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주 여행
제1일차 2020. 2. 18(화) - 다시 남반구로 떠나다.
14일 제주에서 육지로 올라왔다. 다음 날 큰아들 남인이네 식구들, 그리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둥지를 튼 막내아들 남규를 만났다. 오랜만에 광사동의 ‘나리오리집’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손주 가온이, 시온이가 쑥쑥 크는 모습이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남규도 어서 짝을 만나 손주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손녀딸 가온이가 내가 팔을 벌리자, 안기려고 뛰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귀염둥이를 가슴에 품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꼬맹이 손자, 시온이는 아직 낯을 가린다. 월요일인 17일 오전엔 의정부성모병원에서 뇌 MRI를 촬영하였다.
드디어 오늘은 대양주로 여행을 떠나는 날, 오늘도 가슴이 설렌다. 오후 2시쯤 택시를 타고 송추로 달린다. 다시 7200번 버스에 올랐다. 어제 눈이 온지라, 세상이 온통 소금 빛깔 천지였다. 겨울의 막바지 눈부신 한낮 햇살이 봄을 부르고 있었다. 영종대교를 건넌다. 썰물이 빠져나간 바다가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16시쯤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공항을 거닐던 로봇이 내게로 다가오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바쁜 마음에 로봇의 요청을 외면한 것이 미안했다. 아내와 3층 A카운터 노랑풍선에서 안내원을 만나 여행안내를 받았다. 공항이 한산하다, 중국에서 온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가보다
탑승권을 끊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환승하여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가는 표다. 짐은 오클랜드로 부쳤다. 보안검사 중 아내의 배낭에서 물과 함께 연필 깎는 칼이 두 개나 나왔다. 아내는 면세점에서화장품을 사고는 어디론가 계속 통화중이다. 43번 게이트에서 대기한다. 집에서 아내가 싸온 감자가 입맛을 달군다. 저녁 7시 20분이 탑승시간, 아직 2시간 반쯤이나 남아 있다.
Asiana항공 OZ601편에 오른다. 조간신문을 손에 든다. 가운데 줄이다, 아쉽다. 4좌석 중 2좌석은 비어있었다. 3년 만에 범 보수통합신당이 출범했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인천에서 시드니까지는 거의 10시간의 비행시간이 필요하다. 재작년 남미를 다녀온 후, 다시 적도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북반구의 겨울에서 남반구의 여름을 맞이하러 가는 것이다. 사정상 탑승 후 다시 내려야하는 승객 때문에 이륙이 지체된다는 멘트가 나온다.
초저녁 8시 반경 이륙한 비행기는 금방 해발 8,550m 상공을 지나는 중이라고, 모니터가 알려준다. 9시가 넘어서 기내식이 나온다. 치킨, 빵, 아이스크림이다. 레드와인을 시켜 입맛을 돋운다. 역시 나는 여행 체질인가 보다. 비행기는 군산, 광주를 거쳐 일본의 큐슈 상공을 가른다. 모니터는 고도 10,668km, 속도 1,000km/h, 외부 온도 -50℃를 알려준다.
푸른 바다는 이미 암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세이제도를 비껴 계속 밤의 북태평양 속으로 빠져든다. 아내는 세 자리를 독차지하여 침대를 만들고 잠에 빠진다.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좌석으로 승격한 것이다. 새벽 5시쯤 아침식사가 나온다. 나는 오믈렛, 아내는 죽이다. 야프섬, 팔라우를 지나 파푸아뉴기니의 비스마르크산맥을 넘고 있다고 모니터가 또, 알려준다. 그리고 비행기는 호주 대륙으로 진입하였다. 이제부터는 호주시간, 우리 한국보다 2시간이 빠르다. 창밖엔 아침이 문을 열고 있었다. 하지만 가운데 줄에 앉은 덕에 창밖에 펼쳐지는 호주대륙의 풍광을 볼 수 없었다.
아마 동쪽은 바다요, 발아래는 사막 아니면 초원이겠지. 국토의 90%가 사막인 호주. 쿡타운, 볼와라, 짐피를 거쳐 시드니에 가까워진다. 지난번 화재가 난 블루마운틴의 숲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행기 아래 세상이 궁금하다. 모니터에서는 기내 스트레칭 체조가 나온다. 고도를 낮추던 비행기는 드디어 우리를 시드니공항에 내려놓는다.
제2일차 2. 19(수) - 뉴질랜드에 발을 딛다.
현지시간 오전 8시 15분. 뉴질랜드행 환승을 위하여 호주에 잠시 내린 것이다. Thank you, See you again. Here is Sydney 등의 환영문구가 우리를 반긴다. 가이드가 없고, 한국인도 없어서 그런지 환승이 낯설다. 현지 안내원에게 묻는다. 그가 스마트폰에 영어로 문자를 입력한다. 그러자 바로 환승방법은 한글로 번역되고, 글자가 내 눈에 들어온다. 2층에 올라와 게이트 번호를 받았다. 계절은 순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팔, 반바지 차림이 보인다. 우리 일행을 만났다.
정오쯤 QUANTAS(Spirit of Australia) 항공기에 몸을 싣는다. 잠시 눈을 감는 사이 하늘로 오른다. 남태평양의 푸른 하늘이다. 가을로 들어가는 망망대해가 설렘으로 출렁거린다. 시드니에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Auckland) 쪽으로 비행기는 날아간다, 남동동 방향으로.
발 아래 하늘은 어머니가 수제비를 떠놓은 것처럼 조가비구름이 떠다닌다. 넉가래로 눈을 밀어놓은 것 같다. 아니 옛날 막내동생 백일 때, 어머니가 쪄놓으신 백설기 같기도 하다. 수평선 저쪽은 얼마 전 페루 리마에서 쿠스코로 향할 때의 안데스산맥의 만년설 같은 구름이 나를 부른다. 다시 완전히 구름바다가 만들어졌다. 저 구름 아래엔 소나기가 내리려나, 작달비가 오려나, 아니면 흐림 일기예보가 뜨려나?
어느덧 비행기가 하강한다. 오클랜드의 짐베뜨공항이다. 참고로, 짐베뜨는 경비행기를 타고 세계 최초로 여행을 한 뉴질랜드의 여성 조종사란다. 짐을 찾고 보니, 우리 플라스틱 캐리어 하나가 표면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팀은 캐리어 하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출구 쪽으로 가니, 노랑풍선 팻말을 든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이명준이라는 이름, 제임스라고 불러달란다.
이번 대양주여행의 일행은 10명. 목동에서 온 4식구, 전주에서 온 젊은 부부, 영천에서 온 마라톤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가 팀을 이루었다. 캐리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영천에서 온 부부와 함께 가이드에게 갔다. 그리고 가이드에게 우리 캐리어의 아래 귀퉁이가 파손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가이드는 우리를 사무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전후사정을 들은 항공사 직원은 서류를 내민다. 나는 거기에 캐리어의 브랜드, 구입연도 등을 적어 넣었다. 보험으로 해결해야 할지, 보수해야 할지 묻는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후 항공사 직원은 내게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검은색 캐리어를 보여준다. 그러고는 이것으로 대신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내 의사를 타진한다. 나는 바로 OK 사인을 보냈다. 먼저 캐리어를 찾지 못한 영천에서 온 부부 것은 호주의 시드니공항에서 실리지 않았단다. 다시 연락하여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면서 간단한 보조가방을 하나 준다.
드디어 과일에 농약을 쓰지 않는 나라, 공해가 거의 없는 자연의 나라, 뉴질랜드에 정식으로 발을 디뎠다. 한국 교민 3만 명 중 약 2/3가 이곳 오클랜드에 거주한단다. 그리고 뉴질랜드 사람의 1/3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고 한다. 북섬은 주로 온천대, 남섬은 지진대이다. 메리노양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엔 뱀, 박쥐, 악어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하러간다. 상호가 ‘종가집’이다. 뉴질랜드산 쇠고기가 식탁에 오른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코로나19 환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은 뉴질랜드, 이미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입국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첫날 숙소는 Airport Gateway Hotel. 카카오톡을 여니,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신청한 시집 창작지원금 대상자에 내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오늘 내게 고국에서 날아온 첫번째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제3일차, 2. 20(목) 키아오라, 알파카의 나라 뉴질랜드
5시 반쯤 기상, 뉴질랜드에서의 첫 일정을 맞이한다. 우리를 실은 미니버스가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 어제 캐리어를 찾지 못한 일행 때문이다. 가이드가 농담 질문을 한다. 중국말로 ‘화장실을 무엇이라고 하느냐?’이다. 사람들이 '뭐지, 뭐지?' 서로 쳐다보며 정답을 궁금해 한다. 가이드 왈~ 정답은 ‘워따똥싸’란다. 순간 웃음의 합창이다. 공항에 도착했으나, 캐리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몸에 다양한 문신을 많이 하는 마오리족이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나라, 그들의 인사는 ‘키아오라(Kia Ora)’ 악수 대신 코를 맞대며, 인사를 한다. 3번 코를 대면 결혼하자는 의미란다.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이들은 지하수 때문에 묘를 지상에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말을 할 경우 혀가 잘린단다.
심심하고 지루한 천국이 뉴질랜드,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지옥이 바로 대한민국이란다. 가이드가 유머라며, 우리들에게 질문을 한다. 추장보다 높은 것은 뭐지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며, 대답을 망설인다. 정답 고추장이란다. 그 다음은 초고추장, 최고 높은 것은 태양초 고추장이라나. 하하~~~. 사회보장제도가 잘 이루어져 세계에서 복지가 가장 잘 이루어진 나라가 뉴질랜드란다. 34가지의 복지정책을 쓴단다. 특히 뉴질랜드는 여자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미망인(과부) 수당까지 있다니 말이다.
물이 좋은 나라 뉴질랜드에 왔다. 공항, 호텔의 수돗물을 그냥 먹어도 된단다. 옛날 금수강산이었던 우리나라도 마을마다 파놓은 바가지 우물, 두레박 우물로 백성들과 가축이 목을 축였는데…. 사람이 그리운 나라, 알파카(비쿠냐)의 나라, 핵발전소가 없는 나라, 그린피스의 본부가 있는 나라 뉴질랜드. 천혜의 자연과 온화한 기후를 바탕으로 그들은 세계적인 관광국가가 되어 있었다. 국토 대부분이 해양성기후로서 여행하기에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농부 한 명이 소유한 목장의 기본 면적이 100만평, 라마류에 속하는 양의 일종인 알파카 1마리가 차지하는 초원이 1200평이란다.뉴질랜드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목축업 국가이다. 자동차에서 창밖을 본다. 도로변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에서 소와 양들이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6,000만 마리의 양과 800만 마리의 소가 살고 있다. 경작지 대부분이 목초지로서 가축을 위한 사료를 생산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여름이 서늘하여 목초가 풍부하고, 인위적으로 초지를 조성하기에도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뉴질랜드는 대영제국의 ‘고기창고’라고 불렸다. 현대식 대형 냉동선이 육류를 지구 반대쪽의 아주 먼 곳까지도 운반할 수 있게 되면서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목축업 국가로 도약하게 되었다.
북섬에서 남섬으로 기차가 연결된다고 한다. 두 칸 정도의 기차가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의 1층은 레일이 깔려있고 2층엔 버스를 싣는다고 한다. 우리를 실은 버스가 잠깐 선다.
거대한 사과모형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아내와 사진을 꾹 박는다. 이번엔 옥수수 밭이 연속이다. 자귀나무, 소나무, 편백나무, 미루나무, 양버즘나무가 차창을 스친다. 칸나가 붉은 벼슬을 내민다. 차창의 양쪽을 연속으로 스치는 구릉들이 마치 고도 경주의 신라 왕릉 같다. 목장의 가장자리엔 전기철책이 경계를 알리고 있다. 다시 길가에 아름드리 가로수가 언뜻언뜻 지나간다. 언덕 위에서 풀을 뜯는 소와 양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한 폭의 유화처럼 보인다. 뉴질랜드는 경찰이나 검찰은 크게 힘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농림부가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단다. 그에 따라 수의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단다. 과연 농업국가구나.
오클랜드에서 버스로 3시간쯤 이동하여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표현한 와이토모 동굴(Waitomo Caves)에 도착했다. 이곳은 북섬의 와이카토 지방에 있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반딧불이의 일종인 ‘글로우웜(Glow Worm)’이 서식하고 있다. 종유석, 석순, 석주가 가득한 동굴 아래로 냇물이 흐르고 있다. 배를 타고 머리를 들어 신비로운 글로우웜과 처음 만난다. 전등이 없는 동굴 속이다. 밤하늘의 은하수가 페스티발을 펼치는 것 같았다. 글로우웜에서 Fish line이라는 낚싯줄 같은 가늘고 하얀 줄이 아래쪽으로 무수히 뻗어있다. 와이토모란 마오리어로 물과 동굴을 뜻한다. 우리를 태운 배는 선원이 밧줄을 당겨 움직이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먹을거리가 풍부한 휴게소가 왜 없을까? 이 나라에는 세탁소와 안경점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안경점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국가정책으로 빌베리라는 열매를 많이 먹어 그렇다고 한다. 빌베리는 눈 건강에 좋은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함량이 특출하기 때문이란다.
점심은 와이토모 바비큐. 소스를 발라 먹는 BBQ, 그 맛이 일품이었다. 다시 1시간 반쯤 이동한다. 유황온천의 도시 로토루아에 버스가 멈춘다. 먼저 아그로돔(Agrodome)농장이다. 실내 공연장에 들어선다.
관객들이 모인 앞쪽 무대에 양들이 등장한다. 먹이로 유인하면 목동의 명령에 따라 양들이 속속 등장한다. 공연의 마무리는 양털깎기 쇼였다. 양털은 1년에 두 번씩 깎는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하루에 720마리의 양털이 생산된단다. 여기에서 양털 깎기 명장은 14.2초마다 한 마리씩 깎는 72살의 목동이다. 양털 깎기는 주목적이 양털생산이지만, 병균의 서식을 막는 데도 한 몫을 역할을 한단다. 새끼 양에게 젖먹이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밖의 ‘Sheep Dog Working’이라는 팻말이 붙은 잔디밭으로 나간다. 그곳에선 목동이 개를 시켜 양몰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목동의 휘파람에 맞춰 양몰이 개가 재빠르게 달리며 양떼를 몬다.
다음은 팜 투어, 트랙터를 타고 아그로돔 직원의 안내를 받는다. 여기는 알파카들이 사는 목장. 안내원은 제시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한국인 여자였다. 뉴질랜드에서 밑바닥부터 출발했단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 직업전선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당당하게 트랙터를 모는 대견한 코리언 여자 전사였다. 메리노 양털은 불연성이란다. 이곳에서 유명한 동물은 단연 페루가 원산지인 비쿠냐의 일종인 낙타과의 알파카이다.
알파카는 혈액 속 산소의 운반효율이 좋아 고산지대에서 살기에 적합하다. 어린 알파카의 털은 양털보다 가늘고 곧다. 또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직물을 만드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해마다 한 차례씩 털을 깎는데, 한번에 3.1kg 정도까지 털을 얻을 수 있다. 알파카는 침을 뱉을 줄도 알 정도로 영리한 동물이다.
검은색 알파카 털은 염색이 안 되며, 일반 양털에 비해 가격이 10배쯤은 높다고 한다. 고어텍스처럼 가운데가 비어있어 알파카 털로 만든 이불에 올라가면 발이 시원하다. 따라서 여름철의 카펫으로 사용한다든가, 입원환자의 욕창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좋다고 한다. 오염된 모피를 깨끗이 세탁하는 방법을 배웠다. 베이비파우더를 뿌리고 5분 이상 지난 후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깨끗해지는 것이었다.
알파카에게 먹이를 직접 준다. 양들이 사람들에게 모여든다. 흰색, 갈색, 점박이 등 털 빛깔도 가지가지. 알파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그래도 열심히 입놀림이다. 내 손에 침이 묻는다. 순간 알파카와 친구가 되었다. 임신을 했는지 배가 불룩한 알파카도 내 곁으로 온다. 아내가 먹이 주는 모습을 찍는다. 아내는 내 사진을 찍어준다. 키위와 과일주스 시음도 한다. 잠시 기념품점에 들르니, 다양한 알파카 인형들이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양몰이 개 동상, 그리고 양털을 깎는 목동의 동상에서 사진 한 컷씩 남긴다. 아내도 멋지게 폼을 잡는다.
다음은 개인이 운영한다는 레인보우 스프링스(Rainbow Springs). 뉴질랜드의 토종 나무와 풀들로 이루어진 숲을 산책한다. 먼저 오리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약수로 칼칼한 목을 축였다. 아내도 시원하단다. 고비,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거대한 삼나무도 보인다. 푸른 하늘과 연못이 조화를 이룬다. 폭포가 있고, 그 아래 송어가 유영하는 모습이 선경이다. 키위새를 컴컴한 둥지 안에서 보았다. 뉴질랜드가 원산이지만 멸종 위기종이란다. 이곳엔 키위새 이외에도 케아, 카카, 투이, 웨카 등 다양한 뉴질랜드 고유 새들이 살고 있었다.
이어서 로토루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아오랑기 피크(Aorangi Peak)에 오른다. 길은 1차선, 좁은 길을 꼬불꼬불 몸을 비틀며 창밖을 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전망대에 오르니, 해가 지는 로토루아의 풍광이 눈부시게 눈에 들어온다. 철사를 조립해 만든 거대한 십자가 모형에서 차례로 사진을 찍는다. 저녁은 그곳에서 스테이크로 만찬. 오늘의 숙소는 Sudima Hotel이다. 그곳에서 폴리네시안 스파를 한다.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유황온천욕으로 남반구에서의 피로를 말끔히 씻었다. 하지만 밤새도록 호텔방에서 악취가 진동하여 힘들었다. 알고 보니, 온천수에 포함된 유황 때문이었다. 그래도 안락하게 꿈나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제4일차, 2. 21(금) - 살아있는 지구를 만나다.
오늘은 불금이다. 우리를 실은 차량은 영화 쥐라기 공원‘잃어버린 세계’의 촬영지로 알려진 레드우드로 향한다. 아직까지 보지 못한 굵직굵직한 수십만 그루의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의 생장속도를 갖는다고 한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목숨을 바친 뉴질랜드 병사들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육종한 것이란다. 지금의 약 400만평의 수목원이다. 산책코스는 15분에서 8시간까지 걸리는 다양한 코스로 개발되어 있었다.
소나무, 삼나무, 편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레드우드 수목원. 실버펀이라는 은빛고사리가 나무 밑에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참고로 뉴질랜드의 고사리 마크는 우리나라의 KS 마크에 해당한다. 트래킹코스는 색깔로 구분되어 있는 표지판을 따라가면서 선택할 수 있다. 나무의 아랫부분이 노란색을 띄는 것은 유황 때문이란다. 키가 70m 이상 몇 아름씩 되는 수목이 울창하다. 이곳 임업시험장에서 약 2㎞의 거리를 따라 피톤치드와 세상에서 가장 맑은 산소를 맘껏 마시며, 아내와 손을 잡고 걸었다. 잠시 제주도의 비자림을 걷던 생각과 오버랩이 되었다.
가이드가 유머 삼행시를 꺼낸다. 하리수, 하-하리수가 벗는다. 리-리얼하게 벗는다. 수-수컷이다. 김희선, 김-김희선이 벗는다. 희-희미하게 보인다. 선-선다. 서갑숙, 서-서갑숙이 샤워한다. 갑-갑자기 이상해진다. 숙-수그러든다. 썰렁한 개그에 잠시 썰렁한 웃음을 뿌렸다. 뉴질랜드에서 학교는 공부보다는 주로 인성교육에 치중한단다. 초등학교에서는 7년 중 2년은 인성교육, 그리고 중학교 2년, 고등학교는 5년 과정이란다. 시골의 경우엔 홈스쿨을 통하여 방송통신교육이 이루어진단다. 과제물을 수거하기 위해 헬기를 투입하는 경우도 있단다.
다음은 테푸이아 마오리 민속촌. 다른 말로 ‘끓는다’라는 의미의 ‘와카레와레와레와’이다. 이곳은 마오리 원주민의 전통가옥, 각종 공예품 등 과거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0여 미터쯤 되는 기둥에 혀를 길게 내민 나무 조각들이 보인다. 마오리족을 상징하는 것이란다. 공연장에서는 웃통을 벗은 근육질 남자들과 건강미 넘치는 여자 원주민의 하카댄스, 포이댄스 춤과 노래가 펼쳐진다.
이곳 와카레와레와에는 500여개의 Mud pool, 그리고 온천이 있는 지열지대이다. 성분은 계란 썩은 냄새가 나는 유황온천. 이들 중 65개의 분출 구멍이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7개의 간헐천(Gyser)이 맹렬하게 활동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포호투 간헐천(Pohutu Gyser). 한 시간마다 뿜어진다는데, 마침 우리의 발길이 그곳에 닿자 맹렬하게 분출하고 있었다. 30m 정도의 끓는 물이 하늘로 오르며 맹렬한 기세로 포효하는 모습은 옛날 마오리족 남성들의 용맹성처럼 보였다. 설설 끓는 물이 줄줄 아래쪽으로 흐른다. Mud pool에서는 마치 거대한 솥에 팥죽이 끓는 것처럼, 가마솥에 엿을 고는 것처럼 진흙 죽이 펄떡펄떡 숨을 쉰다. 이곳에서 살아있는 지구를 증명하는 것이리라. 20년도 훨씬 전 미국 옐로스톤에서 보았던 간헐천 생각이 난다. 점심은 지열을 이용하여 조리한 마오리의 전통식 항이정식이었다. 음식은 유황닭, 감자, 고구마, 빵이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태평양의 태풍이라는 윌리윌리도 거의 없는 나라, 뉴질랜드의 도로는 거의 구불구불 편도 1차선이다. 한번 사고가 나면 엄청 막힌단다. 북섬의 도로변은 구릉의 연속이다. 길가 자연 목장엔 수많은 양들이 누에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옛날 우리나라 보릿고개 시절의 밥풀처럼 보인다.
골드키위 와인, 마누카 와인, 빌베리 와인이 유명한 나라, 이곳에서는 결혼식을 와이너리에서 많이 한다고 한다. 국가에서 빌베리를 초등학교 때부터 계획적으로 먹여서 눈이 좋은 나라. 뉴질랜드에서는 안경점이 거의 없다니, 신기한 나라이다. 골프장은 우리 돈으로 하루 15,000원이면 친다는 골프천국 뉴질랜드.
시골마을에서 차량이 섰다. 길가에 책 20여권 정도가 진열된 미니 도서대가 보인다. 그곳에서 한 여인이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주유소도 보인다. 주로 CALTEX.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선다. 진열대 아래엔 ‘Life is short, Enjoy your Dessert’라는 재미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이스크림의 양이 너무 많아 내겐 벅찼다.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가이드의 표정이 외국생활에 지쳤는지 향수병에 걸린 것 같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단다. 우리 한식에 빠진 아이들. 에버랜드, 롯데월드, 지하철…등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그렇게 좋아하더란다. 아주 한국에 살자고 애원을 해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쇼핑이다, 건강식품점. 여인들은 이것저것 관심이 많다. 우리 아내도 여러 가지를 사고 있었다. 관광을 왔는지, 쇼핑을 하러 외국에 왔는지…
다음은 Michael Joseph Savage Memorial. 마이클 조셉 세베지란 분은 뉴질랜드의 노동당 출신 첫 번째 총리를 지내신 분. 서민과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한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잔디와 꽃으로 조성된 공원은 단아했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인다. 멀리 항구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바라다본다. 마침 결혼한 부부가 멋진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들러리로 온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녁은 본가네,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곁들인 한식이었다. 생수병에 넣은 소주 반 컵이 따봉이었다.
숙소는 첫날 묵었던 Airport Gateway Hotel. 오늘은 일찍 꿈나라로 향한다.
제5일차, 2. 22(토) - 남섬으로 가다.
새벽 4시쯤 기상, 재빨리 짐을 꾸려 오클랜드 공항으로 향한다. 아침은 도시락, 6시 반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행 Air Newzealand, NZ517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에는 뉴질랜드의 상징인 고사리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는 기분이다. 8시가 좀 넘어서 비행기는 목적지에 착륙하였다. 남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크라이스트처치. 나이가 지긋한 가이드가 보인다. 이름은 전명수 님.
검은색 벤츠 차량이 우리를 맞이한다. 쿡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섬과 마주보고 있는 남섬. 서던알프스 산맥이 있는 쿡산(3,754m)을 최고봉으로 이고 있다. 남섬은 인구 110만 명 중, 40만 정도가 크라이스트처치 등 몇 개의 도시에 거주한다. 산은 대부분 초지, 소와 양의 방목장이다. 나무는 오히려 평지에 많이 자라고 있었다. 뉴질랜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우유조합이 있단다. 13,000여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한 그 이름은 폰테라(Fonterra). 농부 1인 당 30만평의 목장에 600여 마리의 가축이 풀을 뜯는단다.
캔터베리 대평원이다. 빙하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이 평원은 북쪽으로 콘웨이강, 서쪽으로 서던 알프스산맥, 남쪽으로 와이타키강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300m 지대에 193km 길이의 농경지와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 그리고 초지 위를 이동하며 물을 뿜어주는 스프링클러가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서고동저형의 지형은 푄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풍부하여 목축업을 하는데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남섬은 하루에 4계절이 나타난다고 한다. 여름에는 강수량이 적어서 스프링클러가 돌아간단다.
북섬의 지형들은 대부분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남섬의 경우엔 평원과 구릉이 교차되어 훨씬 지형이 지루하지 않다. 구릉지의 경우 풀은 아래쪽부터 산봉우리를 향하여 자라 오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양몰이 개가 사람 몇의 몫을 다. 산에 불이 나면 사람이 드물기에 끌 방법이 없다고 한다. 다 탈 때까지 그냥 두는 수밖에 없다나. 자전거 여행자, 캠핑카가 많이 보인다. 뉴질랜드의 수출품은 유제품, 목재, 소고기, 양고기 순이라고 한다.
테카포(Tekapo호수)이다. 마운틴 쿡을 비롯한 높은 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만들어진 댐으로 만들어진 그곳은 에메랄드빛 물의 나라였다. 캠핑카도 우리 버스 곁에 멈춰 쉬고 있다. 맑은 물에 손을 씻어본다. 수력발전이 많은 뉴질랜드는 고도를 낮추면서 댐을 연속으로 만들어 전력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남섬의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상당량이 북섬으로 송전된다.
테카포에서 쿡산까지 이어지는 해발 700m 고도의 호수는 마치 거대한 강처럼 보였다. 호수의 에메랄드빛은 고도가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탄산칼슘 성분 때문이리라. 착한 양치기교회가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다. 양몰이 개의 동상이 보인다. 평생 수많은 양들을 몰며 살아간 개들의 헌신적 활약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음은 푸카키(Pukaki)호수. 우윳빛 물빛이 순간 ‘나도 그림 한번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메리노양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동상을 안고 사진을 찍는다. 뉴질랜드의 최고봉 쿡산이 구름에 가려져있어 눈에 넣을 수 없었다.
아담한 시골마을 크롬웰(Cromwell)이다. 주변에 과수원이 많아 오밀조밀 과일가게들이 늘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일교차가 크단다. 따라서 과일의 빛깔이 선명하고,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카와라우강 143m의 번지점프 다리이다. 이곳에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하늘로 던져지는 사람을 내려다본다. 로프에 다리를 매고 뛰어내리는 사람의 괴성이 물에 반사되어 산에서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강바닥에서는 안전요원이 보트에서 뛰어내린 사람을 받고 있다.
이어서 에로우타운(Arrow Town)이다. 1800년대 사금이 많이 채광될 때, 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 지금은 관광객들이 흘린 돈으로 도시가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호랑이가 장가를 가려나? 여우비가 내린다.
잠시 버스가 움직여 퀸즈타운으로 간다. 유럽의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기분이 순간 든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 시내를 산책한다. 잔디밭에 누워 포즈를 취하며, 아내와 사진을 몇 장 찍는다. 풍광이 워낙 좋은지라 사진이 멋지게 나왔을 것 같다. 와카티프호수 곁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메뉴는 오늘도 스테이크, 물론 반주로 소주 반 글라스. 뒷산은 제주도 서귀포의 고근산처럼 푸근하고, 정겹다.
테아나우(Te Anau)로 이동하여 숙소에 든다. 오늘의 이동거리는 버스로 8시간. 숙소는 The Village Inn Hotel이다.
제6일차, 2. 23(일) - 아! 밀포드 사운드
오늘은 뉴질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캐리어를 실은 보조 차량은 호텔에 떼어 놓고 간다. 가는 길 중간에 드넓은 초원에 차량이 멈춘다. 초가을 남반구의 청량한 공기를 들여마신다. 그리고 풀밭에서 젊은 날로 돌아가 점프를 하며 서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어깨에 멘 가방을 확인하니, 지갑이 없는 것 아닌가? 혹시 호텔방에 놓고 온 것이 아닐까? 아내는 계속 걱정을 하고 있지만, 내 근심은 일단 저 멀리 두기로 했다.
잠시 후 유리호수(Mirror Lakes)에서 다시 차량이 멈춘다. 그곳은 물의 거울이었다. 어떻게 바람이 한 점도 없는 것일까? 이곳의 바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호수 건너 바위산이 물속에 모두 잠겨있다. 멀리 있는 산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물속의 산. 어떻게 수면이 세상을 이렇게 대칭으로 맞춰 놓았을까? 산에 걸린 안개가 면사포를 쓴 신부 같다. 물에 잠긴 산봉우리, 나무 가지 사이를 유영하는 오리 한 쌍. 이곳이 바로 샹그릴라였다.
다시 차량에 오른다. 길은 중간에 터널로 이어진다. 더런산맥을 통과하는 1,219m의 호머 터널(Homer Tunnel). 1935년에 망치와 정, 곡괭이로 시작하여 19년이나 걸려 개통되었다. 뉴질랜드 94번 국도가 비록 1차선이지만, 이 터널을 통과하여 밀포드 사운드와 퀸즈타운이 바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을 보수하느라, 일반도로에서도 차량의 행렬은 일방통행이었다. 산골짜기의 구불구불한 도로, 산의 정수리에 내려앉은 남반구의 찬란한 햇살, 세상에서 가장 맑은 공기가 여기에 모여 있다. 높은 산에서 실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내 머리를 적신다.
2시간쯤 지나니, 목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바로 밀포드 사운드. 얼마 전 대홍수로 길이 끊겨 수많은 관광객의 발이 묶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얼마 전까지도 홍수가 수습되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이곳을 방문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여행사에서 언급했었다, 하지만, 나는 늘 복덩이 아내와 함께 행운을 달고 다닌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는 남섬의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에 위치한 거대한 빙하지형. 그 U자곡에 바닷물이 들어와 만들어진 피오르드이다. 이곳은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바다인 태즈먼해(Tasman Sea)에서 15km 내륙까지 이어지고 있다. 1,200m 이상의 계속 되는 절벽과 산의 벼랑에 울창하게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에 접한 바다에는 바다표범, 펭귄, 돌고래가 출현하기도 한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은 한때 고래잡이와 바다표범 사냥의 거점이기도 했다.
이 천혜의 비경에 끌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세계에서 몰려든다. 밀포드 사운드에는 연간 7, 8천mm의 강수량을 기록한다. 일 년 중 2/3는 비가 내리는 곳이다. 그 때마다 천의 얼굴을 가진 폭포가 만들어져 세상 사람들을 유혹한다. 우기에는 천 미터를 넘는 폭포도 있다니 말이다.
우리 일행은 유람선에 올라 짙푸른 뉴질랜드의 피오르드 속으로 빠져든다. 마이터피크, 라이언 마운틴, 보웬폭포가 사람들은 부른다. 바다 위에 뾰족뾰족한 산봉우리가 하늘로 파고들어 자연 최고의 걸작,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뱃머리에서는 남십자성이 그려진 뉴질랜드 국기가 펄럭인다.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려있다. 수백 미터의 물줄기들이 폭포가 되어 중력을 타고 쏟아진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동영상을 연신 촬영하는 가지각색 인종들. 나도 그 틈에 끼어 휴대폰을 카메라를 연신 누른다. 높이 160m의 거대한 폭포 근처로 유람선이 머리를 들이민다. 이 폭포수를 맞으면 10년은 젊어진다나. 점심식사는 유람선 안에서 뷔페였다.
가슴에 밀포드 사운드의 선경을 담아 안고 떠난다. 차량은 아침에 놓아둔 캐리어를 찾으려 어제 묵었던 호텔에 잠시 도착한다. 호텔 여자 지배인에게 지갑 분실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곱게 보관한 지갑을 서랍에서 꺼내며, 웃고 있었다. 참 좋은 뉴질랜드 사람, 고맙기가 이를 데 없었다.
잠시 고아가 되었던 지갑은 주인을 찾았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차량은 퀸즈타운으로 향한다. 가는 길, 쇼핑몰에 들른다. 사슴뿔, 양의 초유, 유황이 들어간 건강식품을 파는 곳이다. 청렴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 뉴질랜드, 너무나 평화로워 지루함이 일상이라는 나라. 이곳이 뉴질랜드이다. 저녁식사는 ‘두레’라는 한식집에서 양고기를 겸한 한식이었다.
오늘의 숙소는 퀸즈타운의 Double Tree by Hilton Hotel. 호텔 앞의 호수가 산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고 있었다. 영천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부부가 제사를 이곳 호텔에서 지냈다며, 술을 들고 우리 방을 방문했다. 해외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는 처음 들었다. 아내와 가이드, 차량 운전수와 함께 우리 방에서 간단한 소주파티를 벌였다
제7일차, 2. 24(월) - 뉴질랜드의 초고봉 쿡산을 눈에 넣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본다. 여기는 호텔 5층, 아래쪽을 보니, 마당에 대형 체스판이 보인다. 아기를 안고 걷는 젊은이가 걷는다. 나는 호수가로 나갔다. 일출 전 갈매기, 오리들이 호수 위에 잘디잘게 주름을 접고 펴며 물결을 만든다. 그 위로 산 그림자, 그리고 저편 마을의 성냥갑 같은 주택들이 유영을 하며 다가온다. 호수의 버드나무가 우리나라 청송의 주산지처럼 내게 다가왔다. 나무가 없는 저 민둥산 정상에도 양들이 살까나?
아침 일정은 와카티프호수를 따라 깊숙이 숨어있는 여왕의 도시, 퀸즈타운 둘러보기. 시내로 들어선다. 오늘도 관광객들 세상이다. 젊은이들이 전동 이륜차를 타고 모여서 있다. 살짝 흐린 날씨 고개를 드니, 산 위로 곤돌라가 사람들을 싣고 오른다. 호수로 향한다. 물에 비춰지는 산들, 나무, 주택들이 동영상처럼 흔들린다. 엄청나게 많은 갈매기들이 모래밭에서 놀고 있다.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며, 나도 갈매기가 되어본다. 아내의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걷는다. 몇 백 년은 됨직한 나무에 기대어 아내와 번갈아 사진을 찍는다. 그네를 타는 아내를 열심히 밀어주었다. 모래밭에 몸을 기댄 여러 색깔의 작은 보트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트보트를 타러간다. 사무실에 들러 방수복을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걸쳤다. 6명이 보트에 오른다. 선원이 시동을 건다. 그리고 속도를 낸다. 강이 눈앞에서 좌우로 몸을 휘저으며 달려든다. 보트가 강가의 나무에 부딪히기 바로 직전 방향을 꺾는다. 이번엔 바위 근처에서 급선회를 한다. 보트는 다시 180도 회전하며, 우리의 괴성을 유도한다. 일행들의 괴성이 강으로 계속 쏟아진다. 그들은 한국말 ‘오빠, 오빠’를 반복해 외치며 쾌감을 배가시킨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괴로운 스릴이었다. 앞으론 잔잔한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유유히 노를 저으며 세상을 관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도 볼 겸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에 들른다. 캠핑카를 비롯한 몇 대의 차들이 그곳에 쉬고 있었다. 살구, 자두, 사과, 포도 등의 과일. 그리고 채소는 브로콜리, 고구마, 양배추, 시금치, 생강, 호박 등이 보였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얼마나 몸에 좋을까? 벽엔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명함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밖엔 장미꽃이 만발하여 길 건너 하늘을 뚫는 삼나무를 배경으로 남반구의 초가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다시 푸카키호수로 간다. 그제 구름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쿡산을 오늘은 보려나? 다행이 맑은 날씨였다. 호수의 물빛이 우유에 푸른 물감을 풀어낸 것 같다. 저 멀리 만년설이 덮인 쿡산이 선명히 보인다. 남반구의 이 명장면을 못 보고 갔다면 평생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라카이아(Rakaia)강의 연어 동상에 버스가 멈춘다. 제주 모슬포의 방어 동상보다 훨씬 크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아내와 사진을 한 컷씩 박는다. 세계 녹용의 70%를 생산하는 뉴질랜드. 공항에서 내리던 비가 여기서 또 흩뿌린다. 넓디넓은 초원, 그곳에서 축사도 없이 사는 소와 양들은 오늘도 그냥 비를 맞으며 노숙하겠지. 평생을 집이 없이도 행복한 가축들. 그들은 젖을 짤 때만 한 장소로 모여 사람들에게 공양을 한단다.
저녁식사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더봄’이다. 한식에 연어회가 나온다. 오늘의 숙소는 The Garden Hotel. 호텔의 정원이 아름다운 꽃으로 폼을 내고 있었다. 밖에 나와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호텔의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순간 외국인 여자가 나를 보고 놀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I am so sorry’, ‘I am so sorry’를 반복하며 반복하며 나왔다. 그 다음 건물에 우리 방이 있었던 것이다. 그거 참, 해외에서 이렇게 엉뚱한 실수를 하다니, 엄청난 착각을 한 것이 아니라 착란이었던 것이다. 성범죄로 몰릴 번한 해프닝이었다.
제8일차, 2. 25(화) - Bula! Fiji Welcomes you
오전 일정은 에이번강(Avon River)이 흐르는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관광이다. 먼저 보타닉가든(Botanic Garden). 수백 년 된 삼나무를 비롯한 거목들이 즐비하다. 곳곳에 뉴질랜드 고유의 꽃들이 웃으며, 북반구에 사는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정원을 걷다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미로가 펼쳐져 있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기 딱 알맞았다. 아내는 나가는 길이 어디냐고 걱정부터 한다. 나는 걱정 말라며 화사하게 다가오는 꽃들과 대화를 한다. 그 앞엔 키 큰 장미 동상이 보인다. 거대한 삼나무를 만났다. 굵기는 적어도 내게 열 아름 이상은 될 것이다. 이런 정도의 나무라면, 이분은 나무가 아니다, 신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정원 안에 캔터베리 박물관이 보인다. 들어가니, 전복 껍질로 만든 전시실이 첫눈에 띈다. 문을 열자마자 탄성부터 나왔다. 어떻게 저렇게 크고 아기자기한 전복들이 여기에 모여 있을까? 그리고 마오리족의 인형들을 비롯한 그들의 삶이 전시되어 있었다. 잠시 쇼핑시간이다. 마누카꿀, 프로폴리스, 초록홍합이다. 초록홍합이 관절에 좋다고 야단들이다. 일행들은 또 열심히 건강식품을 구매한다.
피지로 날아가기 위하여 공항으로 이동한다. 점심은 유부초밥이 곁들여진 김밥이다. 오후 2시 넘어 Fiji Airway(FJ450)에 올랐다. 다시 남태평양의 북북동방향으로 지구를 돌린다. 맘씨 좋은 하숙집 아줌마 같은 까무잡잡한 피지 여승무원이 곁을 지나간다. 그녀에게 받는 서빙이 풍성하다. 태평양 한가운데로 날아올라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뉴질랜드를 내려다본다. 민둥산으로 이루어진 산맥, 그리고 주름진 산사면 아래로 구름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메마른 물줄기가 아나콘다처럼 몸을 틀고 있다. 한낮 햇살로 선텐을 하는 바다의 물결이 고급 직물처럼 눈에 들어온다.
점심을 먹었는데, 다시 기내식으로 카레 밥이 나온다. 거기에 레드와인을 걸치니, 입맛이 다시 뱅글뱅글 돈다. 여행만 나오면 식욕이 멈출 줄 모르는 걸 어찌할까나? 바다 가운데 섬이 보인다. 그 가운데에 경사가 완만한 순상화산이 지구과학도인 내게 선명하게 각인된다.
3시간여를 날아 도착한 곳은 피지 Nadi(피지발음:난디)공항. 첫눈에 보이는 간판이 붉은 색을 띈 ‘Bula! Fiji Welcomes you’이다. 그런데 서울 목동에서 온 4식구 가족이 검색대에 멈춰있다. 가방 속에 모르고 넣은 귤 한 개가 발견되어 벌금을 물었단다. 그것도 한화로 13만원이라나, 참…
젊은 가이드가 작은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준다. 피지워터도 한 병씩 나눠준다. 밖에 나오니, 후끈한 열기가 나를 덮는다. 여기는 남위 19°열대지방, 태평양 가운데의 섬이다.
피지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2,100km 거리에 위치하며, 멜라네시아제도 문화권에 속한다. 수도는 수바, 제주도 3배 크기의 비티레부 섬에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피지와 인도인이다. 경제활동은 농업과 설탕 생산, 관광업, 경공업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 체제이다. 기독교 국가로서 주식은 카사바. 평균수명은 약 70세, 국민보건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이다. 사람이 사는 100개의 섬을 포함한 약 300개의 비교적 큰 섬과 540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숙소는 Mercure Nadi Hotel. 방에 들어서니, 침대에 피지의 생화로 만든 예쁜 꽃장식이 우리를 반겼다. 피지 사람들의 센스가 돋보인다. 저녁식사는 호텔에서 10분 거리 피지 철판요리집. 현지 쉐프가 사각 양철판을 가열한다. 위에 새우,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를 굽는다. 순간 불길을 확 피어오른다. 우리들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기 위함이리라. 2가지 소스를 곁들이는 만찬, 미남의 쉐프가 음식 맛을 더해줬다.
아내는 수고해준 쉐프에게 만원 지폐 한 장을 선뜻 내어준다. 호텔방에 들어와 휴대폰 충전을 하려고 멀티어댑터를 찾는다. 그런데 그 놈을 뉴질랜드에 놓고 온 건지 보이질 않았다. 왜 이렇게 주의력이 부족한가? 건망증이 늘어나는 것일까? 옆방 신혼부부의 도움을 받아 충전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9일차, 2. 26(수) - 피지 티부아섬에서 태양을 만나다.
열대지방의 아침 호텔 풍광이 싱그럽다. 야자, 원색 짙은 꽃, 이름 모를 새, 해먹, 풀장. 내 앞의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아내와 함께 교대로 해먹에 올라 남반구의 안락함에 잠시 빠졌다. 아침식사의 디저트로 먹는 과일이 일품이었다.
오늘은 남태평양 피지의 아름다운 산호섬에서 수상 레포츠의 천국을 경험하기 위해 티부아 섬으로 가는 날. 수영복과 물을 챙기고 데나라우(Denaru) 선착장으로 향한다. 우리 버스에 외국인들도 함께 탄다. 시내를 지난다. 으리으리한 별장들이 야자수 아래에 숨겨져 있다. 은퇴자들은 100만 피지 달러 정도의 통장 잔고가 있어야 1년 비자가 나온단다. 별장 바로 앞에까지 배가 들어온단다. 자가용 배의 값이 집값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아내와 1년 정도 이곳에서 휴양하고 싶어진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붉은 빛깔의 꽃이 만발한 크리스마스 나무가 첫날 밤 치룬 신부처럼 다가온다. 바다에서는 갖가지 보트, 유람선들이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티부아섬으로 가기 위해 줄을 선다. 그리고 범선에 오른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이 한 가족을 이루었다. 파도가 파도를 밀며 범선을 쫓아온다. 멀리 섬이 배를 따라온다.
배 안에서는 피지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준다. 나도 아내와 함께 박수를 치고, 어깨를 들썩인다. 구름도 수평선 위에서 춤을 춘다. 뱃머리에서 타이타닉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는다. 공연은 계속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뱃머리의 쿠션에 누워서 선텐을 한다. 선장과 사진을 찍으며, 나도 선장이 되어본다.
물빛이 또 다른 바다와 섬을 만든다. 수평선 저쪽에서 섬들이 고개를 내민다. 여기는 또 다른 지구의 중심.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티부아 섬이 보인다. 바다 쪽으로 다리가 이어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라'(안녕하세요? 뜻), '비나까'(고맙습니다. 뜻) 소리가 연신 들린다.
섬에 발을 내딛는다. 먼저 글래스 보트에 오른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물속의 산호, 그리고 줄돔, 하늘빛 물고기, 레인보우 피쉬 등이 멋진 수영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건드리면 쏘는 물고기도 있다고 한다. 검은 피부의 안내원 아가씨가 열심히 설명을 한다. 유리 아래의 물고기들이 오히려 우리들을 구경하는 것 같다.
보트에서 내려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곳으로 간다. 잠시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한쪽에서는 스노클링을 한다. 나는 아내와 섬 주위를 돌며, 열대의 늘씬한 야자나무 아래와 모래밭을 거닐었다. ‘I Visit Fiji, 2020.2.26’이라고 썼다. 그리고 ‘김영옥 시인! 사랑해’를 또 쓰고, 하트모양으로 테를 둘렀다. 나중에 들으니, 전주에서 온 신혼부부들이 그 글자를 봤다고 한다. 점심식사는 티부아 섬에서 생선, 치킨, 소시지가 포함된 바비큐였다. 거기에 음료수까지 무한 리필이었다.
다시 범선에 올라 바닷길을 되돌아 데나라우로 간다. 피지도 바투아트 등과 같이 해수면의 상승을 걱정하는 나라. 2050년쯤엔 6천 명 정도가 이주해야 할 것이란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피지에 이민 와서 아이들을 키즈클럽에 보내면 그 곁에 앉아서 종일 지키고 있단다. 그러나 외국 엄마들은 키즈클럽에 아이들을 맡기고 밖으로 놀러나간다고 한다. 어딜 가나, 우리나라 엄마들의 헬리콥터맘 정신이 걱정스럽다. 여권을 잘 챙기라는 가이드의 말. 어떤 신혼부부는 피지를 떠나려 공항에 와보니, 여권을 호텔방 금고에 놔두고 왔다나. 그래서 헬리콥터를 타고 찾아와 간신이 비행기를 탔다는 일화를 얘기한다.
문대통령 탄핵청원이 100만 명을 넘었다는 소식이란다. 진정 국민을 위한 대통령, 애국하는 정치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배가 본섬에 가까워지면서 맹그로브 숲이 보인다. 17시쯤 데나우라 선착장에 도착하여 난디로 이동한다. 저녁식사는 레스토랑 ‘아리랑’에서 한정식이다. 숙소는 어제와 같은 Mercure Nadi Hotel. 호텔의 수영장에서 아내와 함께 수영을 했다. 외국인이 우리가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주었다.
제10일차, 2. 27(목) - 피지 민속마을에 가다.
오늘은 피지 전통 문화체험의 날이다. 원주민 민속마을(Saunaka Fijian Village)로 간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단층짜리 학교 강당 같은 건물로 우리들은 안내를 받는다. 그들이 나뭇잎에 꽃을 장식한 목걸이를 일일이 걸어준다. 그리고 환영의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피지의 전통 춤인 메케 쇼를 펼친다. 청년 남자가 다져진 카바나무 뿌리를 여러 번 주무르고, 짜내어 전통 음료를 만든다. 그것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권한다. 칡뿌리 즙 비슷한 맛이었다. 전통의상 술루를 입어본다.
원주민들과 몸을 붙이고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이번에는 작은 코코넛을 쪼개 즙을 권하기도 한다. 옆의 교실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꼬마들이 강당 밖으로 나온다. ‘Fiji Health Promoting Schools Award Ratu Nalukuya Primary School’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아마 건강증진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은 초등학교인가보다.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몸짓을 하며 반응한다. 그리고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마 관광객들이 많이 다녀가서 그런지 낯설어하지 않는 것 같다.
전통시장에 들른다. 파인애플, 망고, 바나나, 만다린 등의 과일이 보인다. 단색의 거대한 수박이 자리하고 있다. 토란은 엄청 큰 것들이 세, 네 개씩 묶여있다. 육류도 보이고 어류도 보인다. 물고기 잡는 기구,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등 다양한 물건들이 보인다. 음침한 시장 안이지만 마음만은 환하게 불라(Bula)를 외치며,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다시 어제 배를 타러 갔던 데나라우 선착장으로 간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이곳을 살핀다. 상가에 들르니, 피지 전통 나무조각품이 보인다. 거북이, 돌고래, 거대한 낚시, 원주민 얼굴 모형…등 여러 가지 작품들이다. 밖에 나와 거대한 인물상 앞에서 사진도 찍는다. 지붕을 풀잎으로 입히고, 창문은 없는 Bula Bus가 길거리를 누빈다. 점심은 중국식으로 탕수육, 찹수이, 튀김만두, 볶음밥이 올라와 입맛을 달궜다.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차량에 오른다. 아까 전통마을에서 받은 화환은 앞좌석 뒤에 걸었다. 조금 피지 원주민들의 정성을 느끼기 위함이다. 오늘은 호주의 시드니로 가는 날. 귀에 리시버를 꽂고 BTS의 아리랑을 듣는다.
목에 걸고 왔던 피지 전통마을에서 받은 목걸이를 한 번 더 걸고 사진을 찍는다. 18시 비행기 FIJI Airways FZ915편에 올라 난디공항을 이륙한다. 남자 승무원의 정성스런 서비스를 받는다. 저녁 기내식은 치킨에 레드와인, 그리고 커피였다. 호주시간 22시가 다 되어 시드니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화물 찾는 곳에 다다르기 직전, 아내가 발길을 멈추고 핸드백을 뒤진다. 비행기에 휴대폰을 놓고 그냥 온 것 같단다. 아내가 바로 비행기로 달려가 휴대폰을 찾았다. 잠시 분실이었지만, 마음이 출렁하였다.
짐을 다 찾고 일행들이 모였지만, 우리를 맞이해야 할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Welcome To Sydney’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잠시 후 나타나는 가이드, 우리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고 한다. 이름은 박세준. 그는 1993년, 22살 때 호주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작년에 22만 3천명의 한국인이 호주를 방문했단다. 오늘의 숙소는 Red Star Hotel West Ryde. 피곤한 몸, 곧장 꿈나라로 들어간다.
제11일차, 2. 28(금) - 호주에서 옛 제자 윤희를 만나다.
기상하여 호텔의 커튼을 걷으니, 골프장이 활짝 펼쳐졌다. 직원이 물을 뿌리며, 잔디를 관리하고 있었다. 호주의 맑은 공기 속으로 아침 햇살이 뿌려진다. 밖으로 나가 골프장 산책을 한다. 그러나 관리인이 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호주엔 20여 년 전쯤 내가 고양시 화정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 윤희가 살고 있다. 호텔이름과 함께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금방 보이스톡으로 반가운 목소리가 왔다. 어서 만나고 싶다고, 어느 지역이냐고, 위치를 알려달란다. 바로 구글지도를 열고 약도를 그려서 보냈다. 여보세요.‘선생님! 저 윤희예요. 호텔에서 10분쯤의 거리에 살고 있어요.’라며, 빨리 만날 시간을 알려달란다. 당장 만나고 싶었지만 오늘의 일정을 봐야한다고, 오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섬이면서 가장 작은 대륙 호주. 국토의 절반 이상은 서부의 고원 지대, 사막이 차지하고 있다. 주요 강들로 플린더스·스완·쿠퍼 강 등이다. 또한 그레이트배리어리프·멜빌 섬·태즈메이니아 등 많은 섬과 암초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다. 국민은 영국·아일랜드계가 대부분이며, 원주민이 전체인구의 약 1/5을 차지한다. 공용어는 영어, 화폐단위는 오스트레일리아달러($A)이다. 영국으로부터 1901년 독립하여 영연방에 통합되었다. 국기 속의 6개의 별은 주의 숫자를 나타낸다.
간단히 호텔 식사를 하고 차량이 출발한다. 가이드를 만난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시드니에서 퍼스까지는 3,800km의 고속도로란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480km짜리 직선 고속도로가 호주에 있단다. 호주 일주도로는 14,500km, 일주 여행을 하려면, 3~5개월 정도를 잡아야 한다. 햇빛 알레르기를 조심하라고, 선크림을 바르란다. 병원비가 내국인은 무료이지만, 외국인은 비싸단다. 맹장수술이 7천만 원이라니… 기본연금이 65세 이상은 일주일에 70만원이란다.
호주는 지상권만 사유재산이란다. 지하에서 철이나 석유, 석탄 등이 발견되면 그것은 국가소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부동산 문제가 덜 심하지 않았을까? 호주에서는 소가 3,400만 마리, 양은 1억 8천만 마리가 들판에서 집도 없이 풀을 뜯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말을 키우는 사람이 최고 부자란다. 소 300마리를 팔아야 말 한 마리를 산다니 말이다. 얼마 전 뉴스에 떠들썩하던 호주의 산불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한국의 언론이 너무 과장해서 보도한 것이란다. 호주의 시골에서는 옆집을 가는데 보통 10km 정도는 가야한단다.
호주에는 8천 6백 개의 비치, 그리고 2,400개의 골프장이 있다고 한다. 가이드의 꿈은 호주의 100대 골프장 다니기란다. 영국이 역사상 가장 후회하는 일은 호주를 독립시킨 것이란다. 지진, 해일, 태풍이 거의 없는 나라 호주. 국토가 넓디넓은 대류규모, 노천광산이 있는 자원이 무궁무진한 나라,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호주이다. 정말로 부러운 나라. 하지만 돈을 쓸데가 많지 않은 재미없는 나라가 호주란다.
먼저 도착한 곳은 페더데일 동물원(Featherdale Wildlife Park). 캥거루를 처음 보았다. 조금 멀리서 보면, 커다란 쥐처럼 보인다. 두 발로 통통 뛰어다니는 것이 귀엽다. 캥거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는다. 인형처럼 보이는 코알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고 있다. 코알라의 먹이인 유칼립투스나무 잎의 알코올 성분에 취해서 그렇다고 한다. 여기에서 펭귄이 보인다. 몸집이 아주 작은 것들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캥거루의 새끼를 키우는 주머니에서 영감을 얻어 발명된 것이 인큐베이터라고 한다. 기념품점엔 코알라, 캥거루 인형이 많이 보인다. 손주가 생각나는 아내는 코알라와 캥거루 모형이 달라붙은 아기 배낭을 산다.
점심식사를 위해 도착한 곳은 1870년도에 건축되었다는 Everton House. 야자나무, 호주 소나무, 선인장…등 열대식물들이 풍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메뉴는 오늘도 스테이크, 매일 먹어도 입맛이 당긴다. 나의 식성은 동양식일까, 서양식일까? 아니면 육식일까?
식사 후 도착한 곳은 2000년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시드니 서쪽의 국립공원 블루마운틴이다. 푸른빛의 원시림이 살아 숨 쉬는 곳. 퀸즈랜드주에서 빅토리아주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산악으로서 충청남도 크기의 국립공원. 서부 지역 거대한 사막에서 날아오는 모래먼지를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과 오스트레일리아 알프스산맥이 이들을 막아준다. 그 이유로 호주 동부의 하늘은 늘 청명하단다. 산악은 대부분 유칼립투스 원시림이 다. 이 나무에서 분비되는 수액이 강한 햇빛에 반사되어 멀리서 보면 산 전체가 푸르게 보인단다. 사암층에서 자라나는 유칼립투스는 도끼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나무이다.
세 자매의 전설이 깃들여있다는 전망대에서 장엄한 풍경을 본다. 호주 특유의 원시림의 피톤치트를 마시며 산책로를 걷는다. 옛날 광부들의 채탄작업 모습을 본다. 어딜 가나 고생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250m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내리는 관광열차 시닉 레일웨이를 타고 스릴을 느낀다. 그리고 545m 길이의 협곡을 지나는 시닉 케이블카에 올라 블루마운틴 속으로 빠져든다.
Club Merrylands에서 뷔페식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다양한 음식들로 입이 호사하였다. 이곳은 카지노가 함께 있는 노인들의 놀이 장소 겸 음식점으로 그들의 놀이터인 것이다. 노후가 풍요로운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가 부럽기만 하다.
호텔에 들어와 나를 생각해 주는 옛 제자 중의 제자 윤희에게 카톡을 했다. 윤희가 금방 달려왔다. 그리고 호텔방에서 얼굴을 마주쳤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6년 전쯤 한국에서 만나고 다시 만나는 것이다. 큰 아들 아래, 3명의 딸을 키우는 훌륭한 엄마이면서 아내가 되어 있었다. 고국의 부모님도 여기에 모시고 와서 봉양하고 있는 효녀이다. 국적은 포기하고, 완전히 호주 사람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영원히 한국 사람이겠지.
쇼핑백을 전하기에 열어보니, 여러 가지 건강식품이 가득 들어있었다. 호주에서 건강식품 사업을 한단다. 그리고 다음에 또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적어 달란다. 작년인가 카톡으로 서로 연락을 할 때,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을 내가 사양했던 기억이 난다. 윤희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아내 복에다가 제자 복까지 있나보다. 호주에서의 첫날이 인생에서 중요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윤희가 신랑과 함께 자식들 잘 키우고 부모님도 건강게 모시며 함께 이곳 호주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길 기원해 주었다.
제12일, 2. 29(토) - 시드니에 취하다.
오전은 호주의 동부 해안지역 관광이다. 1년간 9백만 명이 해외 관광객이 모여들어 한 해에 약 417억$의 돈을 쓰고 가는 관광수입 1위의 나라. 노점상이 없는 나라. IMF 외환위기의 걱정이 전혀 없는 나라. 건강 순위 세계 상위인 나라가 호주이다.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시드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해안의 언덕을 오른다. 세계 3대 미항 시드니 항구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재작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항구와 쌍벽을 이루는 항구이다. 여기는 빠삐용의 촬영지, 갭팍(Gap Park)의 80m 절벽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파도가 가슴을 시원하게 파고든다.
워낙 자연보호에 신경을 쓰는 나라. 따라서 환경부 공무원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의사의 대부분이 공무원인 나라. 그 중 가정의학과가 가장 대우를 받는단다. 마을이 들어오면 우선 골프장, 경로당이 들어온다고 한다. 차창 밖의 벤자민나무 가로수 그 곁이 골프장이다. 노인들이 유유자적 골프장을 누빈다. 연금을 받으며 편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는 나라. 요양원이 보인다, 그리고 길 건너 묘지가 있다. 그러면 자동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이 요단강이려나? 워낙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사후엔 많은 재산을 기부하는 나라가 호주란다.
본다이비치(Bondi Beach)에 들어간다. 곱디고운 모래밭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와 이곳에 모여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자외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맨 살갗을 온종일 태우는 모습이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엎드려서, 앉아서, 연인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남태평양 태즈먼해의 바다를 즐기고 있다. 어느 풍경이 이보다 더 평화롭다고 할 것인가?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바다에서는 파도타기가 한창이었다. 흰 구름은 두둥실 함께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다시 차량에 오른다. 하버브리지를 통과한다. 달링항(Darling Harbour)이다. 잠시 후 4,900명이 탑승할 수 있다는 Captain Cook Cruise에 오른다. 선상 점심식사가 나온다. 나는 스테이크, 아내는 생선. 시드니 바다를 품고 식사를 한다. 남반구에서의 이 맛을 어디에다 비교하랴. 식사 후 배의 갑판 위에 올라가 시드니를 눈에 담는다. 윤희 가족과 부모님 모두의 건강과 이곳 호주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길 기원해 주었다.
도시의 빌딩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유명한 하버브리지가 내 눈의 초점을 고정시킨다. 둥글게 굽은 아치가 꼭 옷걸이 같다고 해서 낡은 옷걸이(Old Coathanger)라 불리는 하버 브리지. 아치를 갖고 있는 다리 중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다리이다.
녹슬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페인트만도 매해 3만 리터가 넘는단다. 8차선의 자동차 도로와 2차선의 철도뿐 아니라 양옆으로 자전거 겸용의 인도가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하버 브리지는 1923년 착공에 들어가 9년 만인 1932년 3월 19일에 개통되었다. 이 다리는 1920년대의 경제 대공황 시기에 국가적 사업으로 건설된 것이다. 개통 당시 2개의 인도, 4개의 철도, 중간 차도로 구성되었으나 동쪽의 철도는 1958년 6월에 고속도로로 바뀌었다. 현재는 8차선 차도와 2개의 철도선, 1개의 인도, 1개의 자전거 전용 도로를 갖추고 있는 호주의 빼어놓을 수 없는 관광지이다.
다시 차량이 움직인다. 그리고 시드니 타워. 아이전망대에 오른다. 약 250m 높이에서 시드니 외곽까지 360°전망이 가능하다. 한글, 영어, 중국어, 일어 등으로 환영인사 글자가 뜬다. 안경을 쓰고 4D 시네마영상을 본다. 시드니 타워(Sydney Tower)는 AMP 타워, AMP 센터포인트 타워, 센터포인트 타워, 센터포인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드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호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시드니 타워 아이를 여러 바퀴 돌면서 시드니의 풍치에 빠진다. 시드니항을 감싸고 있는 건축물들이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육각형의 공원길로 사람들이 개미처럼 오고간다. 도시의 건물들이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착각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맑은 날씨, 하늘이 이렇게 청명할까! 저녁식사는 코리안 퓨전 레스토랑 ‘밀리오레’에서 된장찌개로 입맛을 달랜다. 식당 밖 벽에 ‘철수야 밥 먹자, 너가 사!’ 낙서가 보인다. 한글 낙서에 눈이 한 번 더 갔다.
해가 지는 시드니, 미세스 맥콰리스 포인트(Mrs Macqarie,s Point)로 이동한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총독의 부인이었던 맥콰리스가 이곳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린 곳이 이곳이란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 시멘트 담 위에서 부리가 긴 황새까지 와서 바다를 조망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보타닉 가든이 등을 돌려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마침 시드니에서 개최되는 '2020 게이․레즈비언 마디그라 축제(Gay & Lesbian Mardi Gras)'의 마지막 토요일 밤이란다. 마디그라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페스티벌이다. 축제기간이 되면 호주 전역에서 몇 시간의 기차를 타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찾아온 동성애자들까지 어우러져 온 거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흥겨움이 북적거린다. 동성애를 주제로 한 연극과 파티, 공연, 가장 무도회와 전시회, 퍼레이드가 이곳에서 동시에 열린다.
오늘도 젊은이 인파가 파도가 되어 거리를 온통 휩쓸고 있었다.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옷은 입었는지, 말았는지. 남녀 젊은 아이들이 동성끼리 서로 껴안고, 뽀뽀하고 팔짝팔짝 뛰고 야단이다. 젊은 목소리들이 괴성이 되어 도시의 밤하늘을 찌른다. 마디그라 축제는 1978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해마다 1만 여명 이상이 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으며, 이를 보기 위해 50만 명의 관광객과 취재진이 모여들기도 한다.
축제를 보고나서 오페라하우스 곁의 노천카페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커피, 음료수를 시키며 시드니의 마지막 밤을 음미했다. 다음은 매주 토요일 시드니의 밤을 수놓는 불꽃놀이 관람이다. 달링공원으로 간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을 걸려있다. 수많은 배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쉬고 있다. 20여 층쯤 되는 SOFITEL이라는 건물의 불빛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계단 위의 몇 마리의 두루미 모형이 둘러싼 분수가 조명을 받아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
드디어 폭죽이 하늘을 수놓는다. 연신 카메라 셔터가 터진다. 저 불꽃들은 우리나라 한국화약에서 만든 것, 마음속에 대한민국의 긍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늦은 저녁, 호텔에 들어와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제13일차, 3. 1(일) - 다시 고국으로
아내보다 먼저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보고자 했던 납십자성. 아직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한 별자리다. 뉴질랜드 국기에 나오는 4개의 별.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정말 언제 볼 것인가?
날이 밝기 전 일단 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몇 개의 별이 눈에 들어왔지만, 여기는 내 눈에 낯선 남반구의 하늘이 아니던가? 일부러 호텔의 식당 문 앞에서 어정거렸다. 주방장이 어쩐 일이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는 얼른 밖으로 나와 나를 이끈다. 그리고 골프장 쪽의 하늘을 가리키며 남십자성을 알려주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주방장이 다시 내게로 왔다. 그리고 휴대폰의 인터넷을 켜며 남십자성 사진을 보여주며 보충 설명을 해준다. 참 고마운 신사였다.
아내와 내 캐리어를 정리하고 차량에 오른다. 공항으로 가는 길, 안타갑게도 교통사고 차량이 보인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아시아나항공 OZ602편에 몸을 싣는다. 가운데 자리, 창밖을 볼 수도 없다. 그냥 잠이나 청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피곤이 밀려오거나 말거나 비행기는 호주 대륙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파푸아뉴기니를 횡단한다. 적도를 넘는다. 팔라우를 지나 필리핀해, 타이완 해역을 통과한 비행기는 우리를 인천공항에 내려놓는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다. 건강하시라고, 코로나에 조심하자고. 언젠가는 여행지에서 다시 만날 사람들 같다. 어느덧 우리나라의 해가 저물었다. 7200번 버스에 오른 우리 부부는 송추에서 하차한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택시를 탄 나는 아내와 기산리, 소사고개를 넘는다. 그리고 양주의 우리 아파트에 들어가 피로를 풀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아슬아슬하게 다녀온 보람찬 남태평양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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