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 「성선설」전문
잘 쓴 시의 대부분은 좋은 묘사보다는 '의미부여'다. 의미부여는 상상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서술하거나 아름다운 말로 치장을 했다고 해도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되기 힘들다.
함민복 시인의 3행밖에 되지 않은 저 시도 울림을 크게 준다. 어떤 과학으로도 태아의 손가락이 열 개로 형성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 태아의 노력"이라는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실로 시인이 아니면 이 위대한 여정을 저토록 명쾌한 의미부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시인이 되느냐 마느냐는 이렇게 대상에 어떤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는가에 따라서 갈린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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