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오 쩐티! 인생 후반기에 만난 예쁜 소녀
김영옥
35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온 지 8년 차! 그동안 합창, 오카리나/색소폰 연주, 수채화 동호회, 요가, 인문학 및 문학 강좌 수강, 곶자왈 산책, 오름 탐방, 경로당 사무장, 복지관 할머니 문해자 교육 봉사 등 수첩에 가득한 여러 가지 활동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경로당 회원들이 모여 외식을 함께 하고 있을 때, 남편의 스마트폰에 카뚝 소리와 함께 카톡이 도착했다. 초등학교 출신 은퇴교사나 중등 국어과 교사 대상으로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사를 모집한다고 한다. 관심 있는 교사는 연락하라는 것이다. 때마침 뭔가 더 의미 있는 다른 일들을 해보고 싶은 의욕에 사로잡혀 있던 터라서 제주 시니어클럽에 얼른 연락해 서류를 제출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게 바로 1년 전 여름의 일이다.
2021년 8월, 아름다운 노후! 일하는 노후! 행복한 노후를 위해 제주국제교육원과 제주다문화교육센타 주관으로 제주시니어클럽에서 실시했던 ‘신중년 취업전문가 양성과정으로 한국어학습 전문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아침 일찍 버스를 3번씩 갈아타고 대정에서 제주시로 오가며 열흘간의 연수였지만 힘든 줄도 모르게 즐거운 연수였다. 다문화 하면 그저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외국인이었고 그들이 어떠한 이유든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게 전부였는데 연수 후 다문화가정에 대한 나의 얇은 개념은 비가 지나간 후 갠 하늘처럼 맑게 지워졌다.
열흘간의 연수 과정을 통해 제주도에 거주하는 다문화 학생 현황 및 다문화가족 이야기, 다문화가정의 언어적 특성, 다문화가정 상담, 성폭력 예방 교육, 다문화 대상 한국어 교육정책, 학습부진 다문화 학생에 대한 이해, 음운 인식 지도, 받침 없는 글자 및 철자지도, 받침 지도 및 유창성 지도, 다문화가정 지원 이야기 등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과 시각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다문화사회의 새로운 인식으로 다문화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찾아 일하고 싶은 강렬한 의욕과 정신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해 2월, 서귀포 시니어클럽으로부터 대한민국 최남단 모슬포에 거주하는 베트남 중도 입학생 한 명을 소개받았다. 이름은 쩐티 배응완, 중2 여학생이다.
2월 3일 문자로 첫 만남을 약속했다. 남편과 차를 몰고 쩐티가 사는 아파트 앞까지 달려가 동네 주위를 살피고 왔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첫 만남을 기다리는 중 바로 그 전날 저녁, 쩐티의 한국인 새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를 놀라게 했다. 내일 방문하지 말라는 한마디의 말과 함께 수화기는 끊겼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전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쩐티 아버지의 대답, 이유는 쩐티가 한국에 온 지 2년이나 되지만 한국어를 전혀 말하지 못하고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하고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베트남으로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베트남 엄마하고만 말하고 새 아빠와는 전혀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나는 쩐티 아빠에게 일단 내일 찾아뵙고 가부를 판단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쩐티를 만났다. 처음 만난 쩐티는 의기소침 자신감 하나 없이 움츠린 채 내 앞에 앉아 있는 길 잃고 헤매는 가여운 소녀같았다.
나는 먼저 설치한 베트남어 번역 앱을 열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대화를 시도했다. 쩐티에게 유튜브를 열어 요즘 연예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황민우, 황민호 형제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어머니가 베트남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또한, TV조선의 ’미스 트롯‘ 프로그램에서 미모와 함께 인기를 끄는 미국인 대학생 마리아는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트롯으로 매우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다는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두 손을 잡으며,
“쩐티야! 너도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지면 돼. 남들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오려고 난리인데 무슨 얘기야.” 그리고 설득을 하였다. “네 곁에는 엄마가 계시잖니. 내가 최선을 다하여 너를 끌어줄게.”라며, 안도감을 심어주었다.
그러자 쩐티는 한국어를 다시 배워보겠단다. 1주일에 5일씩 하루 3시간. 여러 가지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으로 현재 4개월째를 꾸준히 가르친 결과, 한국어 이해 능력과 듣기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느낀다. 자연히 의사소통능력도 많이 좋아졌다.
어린애가 엄마라는 말 한마디를 배우려면 수천 번의 청취를 통해 발화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지금은 한국말을 많이 듣기만 해도 귀가 열리고 귀가 열리면 자연 말하기도 잘하게 될 것이다. 읽기와 쓰기 능력도 어지간히 갖추고 한국어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하니 이제 말문이 트일 차례다. 단 하나, 쩐티 주변에 베트남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더 빠른 한국어습득에 방해가 되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행하게도~
지금은 K-pop, 한국 드라마, 한국 웹툰을 너무도 사랑하는 소녀가 되었다. 요즘 한국 드라마를 보느라 새벽 1시까지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KBS에서 방영했었던 ’신사와 아가씨‘ 라는 드라마를 나에게 소개해준다. 그래서 오늘은 신사와 아가씨라는 드라마 1회분을 같이 보았다. 쩐티는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스마트폰 통역앱을 통해 한국말로 주인공에 대하여 나에게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쩐티야! 그 내용 한국말로 나에게 직접 말해보렴. 드라마 혼자 볼 때도 물론 한국말도 듣고 있는 거지? 됐어 그럼, 한국어 실력 자꾸 좋아질 거야. 한 번만 듣지 말고 꾸준히 반복해서 들어보렴.” 내 말에 쩐티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한국말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 한국어학습이 끝나면 꼭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쩐티에게 요즘은 내가 오히려 K-pop, K-drama/cinema/webtoon에 대하여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온 세계가 열광하는 문화 강국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감사하고, 아직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뜨겁게 남아있는 지금, 인생 후반기 매우 보람 있고 의미 깊은 일자리를 마련하여 제공해주신 서귀포 시니어클럽에 매우 감사하다. 건강한 에너지와 열정이 남아있는 한 자긍심을 가지고 가르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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