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서윤규
두부를 보면
비폭력 무저항주의자 같다.
칼을 드는 순간
순순히 목을 내밀 듯 담담하게 칼을 받는다.
몸속 깊이 칼을 받고서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칼을 받는 순간, 죽음이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운지
칼이 두부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두부가 칼을 온몸으로 감싸 안는 것 같다.
저를 다 내어주며
칼을 든 나를 용서하는 것 같다.
물어야 할 죄목조차 묻지 않는 것 같다.
매번 칼을 들어야 하는 나는
매번 가해자가 되어 두부를 자른다.
원망 한번 하지 않는 박애주의자를
저항 한번 하지 않는 평화주의자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뭉텅뭉텅 두부의 주검을 토막 내어
찌개처럼 끓여도 먹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지져도 먹는다.
허기진 뱃속을 달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콩알이라 웃지만 단단한 꿈이 있었죠. 농부의 도리깨질에 튀어나와 잠깐 하늘을 본 적 있어요. 종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두부공장에 팔렸죠. 밤새 물에 불었다가 맷돌구멍에서 산산이 부서졌죠. 미안해하지 말아요. 당신이 칼로 자르고, 찌개로 끓여도 내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죠.
나는 당신의 눈빛에 생기를 주었다가, 입가에 미소가 되었다가, 문득 한숨 쉴 때 허공에 흩어져 자유가 될 테니까요. 나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잠시 당신을 꽃피울 거예요.
반칠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