조각상 근처의 두레박우물 속을 내려다본다. 제주에 올 때마다 옛 추억이 많이 머릿속을 채운다.

청보리밭이 계속 펼쳐진다. 돌담이 길 옆에 계속 이어져있다. 코끝을 스치는 말랑말랑한 바람은 신선하기 이룰 데 없었다. 멀리 풍력발전기 날개가 도는 둥 마는 둥이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산방산과 한라산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주인 없는 한적한 집에 들렀다. 환풍기와 선풍기 날개를 나무에 매달아 바람에 의해 바랑개비를 만든 것이 흥미로웠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였다. 집 주위에 돌을 쌓은 집담, 밭 주위에 쌓은 밭담 청색 푯말이 보인다. 청보리밭 B 코스 팻말이 우리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자꾸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밭 가운데에 조상을 모신 묘가 보인다. 검은 돌로 만든 비석만 달랑 박혀 소박한 모습이 특이하다. 남쪽으로 마라도가 보인다. 태평양을 마주보고 우리를 지켜주는 초병의 섬이었다.

내가 청보리밭에서 점프를 하자, 아내는 우습다며 사진을 찍는다. 아내도 점프를 한다. 얼굴에 목도리가 날려서 찍힌 사진의 모습이 꼭 귀신이 춤추는 것 같았다.

선사시대의 유적이라는 고인돌 군락지에 다다른다. 큰 돌을 괴어놓은 것이 사람이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자연적인 것 같기도 하다. 가파도교회 가는 길이라는 정사각형의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까지 기독교가 들어와 있었다.

가파도 보건진료소 건물 앞에 닿았다. 현무암을 다닥다닥 붙여 만든 검은 색깔의 벽, 그 위엔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는 제주특별자치시 깃발이 힘차게 나부낀다. 다시 청보리밭에 들어가 이런저런 자세를 취한다.

멀리 방풍림 속으로 학교가 보인다. 회을공원, 순국장병충혼비를 지나자, ‘백두산 끝 줄기 청량한 바람으로 일어서는 섬, 작게 빛나는 꿈 마당 하나 여기 펼쳐 있으니, 사랑 꽃 피우는 섬마을 학교라는 김용길 시인이 지은 시비가 보인다. 여기가 가파초등학교이다. 초등학교 앞에도 돌하루방, 물허벅을 진 여인의 현무암 조각상이 보인다.

가파초등학교

교문 안에는 하늘로 길게 목을 뺀 야자나무 대 여섯 그루가 교정에 서서 마라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장은 천연 잔디구장, 현관에서는함께하는 교육, 즐거운 학교라는 글귀가 내 눈에 들어온다. 아직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화단에는 키 작은 열대 화초들이 활짝 웃으며 다양한 얼굴을 내민다.

벽화가 나를 동심의 세계로 집어넣는다.‘해바라기, 바랑개비를 들고 날아다니는 아이, 엄마와 함께 화단에 물주는 아이, 꽃과 입 맞추는 나비, 잠자리를 잡는 아이, 황소를 탄 소녀·그 옆에 따라가는 남동생, 일곱 명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노니는 모습, 무궁화, 나비를 쫓아다니는 아이들, 물뿌리개를 들고 수레에 올라 꽃밭으로 가는 아이정겨운 모습이다. 나는 아내와 그림을 배경으로 카메라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아내는 벽화 속을 나비를 잡으려고 한다. 내가 그 모습을 얼른 찍었다. 전교생 6명에 교장, 그리고 평교사 2, 영양교사, 유치원교사가 1명씩 근무한다는 학교. 이곳이 바로 스쿨파라다이스였다. 눈 시리게 아름다운 모습이 나를 자꾸 붙들고 있었다.

아내는 이런 학교에 와서 근무하고 싶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교정에는 그네, 시소, 철봉, 그리고탄소 없는 섬, 2030’이라는 특이한 풍차가 달린 탑도 보였다.

교문을 나서니, 마을을 끼고 청보리밭이 펼쳐졌다. 대원사라는 절도 보인다. 해수관세음보살상이라는 현무암으로 만든 야외 부처님이 우뚝 서계시다. 하늘에게 경배를 하듯 마을마다 집들은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가파도에는 17만평의 보리밭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바람이 불어 가파도는 바람의 섬이라고도 한다. 2005년 완공되었다는 가파도 해수담수화시설을 본다. 물이 귀한 곳이니, 이런 것도 필요하리라. 이곳에서는 하루 150톤의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해수담수화시설은 세계적이라는 말도 매스컴에서 들었다. 해외에 플랜트수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파도 내연발전소도 보인다. 가파도엔 1977년부터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며, 이 발전소는 19923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다시 청보리밭으로 향한다. 복잡한 육지에 살다가 가파도에 오니,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생각난다. 이곳이 바로 요즘 말하는 슬로우시티의 전형이었다. 아내와 손잡고, 바닷가를 걷는다. 여전히 격렬한 파도는 봄을 부르고 있었다. 해풍을 맞으며, 아내와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만세를 부르고, 건방진 폼도 잡아보고, 별 쇼를 다 해본다.

넓적 선인장이 제주가 포근하지만, 바람이 많은 섬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바닷가에서 가족끼리 모여 봄을 기다리는 가마우지의 모습을 줌으로 잡아당겨 카메라에 저장한다. 청보리맛집-춘자네 집이라는 간판이 나를 또 동심의 세계로 집어넣는다.

가파도 상동 대합실

상동포구에 다시 돌아왔다. 아내와 달걀과 어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청보리섬, 탄소 제로 섬, 색깔이 있는 디자인이 있는 섬이라는 문구가 우리를 맞이하며, 다음에 또 가파도를 방문하라고,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섬에 들어올 때보다는 작은 배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아침보다 날씨는 거칠어졌고 파도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모슬포에서 렌트카에 올라 표선면 가시리로 향한다. 엄청 졸리다. 내 뺨을 스스로 때리며, 정신을 차린다. 아내도 옆에서 내게 잠을 창문 밖으로 내보내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동차는 중문관광단지를 지나 서귀포를 지나 자동차는 동쪽으로 질주한다. 길가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빵집이 보인다. 아내가 따끈한 단팥빵을 사다가 내 입에 넣어준다.

산간마을엔 여기저기 무밭이 보인다. 육지에서 먹던 달콤한 겨울의 무가 여기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가시리 우리 밭 모습

자동차가 향하는 곳, 가시리엔 우리에게 연고가 있는 밭이 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시원치 않은 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바퀴를 빙빙 돌았다. 개가 시끄럽게 짖는 집에 들어가 마을 분을 만났다. 그리고 그 분이 번지수를 듣고 대강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결국은 밭을 찾을 수가 있었다. 여기도 경작을 하지 않아 잡초들로만 독립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산방산탄산온천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반납관계로 제주로 향하였다. 97번 중산간도로를 관통하여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가로등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자동차를 반납하고, 용두암해수탕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인근 식당에서 갈치조림이다.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이라 그런지 엄청 입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소화를 시킬 겸, 바닷가를 거닌다.

용두암에서 야간 촬영

파도소리가 협주곡처럼 내 귀 주위를 맴돈다. 제주시의 야경을 눈에 넣는다. 아내와의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용두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밤바다를 바라보며 아내와 인생 후반부를 설계하였다.

용두암해수탕에 여장을 풀고, 사우나를 마친 다음 찜질방에서 아내와 꿈나라로 향한다.

 

2013. 2. 26()

다시 아침이다. 오늘은 육지로 돌아가는 날. 사우나를 끝낸 다음, 해수탕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나는 옥돔정식, 아내는 미역국. 제주에서의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하긴, 육지에서도 그렇지만.

제주공항에서 한 컷

아침 840분 비행기를 타야한다. 빗방울이 찔끔찔끔 내린다. 시간이 촉박했다. 콜택시를 불렀는데도 금방 도착하지 않는다. 다른 택시에 합승을 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타항공에 몸을 실었다. 공항을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구름 위의 세상은 살판난 햇빛들이 모두 모여 이불 같은 평원을 만들고 온통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바로 아내와 함께 꿈속을 헤맸다. 눈을 떴을 때는 김포공항이었다. 제주도와는 비교할 수 없게 쌀쌀한 공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의정부행 버스가 지나가버린다. 20여분 쯤 지나고 다시 버스가 왔다. 아내와 나는 또 잠으로 빠져들었다. 버스는 어느덧 의정부에 도착하여 우리를 내려놓았다.

겨울 속의 봄을 느낀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방학 때, 남해도의 보리암, 울산의 대왕암을 다녀오고, 다시 아내와 함께한 겨울의 앨범 몇 장을 장식한 제주의 인심을 마음껏 느낀 아름다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