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팔랑거리는 이유/김춘기
한라산 정수리 쪽으로 비행운이 화살표를 그리는 아침
휘파람새가 바리메오름으로 날아오르는데
찌릿찌릿 무선통신 중인 곤줄박이들이 오월 하늘 빙글빙글 돌리고, 녹나무 군락 수백만 이파리 하나하나가 은실 햇살 받아 초록 물결 일구는 곶자왈 구릉.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 근데 고개도 안 돌리고, 연신 팔랑거리기만 하더라구.
‘나 참’하며, 휘파람 휘~ 휘 능선으로 날아올랐지. 쥐똥나무가 피그미족 청년들처럼 모여있길래, 저 아래 초록 물결 지금 뭣들 하는 걸까요? ‘광합성 중’‘그 말은 무슨 뜻?’‘넌 몰라도 돼, 이 새대가리야.’ 쥐똥이 합창으로 비아냥거리데.
휘파람 연발로 발사하고는 분화구 아래 배풍등 덩굴 속에서 휘파람도 뚝 ‘목욕탕 아르키메데스’가 된 거야. 그게 뭘까, 뭘까? 순간 ‘유레카’ 휘파람 휙~휙. 그건 나무들이 식사하는 거였어. 나뭇잎은 수백만 개의 숟가락, 햇살은 햅쌀밥이었네.
콘트라베이스 불협화음처럼 지루하게 내리던 장마, 어제 막을 내렸지. 저 나무들 며칠째 배곯은 거지? 태양이 일억오천만km 광속 배달한 밥이 방금 도착한 거네. 목 타는 사바나에서 대초원 만난 가젤 무리처럼 저 녹나무들 식사시간이었던 거야.
사람만 밥 먹고 사나?
나무도 밥 먹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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