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으로 가다.
2017.11.19.(일) 인천공항 출발→계림
어제는 당질인 조카 남원이의 늦둥이 주호의 첫돌잔치이다. 아내와 함께 초청받아 파주의 서원밸리에 갔다. 사촌누님들을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이젠 80을 넘은 할머니가 되어 계셨다. 저녁때는 내 생일이라고 큰 아들 남인이네 식구들, 그리고 막둥이 남규와 백석의 마늘보쌈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제주에서 미라클합창단 정기연주회 때 함께 하고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앉은 좋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중국의 계림으로 떠나는 날. 아침의 날씨는 기온이 영하 10℃쯤을 가리킨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콧물이 자꾸 흐른다. 공항에서 여행사 직원과의 미팅시간 18시를 맞추기 위해 15:30쯤 집에서 출발하였다. 기산리고개를 넘어 마두령을 지나 송추의 임진강 추어탕집에 승용차를 대고, 인천공항행 7200번 버스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하니 17시, 3층 M카운터에서 참좋은여행사 관계자를 만났다. 나는 아내를 포함한 6명의 단체여권을 소지하고 일행 14명과 만나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그들은 자매부부, 어머니/여동생을 동행한 부부, 그리고 다른 부부 2쌍 등이 이번 여행을 함께한다.
아내는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산다. 20:25 탑승예정 비행기가 20:40으로 지연되었다. 내가 출출할까봐 걱정된다고 한과를 사온다. 드디어 21;00 아시아나항공 OZ325기가 별을 향해 하늘로 오른다. 휘황찬란한 인천공항의 야경이 내 눈을 찌른다. 바로 황해바다로 진입한 비행기가 흔들린다. 콧물이 시냇물 흉내를 낸다.
옆자리의 하얀 수염 80세 노인과 눈이 마주친다. 별명은 털보, 산악회 활동을 많이 하셨단다. 오늘도 4시간 관악산 등반을 하고 이곳에 오셨단다. 새벽 5시면 눈을 떠 2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주말마다 산행을 하며 몸을 가꾸신단다. 2달 전 사업을 정리하고 이제부터 여행을 다니신단다. 이번 여행은 10명의 가족과 함께 출발 중이라신다. 실은 12명이었는데, 부부 1쌍은 남편의 병원 응급실 행으로 참여하지 못했단다.
어르신과 등산, 인생, 사업얘기 등 이런저런 하늘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어르신 왈, 다우돌핀이라는 물질은 엔돌핀의 1000배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산행을 통하여 좋은 풍경과 만나거나 어떤 일도 크게 감동했을 때 많이 나오는 호르몬이란다. 노인을 뵙고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이어폰을 꽂고 영화 속으로 빠져 있었다.
2017.11.25.(월) 관암동굴→ 이강유람→ 양삭행, 세외도원→ 서가재래시장→ 인상감상
한국시간 01:24분 구이린 량장국제공항에 발을 디딘다. 나는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려 중국의 시간 00시 24분으로 이미 맞추어 놓았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키가 자르마한 아가씨 리나(이나희)가 우리를 맞이한다. 조선족 처녀로 부모님은 한국에서 일하고, 그녀는 헤리룽장성 하얼빈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떵 따꺼(따꺼: 형님, 따제: 여자 의미)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40여분을 달려 계림시내 금수만호텔에서 첫 밤을 맞이한다.
여기는 30만 그루의 계수나무가 자라는 계림, 중국말로 구이린이다. 계수나무는 4가지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금빛의 金桂, 붉은 빛의 丹桂, 흰색의 銀桂, 그리고 사철계로 나뉘며, 열매는 쥐똥모양이라고 한다는 자세히 설명을 곁들여주었다.
아침 6시쯤 눈을 떴다. 샤워 후 식당에 들렀으나 우리 부부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어제 방 열쇠를 받을 때 식권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가이드도 눈에 띄지 않고, 식당 사람들과 얘기도 통하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중국 아줌마가 그냥 식사를 하라고 손짓을 보낸다. 도착부터 내 꼴이 우스워졌다.
식사 후 호텔 창을 여니, 둥글둥글 산수화 닮은 풍광이 보이고, 도시가 보인다. 아내와 함께 짐을 꾸려 나가니 일행이 보이고 가이드 리나가 얼굴을 내민다. 세계 테마기행에서 리강의 어부가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던 그곳, 계림의 첫 일정이 08:20에 시작이다.
1년 365일 중 200일은 비가 내린다는 계림. 닭 모양으로 생긴 중국의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최소한 4번은 보아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단다. 푸른 산을 보기 위하여 맑은 날, 검은 색의 산을 보기 위해 흐린 날, 산 위의 구름 풍광을 보기 위해 비오는 날, 그리고 산수화 풍경을 보기 위하여 안개 낀 날 이곳을 방문해야 한다나.
타이완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이곳은 아열대기후. 겨울엔 평균 7~8℃, 여름에 때때로 40℃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4억 년 전쯤엔 바다였던 계림은 12개의 현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는 70만 명 정도이다. 오토바이가 열심히 거리를 누비는 모습이 약간은 베트남 같다. 간혹 베트남 사람들의 모자를 쓴 사람들도 보인다. 오토바이 차선을 만들어 놓은 것을 칭찬해주고 싶다.
계림에서의 첫 일정은 시내에서 남쪽에 위치한 관암동굴이다. 입구에서 모노레일 카를 타고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동굴의 총 길이는 12km, 하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된 구간은 이강과 인접한 3km에 불과하다. 관암동굴 역에 도착하니, 과일 노점상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동굴로 들어가려면 모노레일카를 타고 5~10분 정도 달려야 한다. 레버를 밀면 모노레일카가 전진하고, 당기면 브레이크가 걸려 감속되면서 모터카가 정차하게 된단다.
冠岩洞窟은 왕관을 엎어놓은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곳은 종유석, 석순, 돌기둥의 아기자기함보다는 웅장함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30m 쯤 되어 보이는 수직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거대한 지하공간이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맨 나중 우리를 태우는 것은 미니열차. 열차가 달릴 때, 동굴 주변의 벽과 종유석들이 관광객들의 눈을 자극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약간의 놀이동산에 온 느낌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다음 일정은 이강 유람. 유유히 흐르는 물위에 안개비가 내린다. 우리가 탄 배는 그곳에서 미끄럼을 탄다. 2층으로 올라갔다. 내게 들어오는 계림의 산들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내게 다가오고 다시 멀어진다. 그리고 안개에 잠겼다가 떠오르고, 또 잠기고… 아! 나는 중국 어느 화백의 산수화 속에 잠겨 있는 것이었다. 이강의 세 가지 보물은 민물고기, 물소, 그리고 봉미죽이다. 수많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높이 자라는 모습이 마치 봉황의 꼬리를 닮았대서 鳳尾竹이라 부른단다.
계림에서 보는 4가지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3만6천개의 봉우리를 가진 어머니 같은 山이요, 두 번째는 水이란다. 지금 나는 계림 산수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차가운 날씨지만 웨딩촬영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얇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얼마나 추울까? 마치 베트남 통킹만의 하롱베이를 내륙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이곳에서 나도 아내와 웨딩촬영을 하고 싶어진다.
점심식사는 비빔밥에 토종닭이다. 나도 닭다리 하나를 열심히 뜯었다. 다음은 양삭으로 간다. 중국의 3대 산수 중 한곳으로 손꼽히는 계림 동북부에는 관광도시 陽朔이 있다.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桂林山水甲天下), 양삭의 산수는 계림제일(陽朔山水甲桂林)'이라는 말이 전해지는 이곳은 양삭. 먼저 버스는 양삭현의 세외도원(世外桃源-스와이타오위안)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진나라 때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 등장하며 풍광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작은 배에 올랐다. 맑은 호수엔 물고기들이 물풀들을 헤집으며 하늘하늘 춤을 춘다. 복숭아꽃이 나무마다 활짝 피어 무릉도원을 만들어준다. 실은 사람이 만들어 붙여놓은 꽃이지만, 실제 꽃 이상으로 눈을 즐겁게 해줬다. 여자가 왕위를 지킨다는 와족마을이다. 강가에서 와족여자들이 춤을 춘다. 남자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몇 십 년 전 뒤로 우리나라의 시간을 돌려놓은 느낌이다.
다음 행선지는 이강의 지류 우룡하(遇龍河), 이곳에서는 뗏목체험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앞에 타고, 뒤에서 사공이 엔진을 힘을 빌려 뗏목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완만하게 굽은 강의 하구 쪽으로 뗏목이 가면, 강 주위의 산들이 우리 쪽으로 강에 실려 온다. 천하제일의 풍경을 보며 아내와 합창을 한다. 물속에서도 산이 산을 밀며 다가오고, 다시 멀어져간다. 아열대지방답지 않게 날씨가 쌀쌀하다. 뗏목들이 서로 교행을 하며 손짓을 한다. 그리고 카메라의 셔터가 알아서 눌러진다.
버스는 우리 일행을 싣고 서가재래시장으로 간다. 서양 사람들이 처음 정착하여 만든 시장이라는데 지금은 중국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서양방식의 시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서양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시장 입구에서 직선으로 500m쯤만 가면 시장의 끝이다.
각종 생활용품, 식료품, 기념품, 그리고 KFC까지 보인다. 아내는 찰떡 만드는 집에서 종업원과 열심히 절구질이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여 동영상을 찍는다. 보이차를 파는 기념품 가게에서 구리로 만든 차 주전자를 샀다. 해가 떨어지고 조명이 눈부셔질 무렵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안남미쌀밥, 쌀국수에 중국술 빠이주가 등장한다. 40도의 알콜이 위장을 스치니, 이국에서의 내 기분은 하늘을 살짝 들어 올리는 기분이랄까?
저녁식사 후 우리는 계림산수를 배경으로 웅장하게 펼쳐지는 장예모 감독의 물위의 쇼, Impression(印像 劉三姐)를 본다. 나는 4천 5백 좌석 그곳의 가운데쯤에 아내와 앉아서 공연 속으로 빠져든다. ‘파라다이스는 과연 이곳이구나.’ 인상(印像)은 장예모 감독이 중국정부와 공동으로 중국의 최고 명승지의 전설들을 쇼로 만든 5개(인상 옥룡설산 려강, 인상 서호, 인상 하이난, 인상 무이산 대홍포)의 인상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계림시 양삭현의 수많은 호텔과 주택들을 비롯한 도시번창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1950년생이라는 장예모 감독의 인상이라는 작품 때문이란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삭의 비엔나호텔에 두 번째 여장을 푼다.
2017.11.21.(화) 은자암 동굴→쇼핑→ 천산공원→ 복파산
산속의 도시에서 아침을 깨운다. 새벽 길거리 도깨비시장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무, 배추, 고수, 귤, 파, 마늘, 샐러리가 보인다. 리어카 위에서 팔리고 있는 바로 잡은 돼지고기가 몇 년 전 중국 백산에서 본 그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모습을 재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냉장고가 귀한 곳의 풍경이리라. 옛 우리나라의 물지게 같은 것을 한쪽 어깨에 지고 물건들을 나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 어머니,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였다.
조반으로 나온 쌀국수가 입맛을 돋운다. 고구마, 삶은 달걀, 우유, 커피로 아침 배를 채운다. 해외로만 나오면 나는 위장이 두 개로 늘어나는 것만 같다. 호텔방으로 가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 잠시지만 숨을 멈춰야 했다. 이곳에 다녀가면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銀子岩동굴로 향한다.
동굴입구에 닿으니 우리를 반긴 것은 은전을 가득 실은 수레와 금빛 말 형상 두 마리이다. 계림에는 동굴이 많은데 그중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 동굴이란다. 바로 은이 돈을 의미하며, 이곳을 다녀가면 돈이 마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란다.
찰흙을 빗어 만든 것 같은 오묘한 산. 고사리가 엄청 많은 산, 뱀이 많이 산다지만 들쥐 같은 먹이가 별로 없어 몸이 마른 뱀들이 살아간다는 산. 이곳 은자암 동굴의 총 길이 9km, 그중 2km 정도가 개방되었다고 한다.
동굴로 진입하기도 전에 그 품세가 이미 우리를 황홀경으로 인도한다. 수십 미터로 줄줄이 늘어선 조명 빛을 받아내는 종유석, 그것을 올려다보는 석순, 그리고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하늘과 땅으로 연결된 돌기둥이 천상의 세계처럼 사람들의 눈동자를 키우고, 탄성을 끌어낸다.
가이드 리나의 설명이 이어진다. 은자암 동굴에는 보물 네 개(만물상, 술단지, 은자다이아몬드, 진주우산)와 절경 세 가지(물속의 그림자. 음악의 병풍, 사막속 선인장)가 있단다.
그 때 갑자기 핸드백을 뒤지던 아내, 휴대폰을 잃어버렸단다. 가이드에게 일단 알리니, 출구가 많이 안 남았단다. 나는 아내와 혹시 화장실에 휴대폰을 놓고 온 것이 아닌가 하며 빠르게 출구 쪽으로 향했다. 나는 목구멍으로 기어 나오려는 잔소리를 누르며 아내와 함께 바깥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내의 목소리, 휴대폰이 핸드백의 구석에서 나왔단다. 다행이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만약 이곳에서 면허증, 그리고 몇 장의 카드가 들어있는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마와 등에 땀이 흐른다, 웃옷을 벗었지만. 천만다행이다. 우리 일행은 다시 모여 천산공원을 향한다. 차안에서 가이드 리나는 열심히 계림 사람들 생활을 설명한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채소를 많이 먹지만, 날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계림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키가 작고, 몸매가 날씬하다. 아마 베트남 쪽에 가까운 남방의 피가 섞여서 그러리라.
최소 53번은 발길을 들여놓아야 어느 정도 와보았다고 할 수 있다는 대륙국가 중국. 길가의 손님을 기다리는 유자와 왕토란이 연속으로 보인다. 중국 사람들이 평생해도 다 못한다는 3가지가 있단다. 첫째 그들의 글자를 모두 아는 것, 둘째 중국의 모든 곳을 관광하는 것, 셋째 모든 지방의 음식을 골고루 다 먹어보는 것. 워낙 나라가 크고, 한자의 글자 수가 많아서 그러리라.
차창 밖으로 구멍이 뻥 뚫린 그래서 내장이 없는 월량산이 보인다. 그 구멍이 마치 달과 같아서 그렇게 부른단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산이 수백 만 년 바람과 물의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가이드 리나는 복파장군이 쏘은 화살 때문에 뚫린 구멍이라고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고속도로변의 산들이 절경, 절경, 절경이다. 신선의 세계가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리라. 그것만이 아니다. 시내 도로의 중앙분리대, 그리고 자전거길, 보도, 그리고 가로수가 중국답지 않게 정리되어 있다. 실은 중국 공산당서기 시진핑이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많이 본 녹나무 가로수는 운치를 더해준다. 거기에다가 야자나무 등 열대림이 어울려 여기는 따뜻한 나라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내에서도 고개만 들면 또 멋진 산의 봉우리들이 우리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쇼핑몰에 들른다. 게르마늄 가게이다. 손가락을 현미경에 대고 있으면, 혈액이 도는 핏줄이 보인다. 내 손가락은 피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혈관이 굵다면서 고지혈증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내의 피돌기는 아주 좋다며, 건강하단다, 점원이 팔의 옷깃 속 게르마늄 팔찌를 보고는 이것 때문이란다. 실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몇 년 전 태항산 여행 때 산 것을 차고 온 것이다. 아내는 거금 30만원을 주고 게르마늄 목걸이를 사서 내 목에 걸어준다. 신랑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세라믹 칼들이 보인다. 칼날을 갈 필요가 없고, 냄새를 제거해 준다나? 아내가 다시 유혹에 빠지려한다.
점심은 현지식이다. 계림의 싱싱한 상추가 입맛을 돋운다. 거기에 빠이주가 식욕을 불태운다. 식사 후 천산공원에 오른다. 5분이면 오른다며, 가이드는 오분산이라고 한다. 계림의 명산 중의 하나인 천산은 해발 224m의 5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한 개의 산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어 절경이 되었다. 계단을 타고 오르며, 들꽃들을 보고, 바람소리를 듣는다. 산의 가슴을 뚫는 대공은 마치 천산의 숨구멍처럼 보였다.
다음은 복파산. 입구에서 고개를 드니, 복파장군 마윈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300여 미터 정도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 나온다. 옅은 안개에 싸인 도시가 반투명 커튼에 가려진 것처럼 보여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바람을 헤치며 아내와 함께 여러 컷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주위를 몇 바퀴 돌며 계림의 아기자기한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복파장군이 천산에서 활을 쏘면 관암동굴을 뚫고 월량산을 관통한단다. 실제로 3개의 산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용수나무를 설명한다. 계림에서 가장 많은 나무의 순서는 桂樹나무, 榕樹나무, 그리고 鳳尾竹이란다. ‘桂林山水甲天下’라는 글귀들이 붉은 빛깔로 우리의 시선을 끈다. 내 눈으로 본 실제 그 모습은 그것을 인정하고도 남았다.
아리랑이라는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저녁식사는 삼겹살이었다. 이어서 계림의 몽환이강쇼를 보러 간다. 극장에 들어서니, 한문으로 쓴 표구들을 경매하고 있었다. 잠시 후 쇼가 시작되었다. 이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발끝을 본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발레가 섞인 장면들이 잔잔한 음악의 리듬을 타고 나타난다. 여기에 은은한 조명이 더해져 꿈속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오늘도 첫날 묵었던 금수만호텔이다. 저녁식사 후 아내와 이국에서 밤길 데이트를 한다. 희미한 가로등 사이로 아내와 함께 하는 계림의 밤길이 달콤하기만 하다. 호텔주변의 시내에는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병원, 은행, 미용실, 마트 등이 껌벅껌벅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2017. 11. 22(수) 용호공원→ 야오족→ 용승온천
베트남에서 먹어본 쌀국수, 속이 노란 군고구마, 계란, 우유 등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왜 해외에만 나오면 입맛이 더욱 살아날까? 아무래도 나는 아내와 함께 해외 여행 체질인가보다. 커피까지 곁들이니, 기분이 날아갈 듯하였다.
중국답지 않게 계림의 거리, 가로수, 건물들이 깨끗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다. 1989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한 말, 계림 산수는 아름답지만, 도시가 지저분하다. 그리고 냄새까지 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직 관광도시로 내세우기엔 미흡한 것 아니냐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나.
이후 중국 당국은 계림시 4개의 호수를 강과 연결시키고, 대대적으로 정화운동을 펼친 결과 오늘의 깨끗한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도 도로 여기저기 물을 뿌리는 모습이 계속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일자리가 부족한 중국에서는 당서기의 출신 지역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러 간다고 한다. 그곳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발전하게 되고 다양한 일자리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지금 중국의 당서기는 시진핑. 당연히 그의 고향인 서안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곳엔 외국기업을 유치하여 많은 자본을 끌어당기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삼성, 현대와 같은 기업을 말이다.
용호공원 호수로 간다. 버스에서 가이드가 바나나와 용안이라는 과일을 내놓는다. 물이 뿌려지는 거리가 시원하다. 공원에 들어서니, 천년 이상 된 대용수나무가 우리를 품어 안는다. 돌로 포장된 넓은 보도블록에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큰 붓으로 글씨연습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나도 그곳에 ‘仁者 樂山이요, 知者는 樂水라’는 문구 하나쯤은 휘갈기고 싶었다.
호수 위에서는 미니 금문교, 개선문 모형 등 여러 가지 다리가 보인다. 바람에 장단을 맞추는 잔잔한 물결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내와 내 얼굴이 주변의 풍경과 함께 휴대폰의 카메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공원 여기저기에서는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호기심 많은 아내도 그들을 따라 동작을 만들어본다. 카메라를 잡은 내 손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점심엔 이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튀김이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아마 팔뚝 반 정도 되는 것을 내가 반은 먹은 것 같다. 원래는 식탐이 없는 사람인데, 해외에만 나오면 식탐이 왜 발동하는 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계림의 학생들은 점심식사를 집에 가서 하고, 다시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하교한단다.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거의 무상으로 학교급식을 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복 받은 학생들이다.
다시 쇼핑몰이다. 편백나무 물품을 파는 곳이다. 피톤치드가 많다는 편백, 농축액부터 방석, 침대깔개, 그리고 각종 생활용품… 실은 제주의 우리 농막의 방도 편백인데 말이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용승으로 향한다. 앞으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곳. 중간에 야오족 마을을 방문한다. 우리 버스가 멈추자, 그들이 멀리서 보고 북과 꽹과리를 친다. 산의 중턱, 또는 높은 곳에 집을 짓고, 다랑이 논을 대대로 만들고 그곳에 벼를 심어 식량으로 삼는 욕심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성인식 때 한번을 제외하고는 평생 머리를 깎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을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끼리만 사는 씨족사회라고 한다. 물론 여자가 이곳으로 시집을 온다거나 남자가 데릴사위로 장가를 들 경우, 그 사람의 서은 이 마을 성으로 바꾼단다. 얼마 안 되는 마을의 수입이라도 공동분배하며 다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을에 들어가니, 여자들이 나와 그들만의 토속적인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맞이한다. 이마의 머리가 둥근 모양을 한 사람들은 결혼을 한 사람, 이마의 아래 쪽으로 뾰족한 무늬가 나온 사람들은 아가씨란다. 맨먼저 이들과 우리 일행의 노래대결이 있었다. 내가 아리랑을 선창하였다. 그리고 야오족 아줌마들이 노래를 부르고, 우리가 송아지, 산토끼 등을 불러댔다. 그녀들 다음에 연이어 우리들의 노래가 나갔다. 결국 그녀들이 항복을 선언하였다.
이어 결혼식 행사. 우선 야오족 여인들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 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4명의 우리 쪽 남자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고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선택했다. 잠시 후 내실로 들어갔다. 그녀들은 내 눈을 가리고 뺨에 무엇인가를 칠(나중에 보니, 붉은 색)해주고는 검정 웃옷과 검정 모자를 씌워준다.
그들은 사랑하는 표시로 엉덩이를 꼬집는단다. 나는 그녀에게 여러 번 꼬집혔다. 내가 참 매력적인 사람인가보다. 그들이 준 술로 러브샷도 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지갑을 열고 내 색시에게는 삼천 원, 그리고 다른 여자들에게는 천 원짜리를 몽땅 꺼내어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용승으로 가는 길, 산사면마다 조림된 계수나무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봉미죽(봉황의 꼬리를 닮은 대나무)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었다. 가을을 알려주느라 단풍이 드는 메타세쿼이아가 줄을 서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길거리엔 닭이 나와 먹이를 쪼고 있고. 굴뚝의 연기가 보인다. 옛날 부모님과 살던 시절의 시골마을이 떠오른다.
용승온천이다. 해발 1000m 산속에 위치한 노천온천이다. 저녁식사 후 온천욕을 하러 가운을 입고 야외로 나간다. 산에서 내려온 물(神水)과 지하 1200m에서 나오는 뜨거운 암반수가 만나서 평균 수온 60℃를 만들고 이들이 다양한 온도의 온천수가 되어 우리의 몸 피부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혈액순환에 좋은 정심탕, 당뇨와 심혈관질환에 좋은 청심탕, 체내 독소를 빼주는 천성탕, 관절염에 좋은 목통탕, 피부미용과 고혈압 예방에 좋은 청일탕, 피부의 각질을 제거해준다는 닥터피쉬탕… 등 탕마다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수영복 차림으로 여러 가지 탕을 체험하였다. 금발의 외국인 여자가 아기를 안고 우리 곁에 있었다. 러시아 사람이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
2017. 11. 23(목) 계림 요산→ 용호공원 야경→ 귀국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니,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밤에 본 용승이 아니었다. 깊은 골짜기의 온천지였다. 나는 샤워 후 얼른 밖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신선의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어제 온천욕을 한 노천온천은 계곡의 품에 안겨 있었다. 시간이 많으면 낮에도 바람과 햇살을 주무르며 온천욕을 하련만, 아쉬움이 밀려왔다.
길가에서 한 노인이 파는 물건을 보니, 산새의 껍데기를 벗겨 말린 것, 거북이 말린 것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하루 동안 신선이 되는 것이었다.
버스는 다시 계림으로 향한다. 3시간 이상을 달려 요산이 우리 버스를 세운다. 요임금의 묘가 있다는 산이다. 계림에서 10km 거리의 요산(해발 909m)을 오르기 위해 리프트에 오른다. 천하절경 계림이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리프트에 둘씩 올라 계림으로 시선을 보낸다. 발아래엔 봅슬레이를 즐기라고 만든 스텐으로 된 구불구불한 길이 눈부시게 내 눈에 들어온다. 아내와 정담을 나누다보니, 20분쯤 지나고 정상이다.
멀리 보이는 계림의 산능선을 배경으로 아내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조물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이곳에 창조했을까? 고도가 높은지라 바람이 피부 속으로 스며든다. 정상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그야말로 천하절경이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하늘 길에서 아내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 양산도, 바램, 도라지… 이렇게 좋은 시간, 이렇게 좋은 장면들을 아내와 함께 한다.
동북삼성의 농산물을 파는 상점에 들렀다. 땅콩, 잣의 크기가 국산의 반만 했다. 버섯, 꿀, 술, 각종 농산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저녁식사는 다시 아리랑이었다.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니,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용호호수 야경관람이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배에 오르니, 금탑 은탑이 눈부시게 빛난다. 낮에 본 풍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보인다. 소수민족의 쇼도 보인다. 비옷을 입고하는지라 아쉬웠다. 많은 다리와 호수가의 나무들이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이다.
배가 되돌아올 때쯤 중국인 아가씨가 어느 결에 내 곁에 앉아 있는게 아닌가!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몸매, 순간 데이트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녀는 얼후라는 중국 현악기로 도라지, 아리랑, 천밀밀 등을 연주해준다. 나는 예쁜 여자 복이 많은 남자인가보다.
아쉽게도 벌써 여행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호수 야경투어가 끝나고, 잠시 야시장으로 진입한다. 찬바람에 살살 뿌리고 비, 온몸이 움츠려든다. 아내의 손이 차디차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드디어 공항으로 이동한다. 가이드 리나가 마지막까지도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인천공항에서 만났던 80세 어르신이 보인다. 반갑다. 새벽 2시간 조금 안되어 아시아나항공 전세기가 우리를 싣고 밤하늘로 오른다.
잠에서 깨니, 비행기는 벌써 인천공항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짐을 뺀 뒤 아내와 함께 다시 7200번 버스에 올라 잠에 빠져들었다. 기사의 목소리에 잠을 깨니, 송추였다. 창밖엔 겨울을 알리는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승용차도 눈에 덮여있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한 즐거운 겨울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