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저우에 발자국을 찍다.
2018.06.16.(토) 1일차, 밤 비행기에 오르다
오전에는 안덕의 조각공원에 들렀다. 안덕농협에서 공급하는 석회고토 17포를 받기 위해서였다. 마침 트럭을 가지고온 향장님의 호의로 석회고토 쉽게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덕수리 밭에서 콩을 심었다. 곶자왈에서 채취한 나뭇가지를 타원형의 반쪽 모양으로 꽂고, 그 위에 그물을 씌웠다. 들꿩의 만행을 막기 위해서였다. 콩씨를 뿌린 곳에 물을 충분히 주고, 온몸에서 흐르는 땀을 제주막걸리로 식혔다. 덕수리의 지인 차성순씨 부부가 우리 밭에 들렀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출발하는 중국여행 준비관계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은 농막에서 아내가 요리한 돼지고기와 함께 소주도 곁들였다.
저녁식사 후 제주국제공항행 151번 버스에 올랐다. 제주공항의 국제선구역은 처음이었다. 중국관광객들이 면세품을 받아 그 자리에서 포장을 해체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국제선 한쪽이 바닥에 퍼질러 앉은 여인네들의 손길이 분주하였다. 극소수의 남자들은 그저 양념이었다. 남자화장실 바로 앞에까지 점령한 여자 유커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스티로폼, 종이상자, 완충재 비닐은 버리고 최소한의 부피를 만들고 있다. 공항의 청소원들은 배출되는 쓰레기들을 처리하느라 자신 키 높이의 3배쯤 되는 허풍선이 짐을 연달아 옮기고 있었다.
TV에서는 2018 러시아 월드컵축구 호주:프랑스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자 여행가이드가 보인다. 그 곁엔 함께 여행할 일행들이 모여 있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실시한 마사지 연수에 함께 했던 이도형씨 부부도 거기에 있었다.
21:55분발 중국 구이저우성의 구이양행 비행기에 오른다. KAL 전세기이다. 좌석은 텅텅 비어있었다. 148좌석 중 우리 일행 18명과 중국인 몇 명이 독차지한 비행기. 가벼워서 더 잘 날지 않을까? 3자리씩 차지하고 누워가는 침대 비행기였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경쟁하여 뚫은 노선이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이양행 승객들은 인천공항에서 출발한단다. 이곳 제주노선을 폐지하면 다른 저가항공이 들어올 것이고, 인천공항에서 구이양을 오가는 KAL 노선이 영향을 받을 것이란다. KAL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노선이리라, 소비자 입장에서 好好겠지만.
캄캄한 밤하늘을 날고 또 난다. 동지나해를 거쳐 중국대륙의 남서방향으로 비행한다. 잠에서 깨면 밖을 본다. 암흑 속의 불빛들이 이곳에도 사람들이 산다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2018.06.17.(일) 2일차, 세계 4대 폭포 황과수를 만나다.
새벽 1시쯤 구이양의 롱동바우국제공항의 기류를 헤치며 비행기가 활주로를 훑는다. 훈훈한 아열대기후가 코끝을 스친다. 밤하늘에서 내려 본 구이양은 별자리 곁에 은하수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가이드는 2명, 홍익여행사 고대한 부장과 한국인 3세 김철휘씨 曰. 우리가 타고 온 구이양행 노선은 사드문제가 봉합된 후 최근에야 부활했단다. 중국의 36개 성 중의 하나인 구이저우(貴州)의 성도 구이양(貴陽). 황사가 없고 연중 200일 이상 비가 내려 햇빛이 귀한 동네인지라 이름이 貴陽이란다. 구이린(桂林)에서 고속철도로 2시간 거리인 이곳 구이저우는 380여개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도시이다. 공항에서 30분 거리의 소만호텔에 짐을 푼다. 기침이 나온다. 감기 기운이 술기운처럼 몸을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
0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7시 30분 모닝콜에 창밖을 보니, 고가도로 옆 벼랑 아래에 우리 호텔이 서 있었다. 아침식사 차림이 부실하다. 빵, 수박, 두유로 대충 때웠다. 조금 늦어 그런지 시원치 않은 음식마저 부족했다. 식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뭔가? 아직 문화적으로 미숙한 중국이다.
식사 후 버스에 오른다. 이곳은 해발 1000m쯤의 고지이기에 제주보다 선선하단다. 한국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리 풍경은 한국의 1980년대 후반쯤으로 느껴진다. 13억 2천 7백만 인구의 중국. 농업국이라 남자가 많이 필요한 나라. 여성들은 최소한 남자를 낳을 때까지 계속 출산을 할 수밖에 없다. 여러 명의 자식들 중 결국 남자 1명만 호적에 올린단다. 나머지 아이들은 그냥 한 세상을 살다가 천당으로 가는 것인가? 여기 구이저우성은 '하늘이 3일 계속 맑은 날이 없고, 땅에는 3리의 평지가 없고, 백성에게는 3등분 해 줄 은조차 없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그만큼 비가 많고, 농사지을 땅은 부족하여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 중의 하나인 곳. 그러나 최근 싱그러운 자연 속으로 중국판 KTX와 최신 고속도로들이 뚫리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비상하는 곳이다.
창장(長江) 이북을 북방계, 이남을 남방계라고 한다. 56개의 소수민족 1억 명을 빼고, 나머지는 한족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중화인민공화국이란 나라이다. 이중 37개 소수민족이 거주한다는 구이저우. 그들의 대부분은 은장식을 하고 다니는 먀우족(苗族)이다. 조선족은 현지 한국인 포함 120명 정도란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단지가 이곳에 있단다. 그것은 화과원아파트, 158개의 동까지 건설 예정으로 완성되면 13만 명이 상주하게 된단다.
아시아 최대이며, 세계 4대 폭포인 황과수(黃菓樹)로 향한다. 노란 야생귤이 많은 동네라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단다. 흐린 날씨, 그리고 주변의 풍광이 작년에 다녀온 구이린(桂林)을 연상케 해준다. 구이저우는 중국의 36개 성 중 못사는 5개 성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선 다른 지방보다 향신료를 적게 써 한국인 입맛에 그나마 봐줄만 하다. 모택동이 구이저우에서 전쟁을 수행할 때 마셨다던 최고의 술, 중국의 국민주인 마오타이주(茅台酒). 이 술의 고향이 바로 구이저우이다. 중국에는 220여 가지의 술 브랜드가 있다. 제2의 브랜드는 시주(習酒), 여기에서 시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의 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곳은 제주처럼 여자가 많다.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많이 죽었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시리아에서 내전 때문에 남자들이 엄청나게 희생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언제쯤 지구상에서 전쟁의 역사가 멈추려나?
중국의 4대 고원은 칭짱고원(티벳고원), 네이멍구고원(內蒙古高原), 황토고원(黃土高原), 운구이고원(雲貴高原)이다. 이중 구이저우에서 윈난에 걸쳐있는 평균고도 120m의 운구이고원(雲貴高原)이 바로 이곳에서 웅장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안순시에서 45km 떨어져 있는 황과수는 18개의 폭포군을 거느리고 있다. 먼저 이곳에서 가장 넓은 두파당폭포. 폭이 105m이며, 높이가 21m이다. 경사가 급한 곳에서 떨어지는 가파르고, 비탈진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소리가 하도 커서 ‘두파당폭포(陡坡塘瀑布)’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사자가 울부짖음처럼 물소리가 하도 커서 ‘어우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인파의 목소리도 여기에선 그저 적막에 가려진 것 같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완전 인산인해. 화관을 쓴 여인들의 모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중국 돈 20위안이 없어서 아내에게 화관을 씌워주지 못했다. 잠시 우리는 일행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천성교(天星橋)에 발길이 닫는다. 이 다리는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아름다운 다리’처럼 보여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단다. 교상교상교(橋上橋上橋:다리 위에 다리, 그 위에 다리)라는 별명도 함께 가진 다리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건축한 다리가 아니다. 하늘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다리. 별처럼 신비로운 다리가 하늘에 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와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눈으로 본 실제 모습처럼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다음은 은목걸이폭포(은련추담,銀鏈墜潭). 물줄기가 바위를 휘돌아 쏟아지는 모습이 은목걸이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점점이 부서지는 물살의 새하얀 거품과 용트림이 마지막엔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늘의 압권, 황과수대폭포(黄果树大瀑布). 폭포 입구는 분재원이 지키고 있었다. 나무들이 저마다의 개성 있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쳐다본다. 거대한 나무분재, 수백 년은 된 것 같은 고목분재들이 시선을 모은다. 바로 뒤편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빠르게 폭포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산책로를 걸으면서 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걷는다. 폭포를 배경으로 포토존으로 좋은 전망대 6개나 나타난다. 폭포의 흰 물살이 눈에 들어온다. 물소리의 굉음이 귀를 자극한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는다. 나와 아내는 맨몸이다. 빽빽이 줄을 선 사람들이 반쯤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시원한 물안개가 얼굴을 적신다. 폭포를 향해 사람들이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나도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눌렀다.
황과수는 상하, 앞뒤, 좌우 여섯 방향 모두에서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폭포가 자신을 속까지 맘껏 보여주고 싶은가보다. 황과수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수렴동(水帘洞). 물살 뒤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다. 끝없이 폭포 물살이 낙하한다, 마치 백제 말 나라를 지키지 못한 삼천궁녀들이 치마로 얼굴을 감싸고 뛰어내리는 처참한 모습처럼. 천둥소리가 들린다.
물벼랑 아래로 끝없이 수직 투신 중인 우리 삼천궁녀들…. 폭포수에서 튄 물이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바닥이 미끄럽다. 우비를 쓰지 않고 걷는 기분이 샤워하는 것 같아 오히려 좋다. 내가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이과수폭포를 보고 왔다면 이런 감정의 늪에 빠질 수 있었을까? 황과수폭포를 보고 내려오는 길, 일행에게 빌린 화관을 아내에게 씌운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미스코리아 진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버스에 오르기 전, 사탕수수 즙을 마신다. 순간 ‘며칠 전 제주의 우리 밭에 심은 사탕수수는 잘 자라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17:20분쯤 황과수가 있는 안순시에서 남으로 450km에 있는 구이저우의 가장 남쪽 구이저우성의 4번째 도시, 싱이(興義)로 간다. 싱이는 구이저우성이 윈난성, 그리고 광시성과 만나는 삼각지점 부근에 위치해 있다. 앞으로 엄청 발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 싱이시는 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이저우를 중국금주(中國金州)라고도 부른다. 신도시로 건설되었기에 큰 도로, 계획적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늘씬 늘씬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숙박 시설도 많다. 하지만, 매년 봄마다 숙소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란다. 중국에 도착 후 첫날의 일정은 벅찼다. 저녁식사는 韓膳坊이라는 음식점에서 한식. 돼지고기, 야크고기 뷔페이다. 야채도 풍부하다. 외국에 와서 이렇게 좋은 식사를 하다니, 그야말로 만찬이었다.
식사 후 마사지를 받는다. 계림에서 받던 마사지 생각이 난다. 그곳 남자들은 혈자리를 만져보고, 몸의 어느 부분이 안 좋은지 가르쳐주었는데… 팁으로 4000원을 주었다. 종아리는 하도 세게 문질러 그런지 오히려 아프다. 11시가 넘어서 싱이의 봉황호텔에 짐을 푼다.
2018. 06.18(월) 3일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 마령하대협곡에 갇히다.
01시쯤 취침이다. 기침이 나온다. 감기가 깊어지나? 그리고 왼쪽 팔목 부근엔 가렵고, 물집이 생긴다. 새벽에 일어나 커튼을 여니, 자동차들이 오가는 로터리가 보인다. 18층에서 내려다본 출근모습이 정겹다. 아침식사는 어제보다는 좀 나았다. 쌀국수가 있어서다.
아내는 내 팔목을 보더니, 대상포진 같단다. 버스에 오르기 내 걱정에 가득 찬 아내, 가이드를 불러 강제로 나를 약국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약을 사서 발라준다. 8시쯤 버스에 오른다. 음력 5월 5일 오늘은 단오, 중국인들은 물만두를 먹는단다. 대나무 찹쌀떡과 함께. 중국에는 130만 명 정도의 조선족이 있다. 1970년에서 1985년생까지의 조선족들만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한다. 부모가 그들 대부분을 조선족학교가 아닌 한족학교에 보내기 때문이란다. 이제 몇 십 년 지나면 조선족이 모두 없어지려나…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는 별명을 가진 마령하대협곡(馬嶺河大峽谷)이다. 약 200m의 깊이로 갈라진 틈새가 74.8km나 이어진 거대한 지구의 협곡. 지질시대에 오랜 시간 바다 밑에서 만들어진 석회암 지층이 융기하였고, 수백만 년 계속 하천의 침식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상처가 바로 이 같은 걸작이 되어 우리를 감탄시키고 있다. 협곡의 양쪽 절벽 여기저기에서 폭포가 은빛 물보라를 쏟아 낸다. 습도가 찜질방 수준이다. 목 뒤에서 출발한 땀이 등줄기를 훑는다. 온몸이 축축하다. 하지만 협곡의 위용이 그런 것쯤에 빠질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협곡의 일부가 되었다. 건너편으로 눈을 드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있었다.
폭포의 물살이 사정없이 자유낙하를 한다. 계곡의 벽에는 석회암 지층들이 줄을 서서 산꼭대기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철 푸른 열대의 나무들이 벽에 매달려 쳐다보고 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수양버들폭포의 물줄기에서 흩어져 나오는 안개가 얼굴의 열기를 식혀준다. 저기, 저 하늘에 떠있는 다리는 버티기에 얼마나 힘들까? 3개의 폭포가 함께 투신하는 모습은 이곳의 절정이었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그리고 반대쪽 산허리를 따라 걷는다. 장마철이라지만, 운이 좋은지 우리 여행기간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히노끼매장이다. 면봉에다 편백나무 원액을 묻혀 양쪽 콧구멍에다 넣는다. 물집이 생긴 팔을 보여주니, 원액을 발라준다. 잠시 후 아내는 심한 재채기와 콧물을 줄줄 쏟아낸다. 결국 아내는 편백나무 원액을 구입한다. 점심은 가게 근처 음식점. 고추장, 상추, 만두가 나온다. 가지와 브로콜리도 있다.
시내에서 8km 정도 떨어진 만봉림(萬峰林, 중국말로 완펑린)이다. 총 면적이 2,000㎢로 싱이 시의 3분의 2을 차지하는 평평한 대지. 베트남 하롱베이의 섬들이 육지로 올라온 것 같다. 카르스트 봉우리가 듬성듬성 조화롭게 솟아올라 우리에게 감탄사를 부르게 하고 있다. 그 숫자가 만 개에 달한다고 해서 만봉림이란다. 만봉림은 동서의 길이가 200km이다. 이곳은 동봉림(东峰林)과 서봉림(西峰林)으로 나뉜다. 관광지는 주로 서봉림이다. 샤우툰(下五屯)마을이 있는 7~8km구간이 우리가 탐방하는 곳이다. 만봉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봉우리가 펼쳐진 산허리를 가로질러 길이 뚫렸다. 우리는 6명씩 전동차를 타고 돈다. 중간 중간 전망대에서 내려 풍광을 눈에 넣고, 셔터도 누른다. 올망졸망 솟은 봉우리가 정겹다.
봉우리 사이사이에 개간한 농지가 그림과 같다. 이런 곳에서는 시인묵객들이 많이 탄생하겠지. 그중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논 가운데의 팔괘전(八卦田). 태극모양을 하고 있는 이곳은 한가운데가 푹 꺼진 땅이란다. 일종의 싱크홀이리라. 원주민들은 그곳에도 농토를 일구고 있다. 논 가운데 옹기종기 집들이 모인 마을에는 이곳을 농토로 개간한 부이족(布依族)이 살고 있다. 이른 봄 이곳 논에 만발하는 유채꽃이 절경이란다.
다음은 중국 4대 담수호인 만봉호. 옛날 대관령 고갯길을 넘듯 아리랑고개를 이어 달린다. 마을마다 파초밭이다. 바나나의 일종인 파초열매가 주렁주렁이다. 가이드가 건네주는 파초열매를 입에 넣는다. 서봉림경구에서 15km 떨어진 만봉호는 천성교댐을 쌓아 만든 수력발전용 호수이다. 구이저우성과 윈난성, 광시성의 세 성 사이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이 호수는 만봉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호수 입구에 들어서니, 충주호가 떠오른다. 햇볕이 쨍쨍이다. 자외선 가득한 호수 위를 유람한다. 호수에는 풀만 먹고 산다는 초어가 가장 많다. 작은 새우들도 잡힌다. 어부들이 보인다. 낚시질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콩 사람들이 지었다는 리조트가 우뚝 서있다. 흡사 교회건물 같기도 하다. 계림의 이강유람 때의 생각이 난다. 평균 수심이 1100m 깊이지만, 장마에 대비하여 30m쯤 물을 비운 띠가 지층에 새겨져 있다. 만수위의 호수를 못 봐 아쉬웠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일행의 요청으로 고대한 가이드가 노래를 한다. 제주 출신답게 혜은이의 ‘감수광’이다. 앵콜 소리에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른다. 자기 소개시간이다. 그리고 내게 노래신청이 들어온다. ‘사설난봉가’를 불렀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고, 이십 리 못가서 불한당 만나고, 삼십 리 못가서 되돌아 온다.…’
중국 사람들은 검소하단다. 우리 일행의 제일 연장자께서 한 말씀하신다. 중국과 서양의 할머니가 천국에 갔단다. 그리고 하는 말.‘중국 할머니는 어제까지 집을 살 돈을 모았다 한다. 그리고 서양 할머니는 어제까지 할부를 갚고 있었단다.’누가 더 현명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 이곳에서 반복된다는 스콜이다. 도시가 시원해졌다. 저녁은 어제와 같은 한식집이다. 감기와 왼팔의 피부트러블이 여행의 발길을 무겁게 해준다. 다른 여행 때와는 다르게 차에만 오르면 잠이다. 고대한 인솔자가 피부연고와 약을 준다. 어제와 동일한 호텔이다. 오늘은 스웨덴과의 월드컵 예선이 있다. 후반전이 되어서야 호텔 근무자가 TV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답답한 경기, 결과는 페널티킥 반칙에 의한 1:0 패배. 목표인 16강이 암담하다. 앞으로 멕시코와 독일이 상대국으로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2018.06.19.(화) 4일차, 용들이 사는 궁전과 먀오족 마을로 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잠겨있다. 팔의 피부병도 더 번지고 있었다.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리라. 아침은 쌀국수, 호박, 고구마, 두유, 그리고 디저트로 수박이다. 입맛이 없다. 아내의 팔에도 피부염이 생기는 것 같다. 부부는 꼭 닮아야만 하는지…
게르마늄 쇼핑몰에 들른다. 검은색 말고, 은회색이 진짜 게르마늄이란다. 내 목걸이를 세척해준다. TV에서 게르마늄의 효과에 대하여 회의적인 방송을 보고난지라 호기심은 없었다. 그래도 게르마늄을 구입하는 일행이 있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몸에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겠지.
자전거 천국을 넘어서 자동차 천국이 되어있는 중국. 이젠 집집마다 차 한 대씩은 있단다. 중국엔 긴 휴일이 여러 번 있다. 1월1일의 신년휴일 3일, 구정엔 공식적으로 일주일, 3월엔 여성의 날, 5월의 단오와 노동절, 8월1일 군인의 날, 추석연휴, 그리고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일.
용궁(龙宫)으로 간다. 구름을 헤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 베이판장대교를 지난다. 빌딩 2백 층 높이, 해발 570미터에 무려 1천3백 미터가 넘는 다리.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중국 윈난성과 구이저우성 사이 협곡을 잇는 이 다리가 개통되면서 윈난성에서 구이저우성까지 자동차로 평균 4시간 걸리던 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했단다. 버스에서 내려 직접 걸어보지 못해 아쉬웠다.
용궁 입구의 폭포에서 또다시 감탄이 나온다. 석회암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구멍에서 지구에서 가장 큰 용이 물폭탄을 안고 투신하는 것 같다. 공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그 장면이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물살에서 나오는 뽀얀 안개를 헤치며 셔터를 누른다. 계단을 오르니, 초록빛깔 호수다. 여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줄을 서서 나룻배에 오른다. 물로 가득 찬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용궁은 윈구이 고원(云贵高原)에 있는 석회암동굴 중 압권이다. 이곳 일대는 세계에서 석회동굴이 가장 많은 곳. 용궁을 중심으로 10km 안에 석회암동굴이 90여 개나 된다니.
그 숫자는 바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동굴은 길이가 총 15km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은 개방된 1.2km에 불과했다. 다양한 종유석들이 신화 속 ‘용왕의 수정궁’ 닮았다고 해서 용궁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먀오족(苗族)마을로 간다. 중국의 대표적인 자연을 들라고 하면 뫼(山)는 장자제(张家界), 수(水)는 쓰촨성의 주자이거우(구채구, 九寨溝), 폭포는 구이저우의 황과수, 하늘은 티벳이란다. 등갑부락(藤甲部落)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먀오족은 중국의 구이저우, 후난, 쓰촨, 윈난, 광서장족자치주에 흩어져 산다. 중국의 소수민족 4위로 전체 900만 명 중 반쯤 되는 430여만 명이 구이저우성에 살고 있다.
밀림 속으로 들어가니, 마을입구가 나온다. 먀오족 사람들이 북을 치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물소 뿔 장식이 눈에 띈다 한 청년이 장총으로 축포를 쏘면서 세리모니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환영한다며 물소 뿔로 만든 잔에 담긴 술을 준다. 우리나라의 쉰 막걸리 맛이었다. 여인이 내 엉덩이를 친다. 좋아한다는 표시란다. 등나무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이들의 옛 갑옷이란다. 아마 전투할 때 입는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한 여성만이 용궁에서 본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혹시 왕비이려나? 팔씨름을 한다. 힘이 굉장히 세지만, 여자한테는 져주는 것 같았다. 아내도 도전하며 기분을 돋웠다. 마을 촌장의 의자에 앉아 사진도 찍었다.
공연장에 이르니, 웬걸 싸이의 강남스타일, 젠틀맨 음악이 밀림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자마자 온몸이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노래를 곁들인 그들의 춤판이 끝나고, 남자들의 쇼가 시작되었다. 불 쇼였다.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어릴 적 약장수들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은 무쇠 칼로 만든 사다리에 맨몸으로 매달리는 쇼. 그리고 새빨갛게 달구어진 무쇠 위에 사람을 업고 걷는 쇼가 이어졌다. 게임을 하여 틀리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거나 술을 마셔야 한다. 우리 일행 중에 여행 작가를 꿈꾸는 분의 흥이 분위기를 달궜다.
저녁식사는 이곳 먀오족이 차린 음식이었다. 토종닭고기, 오리고기, 돼지고기에 쌀밥, 상추쌈, 맥주… 정성이 가득한 만찬이었다. 버스는 달려 첫날 투숙했던 안만호텔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러시아 월드컵을 시청하였다. 일본이 콜롬비아에 2:1로 승리하는 것이 부러웠다. 세네갈도 폴란드에 2:1승. 감기에 피부의 염증까지 생겨 컨디션이 영 아니다.
2010.06.20.(수) 첸링산공원에서 원숭이와 놀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아침 음식이 별로였지만, 가이드가 김치를 준비해 줘 그나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행 일정으로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가이드도 일행들도 모두 느긋하였다. 09:30분 체크아웃. 버스를 탈 땐 다시 비가 그쳤다. 날씨가 우리 여행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원숭이들의 천국 첸링산공원이다. 구이양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첸링산(黔灵山). 평일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구이양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1957년 공원이 조성된 이래 규모가 점점 커져서 현재 4.26㎢에 달한다. 수십 미터쯤 나무들이 울울창창이다. 원숭이들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사실은 우리가 원숭이들과 즐겁게 만려는 것이겠지만.
원숭이들은 나무에 오르고, 내리고, 점프하면서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지 눈알을 좌우로 돌린다. 어떤 원숭이는 복숭아를 한 봉지 얻어서 먹고 있었다. 새끼를 가슴에 매달고 다니는 어미. 서로 싸우려고 으르렁되는 놈. 암수가 사랑나누기를 하려는 자세… 동물원에 들어가니, 뱀 이구아나 그리고 호랑이가 보인다. 특히 백호가 내 눈길을 잡아당겼다. 이들 원숭이들은 10월쯤에 왕위 쟁탈전에 들어간단다. 10세쯤 되는 수컷 대장 후보끼리 1:1로 싸운단다. 광장에서는 무용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춤을 추워본다. 흥이 많은 아내는 신나는지 솜씨를 발휘한다. 나는 그 모습을 열심히 찍는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가 운행되지만, 우리는 오르지 않았다.
점심은 이곳 출신 몇 안 되는 사람이 처음 과거에 급제하기 전 먹었다는 장원족발이었다. 기름을 많이 칠해서 그런지 비위에 맞지 않았다. 다음은 구이양의 명소로서 옛날 명나라 군대의 보급창이었던 칭옌고진(青岩古镇). 중국인들에게는 영화 사라진 총(寻枪, 2002년)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구이양에서 남쪽으로 29km 떨어진‘둔보(屯堡)’마을로 명나라 때인 1378년에 건설되었다. 둔보란 중앙에서 파견한 군사와 그 가족이 머무르던 주둔지를 뜻한다. 입구를 통과하니, 수많은 토산품으로 된 기념품 가게들이 사방으로 줄을 서있다. 훅훅 달아오르는 더위, 등에 흐르는 땀. 아내와 양산을 쓰고, 아주 천천히 발자국을 옮긴다. 과일 말림, 족발, 은장식, 중국술 가게… 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응달에 지쳐 앉은 아내를 데리고 악기점으로 간다. 청아한 오카리나소리가 그나마 더위를 식혀준다. 아내는 기념으로 조금만 오카리나를 샀다. 나는 북문 쪽 끝까지 다녀왔다. 연꽃이 피어있는 호수 저편으로 진지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더위와 싸우는 사람들이겠지.
중국 사람들은 대체로 냉정하고, 배려심이 부족하단다. 소수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같은 한족끼리도 자기 것만 챙긴단다. 겨울에 눈이 오면 자기 집 앞만 쓸어댈 뿐, 남의 집은 절대 거들떠보지 않는단다. 특히 한족이 문제인 것 같다. 수준 낮은 사람들이 국가. 땅덩이는 비록 큼지막하다지만, 마음만은 밴댕이똥자루 같은 소국이로구나. 요즘 북한의 돼지 김정은이가 중국의 늑대 시진핑에게 자꾸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갤러리에 들른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나는 그곳에서 붓글씨를 써본다. 물을 붓에 묻혀서 쓰면 먹으로 쓴 것처럼 보이는 종이판에다 쓰는 것이다. 화중군자(花中君子)란 글씨를 썼다. 잘 쓴다고 화가는 엄지를 올려준다. 그늘에 나와서 시간을 보낸다. 이제는 공항으로 가는 시간만 기다리는 상황, 여유롭게 오후를 날려 보낸다.
요즘은 중국의 부유층들이 은퇴 후 거주지역으로 많이 선호하는 곳이 바로 이곳 구이양이다. 268개의 터널을 가지고 있는 산악지역 구이양. 바다는 없지만 자연풍광이 출중하여 살기 좋은 곳, 심신의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은 구이양으로 온다.
저녁식사는 한라산이라는 음식점이다. 철판구이를 겸한 한식이었다. 소주, 맥주와 함께 얼큰한 식사자리였다. 역시 기름기 다분한 쇠고기와 잡채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마사지가게로 간다. 나는 피부문제로 그냥 쉬었다. 마사지를 받은 아내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이제 공항으로 이동한다.
2018.06.21.(목), 귀국하는 새벽
01:45분 대한항공에 몸을 싣는다. 하늘 아래 불빛이 깔린 구이양시내를 잠깐 보고는 잠의 늪에 빠져든다. 오늘도 148명 정원 비행기에 우리 일행과 외국인 2명뿐인 단, 20명이다. 감기에 잠긴 몸이 말이 아니다. 눈을 뜨니, 아침 기내식이 나온다. 나는 쇠고기에 밥, 아내는 돼지고기 밥으로 된 음식이다.
비행기는 상하이를 지나 동지나해로 새벽하늘을 가르며, 대륙을 빠져나간다. 날이 밝아온다. 구름이 하늘 아래를 가득 메웠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와 제주로 향한다. 서귀포의 동쪽 성산일출봉, 우도를 바라보며 제주공항으로 날아간다. 멀리 육지 쪽 다도해의 섬들이 구름 속을 오르락내리락, 숨 가쁘다. SEA WORLD라는 이름표를 단 화물선이 하얀 물결을 만들고 있다. 한국시간 새벽 6시쯤 어느덧 비행기가 활주로 위를 달린다.
기다리다보니 7시가 넘었다. 151번 버스를 타고 나의 스위트홈이 있는 영어교육도시로 달린다. 비몽사몽이다. 감기를 엎고 다닌 여행, 몸이 묵직한 여행이었다.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다. 이젠 건강을 챙기는데 신경을 써야겠다. 나를 정성을 다해 챙기는 아내가 고마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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