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여행의 압권, 고흥 일주일 살기
1일차 2019. 11. 1(금) 고흥 녹동항에 발을 딛다.
제주여객터미널에서 16:30분발 배에 올랐다. 배는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녹동항으로 향한다. 창밖을 보니, 수많은 인파와 자동차를 실은 배는 미동도 없이 이미 스크류를 돌리고 있었다. 바다가 궁금한 나는 갑판으로 올라갔다. 고비, 타클라마칸사막에서 출발한 미세먼지가 온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시야를 흐리게 하는 황톳빛 허공이 내 가슴까지 답답하게 만들었다.
갑판에서의 낭만은 미리 포기했다. 객실에서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우두커니 앉아 빗금 긋는 TV화면을 눈에 넣었다, 꺼냈다만 반복한다. 그나마 전화는 터져 다행이었다. 고흥에서 동행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방금 송광사에 들러 사찰행사에 참석 중이라는 첫 전화였다.
갑판에 나가니, 이미 밤. 초승달 혼자 희미한 별과 손을 붙들고 나를 내려다본다. 여객선은 밤바다 위에 부유하는 것처럼 고요하다. 가끔 엔진소리가 귀청을 간질일 뿐이다. 하지만, 배는 섬을 박차며 쉬지 않고 하얀 거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육지를 향해 밤바다를 직선으로 가르고 있었다. 양귀비 눈썹 같은 점점 서쪽으로 기울진다. 불빛만 연속 깜박거리며, 자신의 외로움을 알리는 작은 섬들. 어느 덧 우리 배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금대교 밑을 통과하고 있었다. 녹동항의 화려한 불빛이 광도를 높이며, 나를 맞이하고 있다.
20:25분 배는 기적을 울리며 제주도를 떠난 사람들을 남해바다 녹동항에 토해내고 있었다. 거금도의 불빛이 밤바다 위에 눈부시게 깔려 있다. 하선을 위해 계단을 밟다가 순간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다, 친구들이었다. 47년 만에 내 눈 앞에 나타난 친구들. 땅에 닿자마자 악수를 하고, 포옹까지 했다. 그리고 얼른 시장끼를 해결하러 간다. 국밥집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아줌마가 서빙을 한다. 제법 한국말을 한다. 고향 아줌마처럼 훈훈하다. 돼지국밥에 고흥 유자막걸리가 식탁에 놓였다. 고등학생들이 환갑을 지나 첫 잔을 부딪쳤다.
승용차에 오른다. 팔영산 자연휴양림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친구 대식이가 자동차의 엑셀을 밟는다. 거리는 40km 정도, 쭉 빠진 국도를 지나 구불구불 시골 밤을 가른다. 휴양림 안내판이 어둠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이다. 자동차의 전조등은 연속으로 좌우로 고개를 돌린다. 드디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팔영산 자연휴양림, 산막3동.
캄캄한 밤을 헤친 자동차만 마당에 남겨두고 숙소에 들어선다. 방바닥이 고향의 아랫목처럼 따끈하다. 짐을 내려놓고, 상을 펼친다. 유자막걸리, 잎새주에 돼지족발, 순대를 꺼내놓는다. 그리고 40여 년의 회포를 걸죽하게 푼다. 고흥에서의 첫날밤, 아득한 옛날 고교시절의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2일차 2019. 11. 2(토) 거금도를 지나 소록도의 수호천사들을 만나다.
일찍 잠에서 깨어 숙소의 문을 연다. 그곳은 산소 공장 숲속이었다. 참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잎이 색색으로 가을을 흔들고 있었다. 이 아침 나도 자연의 일원이 되었다. 친구가 틀어놓은 7080노래가 정겹게 다가온다. 아침식사는 누룽지를 끓였다. 총각김치가 입맛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바나나, 요플레로 디저트를 가미했다.
08:30분 드디어 고흥 탐방의 첫날 테이프를 끊는다. 승용차가 우리 일행 4명을 싣고 달리는 곳은 거금도. 황사 가득한 하늘이다. 푸른 하늘이 출렁거려야 할 이곳 한려수도 고흥, 근데 이게 웬일인가? 이웃 중국에서 날아온 흙먼지가 청정 고흥바다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제주에서 보던 황칠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가 반긴다. 우주장례식장을 지나 소록대교를 거쳐 거금도에 발자국을 찍는다.
이 섬은 2017년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 해안 길이 정겨운 거금도는 거대한 낙타 모양의 섬이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다른 섬들이 방조제를 막아 몸집을 키우는 바람에 지금은 열 번째로 내려앉았다고 한다. ‘거금도’란 이름은 큰 금맥이 있는 섬이란 뜻을 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서는 금이 생산되지 않는다니, 어쩐 일일까?
거금도 둘레길 초입에 들어선다. 마라톤코스와 똑같은 42.195km. 7개 코스로 이루어진 풍광이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2코스 솔내음길이 나타난다. 오르막과 내리막 해안길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지루할 틈새가 없었다. 바다가 낳은 섬들과 리아스식 해안이 마치 미술박물관의 수채화처럼 내 곁을 지나간다. 바다가 어깨춤을 추며 흥얼거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4총사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해안길을 걷고 또 걷는다. 초록빛 파래가 싱싱함을 흔들며 밀려오는 바다. 자갈, 모래가 바닷물을 받아 안으며, 잘그락 잘그릭 내 귓바퀴를 돌린다.
해변에서 멸치 말리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멸치 통을 들어올리는 자그마한 크레인이 흥미롭다. 잠시 멈추어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 길을 급히 꺾었다. 그러나 그 길은 억새와 찔레나무가 엉클어져 있었다. 우리는 잠시 혼돈 속으로 빠졌다.
찔래 가시를 헤치며 힘들게 언덕을 올랐다. 고구마 밭이었다. 농부들이 가을을 수확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우리 일행은 허리 굽히고 일하는 농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인사를 받던 어르신이 조선낫으로 고구마 껍질을 쓱쓱 벗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일일이 권한다. 어적어적 소리를 내며, 남녘의 맛을 느낀다. 어르신께서는 비닐포대에 고구마를 반쯤 담아 우리에게 건네주신다. 숙소에 가서 쪄먹으란다. 우리는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라도의 따뜻한 인심을 이길 수 없었다.
오천항 갈매기소리가 귀를 가득 채운다. 바위섬이 우뚝 서서 바다를 지키고 있다. 자전거 동호회원 들이 보인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구호를 붙이고 있다. 여수에서 왔단다. 그들은 소원동산을 향해 무엇인가를 빌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금산면사무소가 있는 곳의 선미식당이다. 비빔밥과 김치찌개를 2인분씩 시켰다.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맛은 천국이었다.
숙소로 되돌아가는 길, 다시 거금대교를 거쳐 아기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에 발을 얹는다. 철이 들면서부터 언젠가는 방문하고 싶었던 곳, 국립소록도병원으로 향한다. 바다를 감싸 안은 데크길에 가을을 담뿍 담은 나무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한려수도의 정취를 발산하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의료기관이다. 한센인의 진료·요양·복지, 자활지원과 한센병에 대한 연구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100여년 전인 1916년 봄에 개원한 한센인병원. 국가에서 특별히 한센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을 쏟은 곳이다. 모든 한센인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미션으로 하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에는 한센병 극복의 역사와 한센인의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호인 검시실에 들른다. 해부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망환자의 검시 해부실이다. 안쪽은 검시 전 유해를 보관하던 영안실로 사용되었단다.
다음은 등록문화재 제660호인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이다. 환부가 짓물러 진물이 나고 썩어들어가며, 손발이 문드러진 사람들, 코가 헐고 눈까지 보이지 않아 문둥병이라 불리며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한센인들. 그 슬픔들이 여기에 모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천형의 섬 소록도.
1962년 이곳에 푸른 눈의 두 외국 앳된 수녀가 홀연히 나타났다. 오스트리아 가톨릭교회의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이다. 소록도의 수호천사라고 불렸던 두 수녀. 그녀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낀 전문의들도 꺼린 환자들을 맨손으로 어루만지며 치료하고, 외로움 마음들을 감싸 안았다. 눈만 뜨면, 백합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환자들과 식구가 되었다.
두 천사는 매년 조국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모금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고국에서 의약품을 모았다. 그녀들은 소록도에 폐결핵센터와 정신병동을 세웠다. 한센병자 아닌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까지 건립했다. 두 수녀가 가장 기뻐했던 일은 환자 부부한테서 태어난 아이가 정상적인 나무가 되어 쑥쑥 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한센병을 완치하고 섬을 떠나 헤어졌던 가족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고국을 떠난 하얀 얼굴 천사들. 그녀들은 43년간 소록도에서 세상의 벼랑 아래로 추락한 사람들에게 삶의 전부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는 인생의 저물녘에 다다른 수녀님들은 2005년 초겨울, 돌연 편지 한 통씩을 집집마다 남겼다.
한센인들의 눈물은 비가 되어 소록도를 매일 적셨다. 그러나 천사들은 서둘러 고국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 때는 이미 늙고 병든 몸. 더 이상은 자신들이 병원에 짐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 머나먼 동방의 나라에서 평생을 받친 두 천사의 제목 없는 사랑. 그 소리를 들은 내 가슴 그저 먹먹할 따름이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쑥스러움만 가득해졌다.
우리 일행은 우주천문과학관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걱정했지만, 다행이 문을 열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을 관측하였다. 젊은 남자 강사의 설명이 진지하였다. 그리고 플라네타리움을 통하여 별자리의 신비로움에 잠시 빠졌다. 저녁식사를 할 겸, 고흥읍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마침 제1회 고흥 석류유자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흥군에서 펼친 10월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닷새 간의 행사였다. 고흥군청 앞 광장과 풍양면 대청마을에서 연 제1회 고흥유자석류축제 .유자와 석류 등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을 홍보하고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처음으로 여는 축제란다. 첫 행사인 만큼 눈길 끄는 즐길 거리와 체험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자 마을인 풍양면 대청마을 유자 밭에서 노랗게 익은 유자 따기, 유자청 담기 등 현장 체험과 향기 나는 유자 밭을 나들이 걷기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흥군청 앞 광장에서는 유자 맥주, 향주 등 음료 시음 행사가 우리들을 부르고 있었다. 유자 피자, 백설기 음식 시식, 석류 에이드 만들기 그리고 유자ㆍ석류로 즐기는 체험 거리와 색다른 볼거리가 묻어나는 20 여종의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유자와 석류는 고흥의 대표 특산물로 전국 생산량의 53%, 석류는 68%를 차지하고 있는 고흥군 농촌의 중요한 소득원이란다.
3일차 2019. 11. 3(일) 나로도 우주과학센터는 고흥의 랜드마크.
새벽을 마시며, 휴양림의 숙소 주변을 거닐었다. 만추의 정취가 그윽한 숲속, 관리사무소 계단에 올라 팔영산을 올려다보며 하루의 시동을 걸었다. 조반은 누룽지를 구수하게 끓였다.
우주과학센터로 향한다. 길가, 해창만 오토캠핑장이 갈대밭과 어울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나도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따고 싶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로켓의 위용이 고흥의 랜드마크를 자청하고 있었다. 센터에 들러 모닝커피로 식도를 달래고,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나로우주과학관은 우주과학기술의 전시․교육기능을 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우주센터 방문자센터 기능을 수행하는 호기심을 부르는 과학관이다. 로켓, 인공위성, 우주공간 등을 소재로 한 전시체험공간과 4D 돔 영상관,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내게 관심을 끈 것은 4차원 돔 영상관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 과학교육의 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주센터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깔끔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었다. 이제 쑥섬으로 향한다.
갈매기들이 배 주위를 빙빙 돌며, 함께 바다를 건넌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7 가고 싶은 섬’ 33섬 가운데 하나로 뽑힌 쑥섬(애도). 이곳은 전라남도 제1의 민간정원이다. 국내 유일의 해상 꽃정원과 난대 원시림이 울창한 숲이다. 탐방로에서 만나는 바위들이 말 못할 사연을 품은 것처럼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낭만의 등대 길이 우리에게 힐링하며 살라고 주문한다.
선착장을 거쳐 갈매기 카페, 난대원시림, 환희의 언덕을 지난다. 그리고 몬당길, 우주정원, 여자산포바위, 남자산포바위, 신선대, 동백길을 거쳐 사랑의 돌담길까지 온갖 이야기꽃을 피우며, 젊은 시절처럼 낭만에 푹 빠졌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많다는 섬. 길고양이 40여 마리가 살고 있는 쑥섬을 ‘고양이 섬’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본다. 무언가 튀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있었다. 해변의 시멘트 길에는 계절을 잊고 핀 동백꽃들이 나뒹군다. 꽃잎을 주워 한 장씩 줄로 모아 이름도 써보았다.
그 순간 한 친구가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우린 바로 약국을 찾아 삼만리행을 감행했다. 여기저기 헤맸지만, 결국 고흥 읍내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식사는 노다지식당이었다. 고흥 유자향주를 곁들여 도가니탕을 한 그릇씩 맛있게 해치웠다.
4일차 2019. 11. 4(월) 팔영산에 올라 고흥을 품다.
아침에 세수만 간단히 하고는 숙소에서 바로 산을 오른다, 고흥반도의 진산, 팔영산이다.
먼저 몸을 올려놓은 곳은 가장 높은 봉우리인 깃대봉. 팔영산은 고흥읍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기암괴석이 출중했다. 산세가 험준하여 만만하지 않은 산. 여덟 봉우리가 남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있다. 고흥의 어느 곳에서도 눈에 넣을 수 있는 기품이 빼어난 산, 그 산이 바로 팔영산이다.
특히 제1봉인 유영봉에서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까지 이어지는 바위능선 종주코스가 압권이다.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멀리 일본의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단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섬들은 제각각 개성있는 몸놀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인 고흥반도가 출산한 아들, 딸처럼 올망졸망하였다. 동쪽으로 펼쳐지는 여자만의 일출광경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내려와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미르마르길로 향한다. 걸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산책로. 미르마르의 미르는 ‘용의 순 우리말’이고, 마르는 ’하늘의 순 우리말‘이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출발하여 해변을 따라 용바위까지 짙은 갈색 데크와 나무계단이 우리의 낭만감성에 불을 당긴다. 다정한 연인들은 모두 이곳에 와서 팔짱 끼고 걸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주발사전망대로 향한다.
우주발사 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건축되어 있다. 우주도서관과 우주체험관 등도 갖추었다. 전망대는 나로우주센터로부터 직선거리 15km에 위치하며, 나로호 발사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어 매스컴을 타는 곳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해당화 몇 송이가 붉은 빛을 띄며, 내 눈길을 유혹한다. 사자바위를 지나 끝 지점의 용바위에 다다른다. 먼 옛날 남해의 바다의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 암벽을 기어올랐다는 전설을 가진 용바위. 암벽 중간에는 승천하는 용의 무늬가 걸작이다. 여러 컷의 사진을 찍는다. 점심식사는 영남면 소재지의 만나식당이었다.
백반과 함께 나온 반찬이 오늘도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음식의 고향은 역시 전라도라고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첼로의 현처럼 날렵하게 다가오는 팔영대교 위를 씽씽 달린다. 그리고 적금도에서 진한 커피로 반 백년의 우정을 또 나눈다. 오후의 나른함이 눈꺼풀을 밀어내린다. 보물 제 1307호, 능가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능가사는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더불어 호남의 4대 사찰이다.
능가사의 대웅전은 정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 남해안 지역의 웅장한 건축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술사적 가치로서도 무게를 더하는 사찰이다. 대웅전 뜰의 국화향기가 풍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사찰 앞 길가엔 원색의 간판이 우뚝 서서 고흥의 자랑 석류와 유자를 알리고 있었다.
오늘은 고흥장날, 시장에서 저녁 음식재료인 돼지고기, 고흥 한우고기, 채소 등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저녁식사는 만찬이었다. 지글지글 후라이판을 달구는 고기안주에 싸한 잎새주가 곁들여졌다. 술을 깰 겸, 친구들과 밤하늘의 별자리 탐험하자고 제안했다. 4총사는 얼큰한 얼굴로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심술쟁이 구름이 방해를 놓고 말았다.
5일차 2019. 11. 5(화) 고흥에서 하루 외출하고, 중산 일몰에 빠지다.
상쾌한 아침이다. 휴대폰에서는 채정은 작사, 한태수 작곡인 민요풍의 가곡 ‘아름다운 나라’를 소프라노 신문희가 부르고 있었다. 오늘은 잠시 고흥 밖으로 발길을 옮긴다. 먼저 보성에 소재한 조정래문학관이다.
조정래문학관은 전시실 2개 층과 전망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김원씨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건축되었다. 작가 조정래가 지은 전 10권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문학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태백산맥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하여 보성군에서 설립한 문학관이다. 단일 문학작품을 위하여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 문학관이란다.
전라남도 보성군에서는 1993년부터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로서 문학관 조성을 계획했단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이념 분쟁에 휘말려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다행이도 2005년 이 작품이 국가보안법을 위반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다. 그 해 시월 바로 착공한 뒤, 2008년 늦가을 개관하게 되었다.
1층에는 ‘태백산맥’ 전 10권의 육필 원고 1만 6500장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의 취재수첩과 카메라, 작가가 직접 그린 벌교읍내와 지리산 일대의 약도 등 작품의 탄생 과정이 세밀하게 전시되어 있다.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때그때 떠올랐던 생각들을 기록한 수첩이 바로 지금의 소설 ‘태백산맥’을 출산한 소중한 자료가 된 것이다.
다음은 가을이면 생각나는 순천만 갈대밭이다. 가을이 떼로 밀려왔다, 함께 밀려가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순천 아랫장의 국밥이다. 역시 오늘의 음식도 입맛을 곱빼기로 높여주고 있었다. 선암사를 거쳐 고흥으로 귀환하여 중산 일몰 속으로 빠진다.
아무리 감정의 깊이가 얕고, 눈물이 마른 사람이라도 이곳의 풍광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내 가슴 속에도 황혼녘 감정의 물기가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우리가 인생을 마무리 할 때는 황혼녘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이며, 맥박의 박자를 끊는 석양 같은 인생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했던 시인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지를 답해 주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돼지삼겹살에 잎새주였다. 거기에다 거금도 막걸리가 오늘도 우리 입맛의 흥을 돋우었다.
6일차 2019. 11. 6(수) 고흥 분청문화박물관에 가다.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하였다. 먼저 두원면에 소재한 분청문화박물관이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터. 사적 제519호인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마침 눈망울 초롱초롱한 학생들이 체험학습 차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곁의 가족문학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의 문학 업적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었다. 예술 2대 가족, 세 사람이다. 1대인 조종현은 시조시인이다. 대표작인 ‘의상대 해돋이’가 눈길을 끌었다. 2대인 소설가 조정래와 김초희 시인부부이다. ‘사랑굿, 어머니’로 유명한 김초희 시인은 서예에도 일가견을 보여주고 있었다. 뭔가 톱니바퀴처럼 각이 진 조정래문학관보다는 고전적인 부드러움이 또 다른 맛을 보여주었다.
점심은 면사무소 근처의 포두식당이다. 백반이 나왔다. 얼굴이 말끔한 주인아줌마의 인상이 좋았다. 가수 ‘남진’을 닮았다니까, 신이 났는지 얘기꽃을 피운다. 여기는 대한민국 대표가수 남진만이 아니라 이낙연 국무총리 등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음식점을 홍보한다.
다음은 마복산의 향로봉에 올랐다.
고흥지역의 간척지 평야와 품격 있는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내 눈에 호사를 준다. 기울어지는 오후 길을 따라 지족도로 향한다. 자동차에서 밖으로 눈을 돌린다. 감나무들이 수많은 등을 달고 가을 일기를 쓰고 있었다. 여기 고흥은 유자와 석류가 유명한 곳. 하지만, 나는 대봉감도 거기에 포함시키고 싶다. 묘지 앞, 길가에까지 주먹 크기의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으니 말이다.
지족도에 닿자,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공사 중이라고 차를 돌리란다.
게를 잡는 초로의 남자분과 몇 마디 대화를 하고는 바로 고흥 읍내로 발길을 돌린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장소는 고흥읍내의 ‘소문난 식당’이었다. 푸짐한 생선구이에 부라보를 외치며, 소주잔을 부딪친다.
숙소에 들어와 거금도 막걸리와 입새주로 고흥에서의 마지막 파티를 벌렸다. 그리고 숙소 밖의 밤하늘을 올려본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별자리 탐험이다. 초승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초저녁 하늘엔 여름철의 별자리인 백조, 거문고, 독수리자리 그리고 별들의 천국 은하수가 우리의 눈길을 밤하늘로 끌어올렸다. 가을철의 대사각형이라는 페가수스자리와 W자의 카시오페아자리가 선명하게 계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늘이 좁아 더 이상의 별자리는 볼 수 없어 아쉬웠다.
7일차 2019. 11. 7(목) 고흥이여, 안녕.
오늘은 고흥 일주일 살기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에서 팔영산을 배경으로 마지막 인증샷을 휴대폰에 담는다. 그리고 먼 길 의정부까지 달려야 한다. 나도 제주로 가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친구 대식이가 몰고 온 자동차지만, 오늘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는다. 남성의 기개를 보여주는 지리산, 성삼재에 오른다. 차디찬 날씨에 안개까지 짙어 자동차들이 기어간다. 중간에 따끈한 커피로 시간을 대신하였다.
단풍 가득한 가을 골짜기를 굽이굽이 지나 정령치에 차량을 멈춘다. 쌀쌀했지만, 그런대로 날씨는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다시 남원 광한루에서 이도령과 춘향이를 만났다. 남원추어탕으로 점심 에너지를 충전했다. 역시 전라도 음식은 달랐다. 우리 일행은 북으로, 북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서울의 러시아워가 길을 막고, 또 막는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육지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저녁을 지나 한밤 별들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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