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인생 2막, 제주에서 열다
김춘기
마음의 주파수가 거의 일치하는 아내와 함께 하는 날들이 꿀맛 같다. 나는 10여 년 전까지 육지에서 의정부 ‘부부둥지봉사단’소속으로 활동하였다. 매월 1회 독거노인의 단칸방 도배와 연탄을 배달하고, 장애아와 함께하며 주말을 보냈다. 우리 부부 팀 이름은 –천생연분-. 마음에 맞는 다양한 연령층의 부부들끼리 계좌이체로 월 회비를 모으며, 봉사 날짜를 기다렸다.
은퇴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꿈에도 그리던 곳, 제주로 이주했다. 어느덧 9년 차 제주도민이 되어 원주민들과 어울리면서 금쪽같은 하루하루의 구슬을 꿰고 있다.
원래 육지에서도 합창단 일원이었던 아내의 권유로 나도 이곳 제주에서 합창에 발을 디뎠다. 그 이름은‘미라클합창단’이다. 매주 토요일 밤 “아름다운 나라, Eres tu, 경복궁타령, 꽃 파는 아가씨, 돌아오라 소렌토로, 못 잊어, 그리고 인도네시아 민요 Sik sik batu manikkam…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부르며, 내 마음속 먼지를 씻어냈다. 그리고 서귀포 혁신도시 소재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혼디갑주합창단’을 창단하여 단장으로서 앞장서서 봉사활동도 수행했다.
퇴직 전부터 해오던 문학 활동도 계속하여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시집 두 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대정현문학 회장으로서 시화전, 문학지 발행 등으로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잠시 합창은 접고, 작년부터 다른 음악 활동으로 나는 테너 색소폰, 아내는 알토 색소폰을 메고 ‘소리샘 색소폰동호회’에서 연주를 하며, 지역의 봉사활동과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젠 제주어도 몇 마디씩은 사용하는 반쯤은 제주인이 되어있다. 워낙 바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외로움, 우울증 같은 것은 우리 부부에겐 그저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아내의 이타적이며 순수한 마음결은 늘 내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초등교사 출신인 그녀의 브랜드는 ‘열정’이다. 또한, 나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과 음악, 봉사활동에까지 하모니가 맞는다. 나는 가끔 아내에게 우리는 전생에 남매였을 거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하여튼 우리는 뭔가 입맛에 맞는‘활동 거리’를 찾는 호기심 덩어리이다.
아내는 재작년까지 수채화, 오카리나, 요가 등 또 다른 바다를 유영했다. 작년에는 서부복지관에서 문해자 어르신 한글교육, 다문화학생 가정방문교육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시간표를 채웠다.
요즘 우리 부부가 가장 보람을 느끼며 하는 일은 서귀포시 건강걷기 리더활동이다. 2021년 초 서귀포보건소에서 리더를 모집한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나는 아내와 함께 즉시 담당자와 통화하고 모집에 응하였다. 먼저 한국걷기학회의 이강옥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부터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재단법인 대한걷기연맹으로부터 걷기 지도자(2급) 자격증을 각각 취득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 장막을 치고 있었다. 온몸이 근질거렸다. 할 수 없이 아내와 단둘이 올레길, 저지오름, 병악오름, 왕이메오름, 한라산 둘레길 등을 열심히 걸으며 체력을 다졌다. 종종 이웃의 지인들 2~3명과 마스크를 쓰고, 마을 주변을 걷기도 했다.
마침내 2023년 코로나에서 해방되었다. 그때 이웃 아파트 경로당 회장님께서 아내에게 사무장을 맡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해왔다. 그곳은 우리가 이사하기 전 아내가 사무장을 맡았던 곳이기도 하다. 비록 기간제교사로 출근하는 바쁜 아내였지만, 차마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다행히 백수인 내가 어련히 도와줄 거로 생각하며, 수락한 것이었다. 나는 아내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온정에 박수를 보냈다. 사무장으로서 아내는 주로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나는 낮에 하는 경로당의 활동을 직접 이끄는 대타 사무장이 되었다.
경로당은 실버들의 보금자리이다. 그곳의 가장 큰 주제는 건강 지키기. 그곳은 60대 후반에서 80대 중반까지 3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주 월/수요일 주 2회는 스트레칭, 건강체조로 건강을 다진다. 자칭 실버 셰프들이 앞장서서 점심까지 해결한다.
처음에는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침 또는 저녁에 모여 걸었다. 그러나 걷기리더인 우리 부부는 규칙적인 걷기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리고 경로당 회원들을 설득하였다. 우리 부부가 시간을 낼 수 있는 매주 월/수요일 저녁에 함께 모여 1시간 이상씩 걷기 시작했다. 나머지 요일에는 각자 스마트폰마다 워크온(work on) 앱을 깔고, 매일 7천 보 이상 걷는 것을 기본으로 정하고 걸음 수를 서로 자랑하곤 한다.
매주 월/수요일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19:50~20:00 경로당 앞에 모여 인원 점검한 다음 은하수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준비운동을 한다. 아내는 앞에서 스트레칭과 건강체조 구령을 붙인다. 나는 사진을 촬영하며, 선두에서 일행을 이끈다. 그리고 회원들의 안전을 살피며, 체력에 따라 완급을 조절한다. 코스는 주로 영어교육도시의 ‘배움의 길’왕복. 중간지점인 한국국제학교(KIS) 근처에서 ‘스쿼트 50번 하기’로 허벅지 운동을 다지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즐겁게 걷는 도중에는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우의를 다진다.
궂은 날씨에도 걷기는 멈추지 않는다. 경로당 실내에서 TV를 켜고 유튜브에서 내려받은‘스트레칭 체조와 4마일 걷기 동영상’을 따라 걸음의 리듬을 맞춘다. 걷기를 마치면, 밤 9시 반쯤이다. 회원들은 모두 경로당에 다시 모여 과일을 깎고 차를 마신다. 그동안 나는 그날의 활동사진과 걷기 과정을 인터넷 밴드에 바로 탑재하며, 일과를 마무리한다.
경로당 어르신들이 자주 덕담을 하신다. 사무장 부부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육지에서 잘 걷지 못하던 다리가 단단해졌다고, 제주살이에 점점 매력을 느낀다.”고 말이다.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지내는 어떤 어르신 부부는 이제 제주에 완전히 정착해야겠다고, 우리에게 보약 같은 말씀을 해주신다.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부부에게 배터리 역할을 한다.
허준 선생님은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는 좋은 음식이 낫고, 좋은 음식보다는 꾸준한 걷는 것이 더 낫다.”라고 했다. 어르신들로부터 오늘이 걷는 날 아니냐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이와 더불어 우리 부부는 매월 1회 토요일 오전에는 알뜨르비행장 주차장에 모인다. 서부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송악산 힐링 걷기 활동에 대정읍 걷기리더로 활동하기 위함이다. 오늘도 이웃들과 어울리며, 태평양에서 갈매기가 실어오는 바람과 함께 보물섬 제주살이의 즐거움에 젖어있다.
요즘엔 새로운 관심을 추가하였다. 그것은 사진동호회 활동이다. 매주 오름과 바다를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풍경을 담는다. 오늘은 이번 가을 전시회에 참여할 작품을 고르고 있다. 내년에는 무엇에 관심이 꽂힐지 궁금하다.
보물섬 제주의 푸른 공기와 드맑은 암반수를 마시며, 무지갯빛 인생 2막을 잔잔하게 펼치고 있다. 날마다 이어지는 행복의 오솔길이 그저 꿈길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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