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오, 남춘천역 / 김춘기
도심의 등을 닦아주던 소나기가
철길을 가로질러 교외로 달려갔다.
전철역을 빠져 나온 여자들
핸드백 지퍼가 열리고
삼단양산이 모두 얼굴을 내밀며
오륜 빛깔의 꽃을 하나씩 피운다.
공원의 느티나무는
팔을 최대한 벌려 다시 그늘을 만들고
건달들을 불러내어 내기바둑을 둔다.
느티나무 우듬지에서
카카오톡 하던 바람이 얼른 뛰어내려
환경미화원의 목과 이마의
땀방울을 말끔히 씻어준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여대생들의 하이힐이
미니 태양을 달고, 맥도널드 가게로
미용실로 뛰어가는 하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교회의 지붕이
금빛 십자가로
여름 하늘에 똥침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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