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캐시밀론 공장/김춘기
늦은 아침 출근길
밤새 쌓인 눈이 가루비누 거품처럼 풀리는 거리. 아침 안개가 온기 실은 바람을 불러 폐업 직전 칼국숫집 간판을 감싸고, 버스터미널 진입로 녹슨 맨홀 뚜껑을 씻어내고, 전봇대에 붙은 구직광고 스티커를 말끔히 제거하네
비상등을 켠 자동차들은 잠시 멈춰 그 광경을 차창 안으로 끌어당기며 교대로 광화문교차로를 빠져나가지.
설악산 대청봉 폭설 소식이 교보빌딩 위 전광판에서 붉은빛 두 칸짜리 기차가 되어 터널 속으로 진입하네
정오가 되기 전 대청소를 끝낸 도시 하늘은 유리창처럼 투명해지겠지만, 밤이 되면 하늘은 장막을 치고 또, 구름과 함께 야간작업하겠지
새로 개업한 신발가게 지붕에도, 유치원 미끄럼틀 위에도, 빌딩 뒤켠 바람광장에 누운 노숙인 낡은 천막에도 솜옷을 입히기 위해 하늘로 가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밤새도록 하늘 위에다 캐시밀론 공장을 차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