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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바이칼에 발을 담그다

by 광적 2019. 10. 7.

 

바이칼에 발을 담그다

 

1일차, 2019. 9. 23() 바이칼을 향해 출발

 

반백년지기 대학 친구들과의 바이칼호수 여행, 그리고 병원진료를 위하여 919일 제주에서 올라왔다. 그제는 아들 남인이네와 교수가 된 막내 남규가 양주의 우리 집에 왔다. 손주 가온이, 시온이를 만나자, 얼른 받아 안았다. 점심식사는 고읍동 오리집이었다. 남인이가 남규와 돈을 모으고 있다며, 여행 잘 다녀오라고 용돈 봉투 두개를 내민다. 매스컴에도 많이 알려진 우리 고향의 잔치, 양주 천일홍축제장에 발자국을 찍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움직이는 화원처럼 보였다.

어제는 가래비의 친구 석호부부와 은현면 장어백화점에서 몸보신을 하였다. TV로 위협을 주던 태풍 타파가 동해 쪽에만 피해를 주고 지나갔나보다. 이곳 수도권은 흐린 날씨로 태풍의 흔적조차 없었다. 오히려 오늘 아침은 물빛을 띈 화창한 하늘이었다. 제주에 두고 온 덕수리밭이 걱정되었다.

금강회 회장으로서 이제는 모두 퇴직하여 인생 후반을 펼치고 있는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인천공항에서 즐겁게 만나자고. 우리 아내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치매예방지도사 연수도 포기하고, 고맙게도 나를 따라 이번 여행에 함께 해주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여행 짐을 다시 확인하고, 12:50분 시동을 걸었다. 승용차는 송추 개천 변에 주차하였다. 13:30, 7200번 인천국제공항 행 버스에 올랐다. 운전기사가 직접 캐리어를 버스에 실어준다. 기분 좋았다. 청명한 날씨, 들판은 가을햇살에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꺼내고, 모자를 썼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섬처럼 떠다닌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 전 한 컷

 

공항 1터미널을 지나 제2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사모님들과 함께 반가운 얼굴들이 웃으며 다가온다. 금강회 7가족 중, 4가족이 이번 여행에 동행한다. 선하네, 형구네, 광면이네, 그리고 우리 부부로 총 8명이다. 간식으로 빠리바케트에서 빵과 커피를 시켰다. 오후의 공항 활주로가 눈부셨다.

130번 게이트로 향한다. 탑승 전 만난 금발의 서양 아기가 인형처럼 귀엽다. 18시쯤 우리를 실은 KE 938기가 이륙한다. 여행을 출발하니, 나를 찜찜하게 했던 감기 기운도 가시는 것 같다. 힘이 난다. 역시 난 여행체질인가 보다. 역마살이 낀 나는 돌아다녀야 에너지가 배로 충전된다.

이륙한 비행기가 북서가 아닌 남서방향으로 머리를 돌린다. 썰물 빠진 바다가 질척거리고 있었다. 갯벌 위의 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가오리, 부채, 그리고 펄럭이는 현수막 모양의 갯벌이 저녁 햇살을 반사하고 있다. 해지는 서녘바다를 향하여 비행기는 고도를 자꾸 높인다. 썰물이 빠져나가는 바다, 섬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가고 있다. 하늘은 구름을 낳고, 구름은 섬을 연속 출산하고 있었다.

이르쿠츠크까지 거리 2337km, 현재 고도 6096m. 서쪽 하늘의 태양이 비행기를 끌어당긴다. 양떼구름이 몰려다니는 하늘은 황토빛깔의 넓은 수평선으로 그리고 있었다. 흙빛 바다, 푸른 하늘이 비행기의 창으로 들어온다. 비행기 날개에 앉은 저녁햇살이 반사되어 바다로 떨어진다. 섬들은 어디로 갔는지, 바다는 이미 암흑으로 바뀌었다.

18:45분 저녁식사가 나온다. 나는 쇠고기, 아내는 닭고기를 시켰다. 생선이 곁들여져 나왔다. 누들, 오이, 치즈, 방울토마토도 메뉴에 얹혀있었다. 여행의 습관처럼 승무원에게 레드와인을 요청한다. 식사 중에 비행기는 중국 산둥반도 위를 난다. 청도를 지난 비행기는 발해만을 가른다. 이제야 비행기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비행기도 북조선의 깡패두목 김정은 눈치를 보는 것이리라. 태양은 비행기보다 빨리 수평선을 넘어버렸다.

대한항공에서 발행하는 Morning Calm 잡지를 편다. 파타고니아를 다룬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 아내와 두바이를 거쳐 지구를 대각선으로 반 바퀴 날아가 열흘 이상 누비던 남미의 끝 파타고니아 생각이 난다. 잿빛 수평선 위로 저녁노을이 꺼져가는 화롯불처럼 타고 있다. 비행기는 다시 중국 대륙으로 들어간다. 비행기 아래엔 이름 모를 작은 도시의 야경이 점점이 깔려있다. 비행기의 점멸등이 심장박동처럼 깜박인다. 비행기는 베이징 쪽으로 방향을 튼다.

승무원이 주 이르쿠츠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발행한시베리아 방문을 환영합니다.’ 팸플릿을 배부한다. 현재 고도 10,363m. 별이 쏟아진 것 같은 도시의 불빛을 지나, 적막만이 가득한 고비사막에 진입한다. 20:20분 모니터는 우리 비행기가 몽골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아내와 열심히 신문을 읽는다.‘ 조국 사태, 태풍 타파, 그리고 기후 이야기을 주재로 도란도란 눈을 맞추다 보니, 비행기는 이미 러시아에 진입하였다.

앞좌석 등받이 모니터를 보니, 비행기는 이미 바이칼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이르쿠츠크 도착 잔여시간 20. 드디어 이르쿠츠크의 화려한 야경이 내 시선을 뺐고 있다.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10:10분 이르쿠츠크공항에 몸을 내리니, 젊은 남자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이르쿠츠크대학교 유학생 라윤성 청년이었다. 러시아 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버스 좌석 커버에 금강산 관광기념 경남대리점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다. 이 버스는 한국산 중고버스였다. 가이드가 러시아에 대한 첫 안내를 해준다. 우선 화장실이 불편하고, 달러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단다. 러시아 화폐 1루불은 우리 돈 20, 화장실 사용료는 1030루불이란다. 밤거리가 유럽의 가장 가난한 나라,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처럼 우중충하다. 공항에서 20여분을 달려 숙소인 앙가라호텔에 도착하였다.

방 열쇠를 받고 나니, 아내가 휴대폰이 안 보인단다. 가방, 배낭, 주머니를 다 뒤졌다. 그 놈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가이드에게 얘기하니, 버스기사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휴대폰이 버스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호텔 방문을 연다. 키를 꽂아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로비에 가서 데이터를 입력하여 가져온 키로 문을 열 수 있었다.

러시아의 호텔엔 반갑게도 정수기가 있다. 물을 끓여 생강차를 마시려 하였다. 그러나 캐리어엔 생강차를 빼놓고 온 것이다. 맹물만 마셔야 했다. 아침 06: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러시아의 첫잠을 청한다.

 

2일차, 2019. 9. 24() 이르쿠츠크 시내를 만나다.

 06:20분 기상, 러시아에서 새날을 맞이한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국토(한반도의 77)를 가지고 있는 연방제 국가. 인구는 14천만 명. 주요 도시로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소치 등을 거느린 광대한 국가이다.

우리가 방문한 이르쿠츠크는 바이칼호수를 서쪽과 북쪽으로 둘러싸고 있다. 낙엽송을 비롯해 자작나무, 소나무·전나무·가문비나무 등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는 타이가 지대이다. 강한 대륙성기후로서 일교차, 연교차가 크다. 대부분 러시아인들이 거주(60)하지만, 부랴트족(30타타르족·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들도 함께 살고 있다. 앙가라강은 이르쿠츠크·브라츠크·우스티일림스크 댐에서 엄청난 양의 수력발전을 하고 있으며, 대규모 유전까지 가지고 있단다. 부럽기만 하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쌀밥에 누들, 계란프라이로 오전 에너지를 충전한다. 우리 식탁에는 선하네 부부가 함께 했다. 포도가 자그마치 자두만하다. 식사 후 방문을 열려고 하니, 주머니 속에 열쇠는 없고, 오히려 식권만 두 장이 있었다. 아무래도 식권 대신 열쇠를 내고, 아침식사를 한 것 같다. 로비에 가서 열쇠를 받아 방문을 열었다.

어제 밤 호텔 옆 마트에서 물과 토마토를 샀다. 그런데 같이 마트에 갔던 형구 어제 샀던 감청색 뚜껑의 물은 탄산수란다.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환불하였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을 동원하였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흰색 뚜껑에 담긴 것이 생수란다. 방문을 열려니, 또 키가 작동하지 않는다. 다시 로비에 가서 데이터를 입력해 왔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오락가락이다.

드디어 도시탐방, 버스에 올라 이르쿠츠크 주청사로 이동한다. 1932년 이르쿠츠크 최대 사원이었던 카잔교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 지금의 이르쿠츠크 주청사이다. 철거한 사원의 잔해는 주청사의 기초공사에 그대로 이용했단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던 소련 공산당들에겐 교회를 밟고 다닌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2001년 소련 공산주의가 자취를 감추고, 카잔교회를 기념하기 위해 청사 옆에 종탑이 세워졌다. 그리고 카잔교회에 있던 성모상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르쿠츠크 주청사 앞 영원의 불꽃

주청사 앞의 영원의 불꽃을 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르쿠츠크 주에서 211000명의 병사들이 참전하였으나 그중 5만 명의 병사들은 돌아오지 못했단다.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늘도 불꽃이 타오른다. 러시아에 무궁무진 매장되어있는 천연가스를 이용하여 365일 광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2차 대전 승전기념일인 59일에는 매년 이곳에서 대대적인 행사가 열린단다. 이르쿠츠크의 신혼부부들은 결혼 전 이곳을 찾아와 헌화를 하고 추모기도를 올린다. 사랑을 약속한다. 러시아의 주요 도시에는 무명용사를 위한 '영원의 불꽃'21군데에서 타고 있다. 활활 타는 영원의 불꽃 주위에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들이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앙가라강으로 향한다. 바이칼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유일한 강이다. 시베리아 남동부를 흐르는 전체 길이 1779km인 이 강은 예니세이강과 몸을 섞어 북극해의 품으로 흘러든다. 1958년에는 이르쿠츠크에, 1966년에는 브라츠크에 댐과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브라츠크 댐 건설 결과 5,440에 달하는 호수가 새로 생겼다. 그 외에도 3번째 댐이 1980년에 건설되었으며, 이곳에서 하류로 좀 더 내려간 지역에 또 다른 수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단다.

셀렝게강을 비롯하여 336개의 지류가 바이칼로 흘러들어 바다처럼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앙가라강이 이르쿠트강과 합류한다. 물살이 빠르다. 유속이 빠른 것은 댐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이리라. 겨울 평균 기온이 26인 이르쿠츠크, 러시아 사람들은 겨울 추위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까?

이르쿠츠크에는 444법칙이 있단다. 첫 번째 이곳에는 4번은 결혼을 해야 보통이란다. 두 번째는 40°이하의 술은 술이 아니란다. 마지막으로 400km 이하의 거리는 먼 곳이 아니고 생각한다. 이혼을 많이 하는 도시, 사람들이 독한 술 보드카를 즐기는 도시, 그리고 광활한 시베리아평원 속의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자그마치 열차로 일주일이 걸린단다. 좁디좁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넓디넓은 시베리아평원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이제 다시 버스는 우리를 싣고 바이칼호수로 향한다. 이르쿠츠크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km의 거리를 달려야 한다. 버스에서 가이드 라윤성 청년과 대화가 이어진다.

바이칼호수를 오가는 배들

이르쿠츠크 국립대학에 유학 중인 가이드, 이곳은 학비와 물가가 저렴하단다. 러시아를 배우기 위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르쿠츠크대학은 학비가 연 200만 원 정도란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때문에 실제 150만 원 정도면 해결된다고 한다. 유학생으로서 공부하기 참 좋은 곳이다. 거기에 기숙사비는 월 4, 5만 원 정도라니, 연간 천만 원 이상이 소요되는 대도시에 비해 아주 경제적인 것이다.

가이드는 한국인이 드믄 이곳에서의 유학생활에 만족하며 큰 꿈을 가진 도전적인 청년이다. 거기에 우리 여행객 1인당 60불씩 받는 아르바이트로 여행가이드까지 하니, 기특하기만 하다. 이곳에도 한류 열풍이 한창이며, 이르쿠츠크대학에는 한국어학과도 있다고 한다.

바람 가득한 강변 거리에 어린 아이들 사진이 붙은 간판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란다. 시민들에게 입양을 권유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여기에도 불쌍한 아이들이 힘들게 커가고 있구나.

이르쿠츠크를 세운 야콥 빠하바프의 동상을 본다. 총을 들고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늠름하다. 청록색 돔 위에 십자가를 단 러시아정교 사원과 게르 모양의 황금색 사원을 본다. 게르 모양의 황금색 사원은 무슬림들에게 포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란다. 그 곁엔 가톨릭성당도 보인다.

이르쿠츠크를 세운 야콥 빠하바프의 동상

나무로 지어진 청록색 지붕의 2층 건물, 데카브리스트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데카브리스트란 182512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혁명가들을 말한다. 러시아어의 12데카브리로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데카브리스트들은 182512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거행된 새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선서식장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주모자는 모두 교수형에 처해지고 100명 이상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이 혁명은 러시아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당시 시베리아로 유형을 온 데카브리스트들은 주로 젊은이들이었지만, 기혼자도 18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7명은 당국과 가족의 종용에 따라 반역 죄수가 된 남편과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남편을 찾아 온 트루베츠코이의 아내 예카쩨리나 트루베츠카야를 비롯한 11명의 아내가 남편의 유형지까지 따라와 온몸을 갖은 고생을 하며 사랑을 택했단다. 이들은 당시 6개월이 넘는 힘든 여행 끝에 드디어 남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남편을 만나기 전에,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재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차 이곳에서 태어날 자녀들은 평민의 신분이 된다는 등의 내용의 서류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러시아판 춘향이 러브스토리이다.

이러한 데카브리스트들을 기념하기 위해 혁명에 참여했던 세르게이, 그리고 리예비치 볼콘스키(1788~1865)가 살던 집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개방한 것이다. 박물관 안에는 데카브리스트의 초상화, 그리고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삽화, 당시에 정치토론과 시낭송이 행해졌던 거실과 가구들이 쓸쓸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의 야외 재래식 화장실에서 잠시 작은 일을 본다.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상 앞에서 아내와 함께

버스는 이르쿠츠크의 중심인 칼 마르크스의 거리를 관통한다. 승리광장의 알렉산드르세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극동지역과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건설한 러시아의 황제이다. 알렉산드르세는 러시아 정교회와 전제정치 및 민족성을 바탕으로 제국 안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들을 러시아인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정교회를 믿지 않는 집단을 박해하기도 하였다.

멀리 환바이칼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가 희미하게 보인다. 가늘고 키 큰 나무들이 러시아의 단풍을 달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거리엔 겨울 잠바에 목도리를 걸친 사람도 보인다. 이곳은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가 겨울이란다.

12:00 점심식사를 하러 오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국 레스토랑 北京烤鴨店에 들어갔다. 음식이 입맛을 달궜다. 선선한 날씨인데도 반팔, 반바지차림의 젊은이들이 보인다. 복장으로만 보면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 버스는 바이칼호수의 알혼섬으로 가기 위하여 속도를 낸다. 우리나라 670년대의 비포장도로이다. 먼지를 일으키며, 3대의 사륜구동 자동차는 달린다. 길이 만들어져서 자동차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다녀서 길이 만들어진 것 같다.

황소의 넓은 등짝 같은 평원에서 소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단풍잎이 찰랑이는 자작나무숲이 우리에게 연신 손을 흔든다. 침엽수림 소나무 군락이 보인다. 황량한 벌판에 풀을 뜯는 얼룩소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수로에서 물장난을 하며 노는 시베리아 개들의 모습이 천진스럽다. 나무로 된 전봇대, 사각기둥의 시멘트 전봇대가 지나간다. 망망한 벌판에 어쩌다 보이는 마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나? 전조등을 켜고 오가는 차들이 여유롭다.

휴게소에 버스가 시동을 끈다. 화장실을 가야한다. 남자들은 화장실이 지저분하지만 무료를 이용한다. 여자들은 10루블을 내고, 덜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일을 본다. 아이스크림 8개를 400루블에 구입하여 금강회 부부들에게 건넸다. 아이스크림이 단단하다, 그리고 어찌나 맛대가리가 없는지

알혼섬 행 배에 오르다

시베리아 낙엽송의 황금빛 단풍 숲을 지나 버스는 드디어 알혼섬이 보이는 포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 캐리어와 함께 배에 오른다. 갈매기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남한 면적의 1/3 크기 바이칼호수. 10분쯤 지나서 배는 우리를 알혼섬에 내려놓는다. 제주도 면적의 1/2 정도인 알혼섬. 그것은 섬이 아닌 드넓은 땅이었다. 산이 있고, 들이 있고, 언덕이 있고, 소들이 풀을 뜯는 가을의 누런 평원이 있었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 버스가 마트 앞에 선다. 아내와 함께 보드카와 맥주를 각각 한 병과 안주를 샀다. 통나무집 미니호텔 바이칼이라는 곳에 여장을 푼다. 저녁식사는 닭고기, , 스프이다. 저녁 9시부터 금강회원들의 의견을 듣는 회의를 시작했다. 금년까지 실시해온 해외여행은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내 모임으로 연 1회씩 만나기로 합의했다. 매달 20만원씩 모으던 회비도 매월 5만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회의 후 보드카와 맥주를 마신다. 이곳 러시아에서는 40°이상이래야 술이라고 인정해 준단다. 회의가 끝나고 숙소 밖의 언덕에 올라 하늘을 본다. 시베리아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은하수가 물결을 이룬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전기불이 광공해를 만들어 밤하늘을 맘껏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3일차, 2019. 9. 25() 알혼섬에 빠지다.

 이틀 동안 묵게 될 이곳은 알혼섬의 후지르마을, 1500여명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기자기한 삶의 터전이다. 아침에 7시가 조금 지나 밖에 나갔다. 옆방 아줌마가 간밤엔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어제 우리 방에서 4부부가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소음을 발생시켰으니 말이다. 많이 미안했다고, 죄송함을 표했다. 부지런한 친구인 선하가 보인다. 벌써 1시간 정도 산책을 했단다.

후르지마을의 숙소

숙소 위의 언덕으로 올라간다. 날씨가 쌀쌀하다. 목줄도 없는 개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풀을 뜯는 소들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나와 호숫가에서 바이칼호수를 느끼고 있다. 안개가 둑을 이룬 호수의 남쪽으로 햇살이 들어와 있었다. 가을빛으로 물든 들판에 점점이 조그마한 들꽃이 우리에게 눈인사를 하고 있다. 5월말이나 6월 초쯤에 이곳에 왔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감기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지 콧물이 나온다.

지구의 푸른 별, 시베리아의 진주, 유우라시아의 양수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바이칼호수. 이곳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지구에서 가장 큰 민물창고이다. 바이칼호수는 북서쪽의 이르쿠츠크주와 남동쪽의 부랴트공화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에는 몽골에 속한 허브스걸호(코소골호)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두 호수를 자매호수라고 부른다. 타르타르어로‘풍요로움’을 의미하는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이다.

 

바다 같은 바이칼호수,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바이칼호는 길이 636km, 20~80km, 깊이 1642m31,494km²면적으로서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민물호수이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호수의 바닥은 해수면보다 1285m나 깊다. 물이 하도 맑아 40m 깊은 곳까지도 훤히 보인다. 지구상 민물의 20%를 간직하고 있는 담수의 거대한 창고, 바이칼호수는 내륙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린다. 이 광활한 호수에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다양한 생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수심에 따라 1,200여종이 넘는 동물이 서식한다. 600여종에 가까운 식물이 수면 가까이에 분포한다. 바이칼호수에는 78만 마리의 물범이 산다고 한다. 1600m 깊이의 심해에도 물고기가 산단다. 이 가운데 약 3/4은 바이칼 호의 고유종이다.

알혼섬은 바이칼호수에 있는 22개의 섬 중에서 제일 큰형님이다. 면적은 730km²로서 지구에서 4번째로 큰 호수 속의 섬이다. 알혼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1276m의 높이를 가진 지마산(Zhima)이다. 알혼섬에는 약 2000여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러시아인과 부랴트족이다. 다른 발음으로 올혼섬이라고도 한다. 올혼이라는 이름은 부랴트어로 작은 숲을 의미한단다.

아침 식사 후 걸어서 부르한바위 쪽으로 향한다. 바람 때문에 키를 낮춘 나무들이 몸을 흔든다. 요즘 심어진 작은 묘목들은 반투명 바람막이 플라스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몽고족의 시원이 서린 바이칼호수의 부르한바위, 오늘도 그는 세월을 켜켜이 머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성스러운 이곳 부르한바위에는 전 세계의 샤먼들이 연중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알혼섬 부르한바위에 세워진 13개 오색 리본 새르개 기둥

 

가까이에서 본 세르개 기둥

일반적으로 샤머니즘의 고향으로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 지역을 꼽는다지만, 북반구 샤먼들의 성지는 바로 바이칼호수의 알혼섬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덕분에 알혼섬은 북아시아 샤먼들의 최후의 요새가 되었다. 징기스칸 시대 몽골 샤먼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피난처를 찾았다고 한다. 그 후 브랴트족의 불교 포교시대와 18세기 라마교 탄압시대에는 브랴트인 샤먼들까지 이곳으로 찾아들었다. 알혼섬과 바이칼호수에서는 지금도 전통적인 샤먼의식과 제물을 바치는 의례가 성스럽게 행해지고 있다.

너도 나도 수없이 소원을 빈다

바이칼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바로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고 생각하는 알혼섬의 부르한바위이다. 성황당이라고 생각되는 13개의 새르개 기둥이 오색빛깔의 리본을 겹겹이 두르고 있다. 이곳이 아시아에서 가장 기가 센 곳이란다. 쑥부쟁이, 민들레 등 난쟁이 들꽃이 쌀알처럼 피어있다. 부르한바위 근처, 그믐달 모양의 호숫가에 발을 담근다. 바이칼에 손을 담그면 5, 발을 담그면 10, 온몸을 담그면 30년이나 젊어진다나. 그것을 미리 알았으면 수영을 하고 나오는 건데, 아쉽다.

온몸을 담그면 30년이나 젊어진다는 그믐달 모양의 바이칼 호숫가

  숙소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한 후, 버스에 오른다. 자작나무숲을 지나 바다의 동물원이라고 불리는 곳에 버스가 정차한다. 사자바위, 악어바위가 물에 잠겨 있었다. 비포장 길을 따라 북쪽으로 버스는 액셀을 밟는다. 알혼섬은 동고서저형이다. 동쪽지형은 험준하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서쪽으로 길을 내며, 달리고 있다.

우리를 싣고 달린 러시아 자동차

잠시 화장실도 볼 겸, 소나무 숲속에 자동차가 멈춘다. 시베리아 숲의 맑은 공기가 온몸으로 빨려들어간다.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크고 작은 일을 본다. 다시 버스가 멈춘 곳, 여기는 뻬시안카. 2차 대전 때 포로수용소였던 곳이다. 글씨의 내용은 알 수 없는 간판만이 그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호숫가에는 당시 배다 드나들었다던 나루터 흔적만이 파도에 일렁이고 있었다.

하이보곶 가는 길 호숫가 버려진 시설물
바이칼호수 삼형제 바위
하보이곶 근처 새르개에서 아내와 함께

드디어 알혼섬의 북쪽 끝, 하보이곶이다. 죽은 나무들이 길옆에 말없이 세월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삼형제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전설에 의하면 독수리가 알혼섬의 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들에게 죽은 고기를 절대 먹지 말라고 당부했단다. 그러나 배고픔을 못 이긴 삼형제가 죽은 고기를 먹게 되자, 독수리가 아들 삼형제를 바위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알혼섬 북쪽의 여인바위

다음은 여인바위.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왼쪽으로 먼저 가면 아들을 낳고, 오른쪽으로 먼저 가면 딸을 낳는다나. 바위의 모양이 하트처럼 생겨서 사랑바위라고도 한다. 아내는 다리가 아프다고 여기에 오지 않았다. 이젠 아들도 딸도 더 낳기 싫은가보다.

자동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우리의 숙소가 있는 후지르마을로 간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흙길, 자동차는 계속 달린다. 나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차창 밖 풍경을 계속 찍었다. 시간 반쯤 지나 자동차는 우리를 어제 들렀던 슈퍼 앞에 세워준다. 소 세 마리가 동네의 큰길 가운데 물이 고인 곳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그 광경이 신기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거리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바이칼호수의 소들

슈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일행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앞쪽 넓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무심코 내 발길은 그들을 따라 숙소 쪽으로 가고 있다. 어제 본 후지르마을의 주변 형태를 짐작하며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 숙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확인이 되지 않고 말이다. 내 발길은 어느덧 숙소에 와있었다. 그러나 방문은 자물통으로 굳게 잠겨있다. 우리 일행은 아무도 도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차, ‘우리 일행이 나를 찾고 있겠구나.’ 나는 그 즉시 지름길로 슈퍼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생소한 길인지라 슈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다시 숙소 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는 순간 숙소에 와있다고 했다. 그리고 발길을 재촉했다. 숙소에 거의 와서야 일행을 실은 자동차를 발견하였다.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행은 내가 행방불명된 줄 알고, 슈퍼 앞에서 마냥 기다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제일 걱정을 많이 했을 것이다.

가이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고 했다. 나의 큰 실수였다. ? 슈퍼에서 자동차 안을 살피지 않았던가? 나이을 먹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바보가 되는 것일까? 오늘은 정말 내 자신을 바보라고 불러야겠다.

저녁식사 후, 오늘은 맨 끝 쪽 선하네 방에 가서 보드카를 마신다. 금강회의 옛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큰한 상태에서 아내와 시베리아의 밤하늘을 보았다. 아내는 하늘에 빗금을 긋는 유성을 보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 중 우리 부부에게 행운이 찾아오려나?

 

4일차, 2019. 9. 26() 다시 이르쿠츠크로 가다.

6시에 기상이다. 아침 산책 겸 아내와 함께 어제 갔던 부르한바위를 다시 찾아갔다. 일출을 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동네 개들도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개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질이다. 개들의 천국이다. 그런데 다리를 다친 개도 있다. 그 개를 다른 개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그제 밤 우리의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다던 옆방 아줌마도 보인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패키지여행을 30여 번 했단다. 그리고 항공마일리지로 제주로 날아가 제주올레 24코스를 완주했단다. 대단한 아줌마였다.

알혼섬의 일출 직전 모습

아내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보며, 점프하는 사진을 서로 찍어주었다. 내 마음은 아직도 사춘기, 아내 마음은 소녀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식당, 호텔, 가정집 주위에 소, 개들이 여기도 자기들 영역이라며 풀을 뜯는다.

이른 아침 부르한 바위에 모인 사람들
아침 해를 맞이하는 알혼섬의 견공들

아침식사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내와 국민체조를 하였다. 흥미로운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다시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다. 아쉬운 마음에 숙소 앞에서 아내와 사진을 찍는다.

아내와 국민체조를 하다

사륜구동 자동차에 몸을 싣고, 포구에 도착하여 배에 오른다. 갈매기들이 함께 바다를 건넌다. 금발의 머리 아가씨가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기 위한 것이다. 호수 건너 선착장에 도착하니, 5개의 새르개가 반겨준다. 새로 만든 것인지, 색깔리본이 몇 개 감겨 있지 않았다.

선착장에서 본 5개 세르개

버스가 다시 우리를 반긴다. 화창한 날씨, 푸른 하늘에 구름이 섬을 이루고 있었다. 늦가을의 평원을 달린다. 잠시 쉬어가라고 버스가 선다. 길 건너엔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 중년 러시아 여자들이 병에 든 무엇인가를 진열하고 앉아있다. 버섯을 절인 것 같았다. 가이드 ? 한국 사람들은 버섯을 사지 않느냐?’고 한단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겠지.

점심식사 카페에서 하다

점심식사는 KAE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 했다. 카페라는 뜻이란다. 러시아어에서 f 발음이라고 한다. 돼지고기, , 팬케이크, 그리고 홍차가 나왔다. 기념품가게에 들른다. , 자작나무공예품, 차가버섯, 보드카, 그리고 형형색색의 러시아인형 마트로시카가 떼로 모여 내 눈길을 잡아끈다. 아내는 보습크림이라며, 화장품 몇 개를 산다. 아마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고픈 모양이다.

즈나멘스키수도원 들른다. 초록색 지붕에 새하얀 건물의 벽이 눈에 들어온다. 황금십자가들이 햇빛을 반사한다.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수도원이었던 이곳은 이르쿠츠크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300년 전 목조로 건축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단다. 1672년 석조 건물로 재건축되어 지금도 수녀원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정원에는 시베리아를 처음 발견한 셀리호프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무덤엔 후손이 없다고 나무 모양인데, 허리부분이 잘린 것 같은 흰색비석도 보였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서있는 해군제독 꼴착의 동상

수도원 앞에는 꼴착의 동상이 우뚝 서있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독일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해군제독이다. 그는 볼셰비키에게 이곳 이르쿠츠크에서 총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새파란 하늘을 가르며 비행기가 가을 하늘에 하얀 금을 긋고 있었다.

주황색을 띈 건물이 웅장하게 눈에 들어온다. 카자흔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고 두 손을 모아본다. 밖에 나오니, 화단의 꽃들이 선명하다. 날개 달린 사자상이 보인다.

카자흔 성당에서

나무집마을 130번가 카페거리에 발길이 닿는다. 길가 철제 난간 위에 하얀 비둘기들이 앉아 있었다. 신기하여 사진을 찍으니,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반갑게 부른다. 나는 즉시 손사래를 쳤다. 그 순간 우리 일행의 한 남자가 얼떨결에 접근한다. 그러자 손에, 양쪽 어깨에, 심지어 머리 위에까지 비둘기를 한 마리씩 올려놓고는 바삐 사진을 찍어댄다. 그리고는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나서 해결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마 백 달러쯤 뜯긴 것 같았다. 사기꾼 같은 러시아인들에 실망했다.

금강회 일행과 카페에 들어간다. 밀맥주와 흑맥주를 시켰다. 밀맥주는 오미자 맛, 흑맥주는 깔끔한 맛이었다. 내가 시킨 흑맥주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본 러시아의 아가씨들은 예쁜 얼굴에 키 크고, 날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녀들과 데이트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아가씨들이 중년이 되면 거의가 비만이 된단다. 커피에는 항상 디저트를 함께 하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주로 먹으며, 길디 긴 겨울에는 활동량이 적어서 그렇단다. 카페에서 나와 거대한 사자가 담비를 물고 있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꿈꾸어왔다. 그러나 가이드의 얘기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일주일만 타면 완전 거지 몰골이 되어 내린다고 한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제대로 씻지 못해 러시아 사람들의 양고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한다. 따라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시험으로 타보고 도전하는 것이 좋을 거란다.

퇴근시간이다. 여기도 도시라고 거리의 차가 밀린다. 저녁식사 장소의 식당이름이 김치이다. 고려인 3세가 운영한단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었지만, 뭔가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싱싱한 상추쌈과 고추장은 맘에 들었다. 다시 오는 날 묵었던 앙가라호텔에 짐을 푼다. 755호이다. 길고 좁게 자로 된 방이다.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서로 뚝 떨어져 있는 침대는 몸을 대기도 전에 삐거덕 된다. 러시아 호텔수준이 이런 정도인가보다. 마트에 들러 물과 불가리스를 샀다. 휴대폰을 여니, 고국의 뉴스는 조국 소식으로 덮여있었다.

 

5일차, 2019. 9. 27() 바이칼호수를 다시 느끼다.

 새벽 비오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침침한 도시의 불빛이 물기를 머금고, 아스팔트에 깔려 있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하는 이르쿠츠크의 가을이 깊다. 벌써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니, 감기 기운인지 몸이 무겁다. 짐을 싸고 버스에 오른다. 축축한 러시아, 우산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거리의 화초배추가 우리나라의 겨울 모습이다.

09:30분 이르쿠츠크의 남쪽으로 비를 맞으며 버스가 달린다. 러시아인들의 주말농장과 세컨드하우스라는 다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주말이나 휴일에 거주하며 감자, 오이, 양파 등을 키워 싱싱한 식탁을 만든다고 한다.

딸지 목조박물관에서

10:30분 먼저 도착한 곳은 러시아 민속 박물관의 일종인 딸지목조박물관. 이곳에서 유리제품이 많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지면에서 띄워져 지었고, 창문이 작다. 현재 기온은 3(체감온도는 1), 가을에 젖은 자작나무들이 비를 맞고 있다. 차창에 서린 김이 파스텔화럼 보인다. 노란 단풍잎들이 세상의 노랑나비들이 모두 모여 마당에 깔려있는 것처럼 환상의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박물관 주변의 자작나무에도 아직 단풍이 가득하였다. 게르 모양의 상점도 있었다.

바이칼 하늘 위를 나는 새떼

박물관 근처로 앙가라강 상류가 지난다. 선하와 장쾌하게 흐르는 강가에 가서 사진기 앞에 포즈를 취했다. 선하는 강을 바라보며 양팔을 벌린다. 친구들과 커피를 한 잔씩 했다. 그리고 러시아 남자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사진도 한 컷 찍는다.

다음은 바이칼호수 생태학박물관이다. 바이칼호수에 서식하는 민물어종과 기타 바이칼에 대한 자료를 전시한 곳이다. 박물관 2층에 올라간다. 고등어와 비슷한 오믈이라는 물고기를 비롯하여 민물연어가 박재되어 있다. 러시아의 상징인 독수리와 물범도 함께 말이다. 2004년에 개관한 이곳 수족관에는 2마리의 물범(이곳 이름 네르파’)이 천연덕스럽게 유영을 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성 니콜라이교회로 발길을 옮긴다. 19세기 거상인 세르브리야코프가 바이칼을 건너고 있을 때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될 위기에 처하였다. 그때 항해의 수호신 성 니콜라이가 그를 죽음에서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에 세르브리야코프는 감사의 마음으로 성 니콜라이교회를 건축했다고 한다.

바이칼호수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앙가라강 입구인 리스트비얀카에 발길을 올려놓는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닭고기가 입에 착착 붙었다. 식당에서 나와 건물의 반대편 방향의 가을을 배경으로 여러 판의 사진을 찍었다. 러시아의 특징적인 건물들이 목가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체르스키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 러시아 여인들

케이블카에 오른다. 우리 앞에는 선하네 부부가 타고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체르스키전망대가 나온다. 어제까지 알혼섬에서 실컷 보았던 바이칼이 다시 눈 아래에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다. 멀리 브랴트족이 신성시하며 제사를 지낸다는 샤먼바위가 보인다. 원래 아파트 2층 높이였는데 댐을 만드느라 수몰되어 머리 부분만이 보인단다.

전망대 아래 벼랑을 뒤로 하고

전망대 아래는 벼랑이었다. 건물의 기둥에는 오색리본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빌면서 매어 놓았으리라. 호수도 아름다웠지만 가을이 무르익은 단풍물결이야말로 장관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아내와 손잡고 걸었다. 이국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 길을 걷다니아내가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까지 찍었다. 가을을 가득 담은 자작나무 길의 풍치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내와 자작나무 단풍길 걷기
점심시간 식당 밖으로 본 알혼섬의 마을

점심식사는 명태요리와 빵이었다. 다시 호수에 도착하여 유람선에 오른다. 러시아 의 삼색 줄무늬 깃발이 펄럭인다. 사람들은 거의가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는 없었다. 갑판에서 호수를 보며, 뛰는 가슴과 함께, 마음까지 뛰며 러시아를 느끼고 있었다. 출렁이는 푸른 물결을 가슴에 담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품었다.

바이칼 물 한 잔 마시다
바다 같은 바이칼을 다시 사진에 담다
바이칼 호숫가 시설물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선원이 가이드와 함께 은빛 양동이로 만든 두레박을 이용해 호수의 물을 퍼 올린다. 그리고는 컵에 따라 먼저 마시는 시범을 보인다. 깨끗한 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물을 한 컵씩 마셨다. 나도 물론이다. 구름이 산맥을 만든다. 설산처럼 보인다. 이르쿠츠크 사람들은 바이칼호수를 바다라고 생각한다. 알혼섬의 동쪽을 큰 바다, 서쪽을 작은 바다라고 부른다.

재래시장에 전시해 놓은 신선한 생선들

 

바이칼호수 안내판에서

호수 근처 마을, 재래시장에 도착한다. 아이쇼핑을 하다가 생선가게에서 관심을 보이니까, 러시아 청년들이 생선요리를 내 입에 넣는다. 입맛을 다시며 그들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오믈이라는 바이칼호수에서 잡은 생선이었다. 우리 일행은 오믈을 사서 보드카와 함께 그 맛을 깊게 음미하였다. 호숫가에서 흐린 날씨에 직접 다시 보는 바이칼호수의 모습은 더욱 넓고 깊게 보였다.

사우나 벽에 걸린 자작나무 묶음(목욕 용품임)

사우나를 하러 간다. 남자들이 먼저 하고, 여자들이 나중에 했다. 좁은 공간 무릎을 맞대고 건식사우나를 한다. 땀이 흐르면 바이칼에서 퍼 올린 욕조에 풍덩 빠져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 그렇지, 바이칼 물에 온몸을 담갔으니, 정말 30년이 젊어지려나? 푸른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는 벽에서만 폼을 잡고 걸려 있었다.

토마토, 파프리카, 상추가 혼합된 채소에다가 수프, 돼지고기, 그리고 와플과 블랙티가 함께 한 저녁식사를 한다. 그리고 이르쿠츠크공항으로 향한다. 가이드 윤성씨에게 꼭 성공하라고 빌어주었다. 자정쯤 KE984 비행기는 우리를 싣고 이륙한다. 잠깐 눈을 붙였더니, 01시가 넘어서 기내식이 나온다. 아직 저녁식사로 뱃속은 그득한데 또 식사라니 난감하다. 레드와인을 곁들여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6일차, 2019. 9. 28() 다시 고국으로.

 심야 꿈속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비행기는 우리 일행을 인천국제공항에 내려놓았다. 정제된 모습의 인천국제공항, 모든 것이 스피디한 우리나라, 와이파이가 펑펑 터지는 대한민국. 외국에 나가봐야 우리나라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이었다. 의정부로 가는 버스도 첫 출발이 아직은 멀었다. 여행사에서는 우릴 이렇게 일찍 귀국시켜 놓고 여행일정으로 하루를 잡았다. 그들의 상술에 웃음이 나온다.

06:10분 의정부행 7200번 리무진에 오른다. 다시 눈을 잠깐 부쳤다 뜨니, 우리가 내려야할 송추였다. 캐리어를 챙겨 자동차가 바삐 다니는 도로를 건너고 다시 개울가 다리를 건넜다. 개천에서 우리 부부를 거의 일주일이나 기다린 우리 승용차가 반겨준다. 그러나 먼지를 먹은 데다가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자동차는 얼룩, 얼룩 엉망이었다.

차에 몸을 실은 우리 부부는 기산리 고개를 넘어 저수지의 가득 출렁이는 물을 흘끔 본다. 그리고 육지의 보금자리 서광아침의빛 아파트와 다시 만난다. 꿈에도 그리던 바이칼호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