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에 함께 하는
은빛 소리물결, 서귀포를 적시다
제주 혼디갑주상록합창단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누구나 노래하지만, 합창은 더 많은 배려와 서로의 조화가 필요하다. 삶이 그러하듯 합창 역시 아름다운 화음은 너와 나, 우리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작은 빗방울이 모여 유장한 강물이 되듯 여럿이 함께 흘러야 멋진 합창이 만들어진다.
돌과 바람의 땅 제주도의 서귀포, 그곳에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시작은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30여명의 단원들이 어울려 화음을 맞추며 매주 연습하여 빛깔 고운 화음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느덧 우리 ‘혼디갑주상록합창단’은 지역사회에 아름다운 노래와 따듯한 눈길로 지친 몸과 마음들을 어루만지며 다독여주고 있다.
맨땅에 헤딩하다
2018년 2월, 공무원연금공단 제주지부에서 실시하는 ‘합창을 통한 봉사활동단원’ 모집공고를 보고 첫날 모인 단원은 고작 6명이었다. 다행이도 재직시절 오랜 합창 지휘경험이 있는 분과 기존의 아마추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어서 희망의 작은 불씨를 들고 출발하였다. 단원 중에서 단장과 총무, 지휘자를 정하고 반주악기와 악보를 준비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연금공단 강당에 모여 호흡과 발성법 등을 익히며, 합창연습을 시작했다. ‘섬집 아기’, ‘사랑해’, ‘만남’, ‘동무생각’ 등… 연습을 거듭하면서 기적처럼 단원들도 2명, 3명씩 늘어갔다. 대부분 합창경험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단원들은 지휘자의 열정에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이끌려갔다. 멀리 제주의 북쪽 끝에서 한라산길을 넘어 서귀포까지 달려오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매주 연습 날이면 열일 제쳐놓고 서귀포시공무원연금공단의 연습장에 환한 얼굴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파트를 나누어 단전에서 솟아나오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함께 같이 가자’는 의미의 제주어인 ‘혼디갑주’ 라는 말을 넣은 ‘혼디갑주상록합창단’이라고 이름 짓고, 5월 12일 드디어 발대 및 창단식을 하였다.
새내기 합창단 격을 갖추다
드디어 20명 정도의 합창단원의 목소리가 울림을 갖추기 시작했다. 정식 데뷔 발표무대를 위해 뜨거운 여름날에도 매주 꾸준한 연습으로 우리들의 목소리에 고운 빛을 입혀갔다. 이제 그 노랫소리는 우아함의 품격까지 갖추기 시작하였다. 합창단원들의 노랫소리가 공무원연금공단 강당에 계속 울려 퍼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원 중 뛰어난 실력을 갖춘 단원은 독창을 준비했다. 기타, 플루트, 하모니카 등 악기연주를 곁들이는 앙상블 보컬까지 구성하여 멋진 첫 무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한솥밥 먹는데서 생긴다는 끈끈한 정과 친선도모를 위해 두어 번의 회식자리도 마련했다. 특별한 날을 만들어 서귀포 바닷가에서 야외연습도 하였다. 또한 SNS를 통해 우리 단원들 사이의 돈독한 유대감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인들의 무대공연에 대한 정보까지도 함께 나누었다. 또한 단원들 중 일부가 그곳에 참여하여 우리 합창단의 저력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드디어 첫 공식 무대에 서다
9월 27일, 제주 새별오름의 은빛 억새가 바람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가을날. 우리 합창단은 관객들 앞에 첫 모습을 선보였다. 공무원연금공단 제주지부에서 실시하는 ‘제주문화로 배우는 제주어 교육’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의 식전 무대공연이었다. 우리 ‘혼디갑주상록합창단원’들은 검은색 단복에 나비넥타이를 단정히 붙였다. 그리고 떨리는 가슴으로 무대에 올라 실력을 펼쳤다. 생각지도 않게 힘찬 박수의 파도가 밀려왔다. 아름다운 노래에 감동이라며, 꽃다발과 함께 아낌없는 칭찬도 받았다.
기분이 들뜬 우리는 그날 저녁 자축의 파티를 벌였다.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첫 무대의 소감을 발표하였다. 그렇게 관객 앞에서 합창을 하고 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심지어는 가문의 영광이라며 감격스러워 하는 단원까지 있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습하여 ‘서귀포예술의 전당’ 무대에도 설 수 있도록 해보자고 우리 단장은 우리들의 사기를 한층 높여주었다.
진정한 봉사는 결국 나의 기쁨을 위함이다.
시월에 접어들면서 우리 합창단은 봉사활동의 길로 들어섰다. 첫 번째는 10월 13일, 서귀포시의 서호요양원. 휠체어를 타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곳이다. K님의 하모니카연주, 톱 연주에 이어 우리 모두의 합창이 이어졌다. 뒤 이어 기타연주와 함께 하는 여성 보컬연주와 구성진 우리 민요 ‘성주풀이’ 등 가을빛 사랑의 리듬으로 요양원을 가득 채워드렸다. 어르신들의 박수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어떤 할머니는 휠체어에서 팔을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우리 단원들은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껴안아 드렸다. 어르신들의 차가운 손을 잡아드릴 때마다 다음에 다시 와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다. 은퇴하고도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며, 우리 합창단원들이 함께 노래할 수 있음에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다음은 10월 24일, 서귀포향토오일시장. 공무원연금공단 주관으로 서귀포보건소와 함께하는 치매예방 캠페인의 자리였다. 우리는 노래 대신 어깨에 홍보 띠를 두르고 오일장을 돌며, 시장 상인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치매예방 홍보전단지를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치매예방 진단에도 참여하도록 적극 유도하였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아주 작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진정한 나 자신의 기쁨이고, 보람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우리들의 무대
11월 16일,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혼디갑주상록합창단’의 이름값에 빛을 더하는 무대가 이어졌다. 서귀포혁신도시를 대표하는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지역주민과 어울리는 축제 ‘혁신 2018 다 같이 더 가치’ 라는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나름 성공적인 우리의 첫 번째 공식무대발표에 이어 그 날, 우리 합창단이 또다시 공식무대의 발표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당일의 행사로는 ‘함께 즐겨요 다같이’, 농산물 직거래 장터와 불우이웃돕기 등의 ‘지역사회 상생한마당’, 연극과 합창·연주회, 인형극 등의 프로그램인 ‘지역사회 문화 한마당’이었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가 참여하는 ‘공무원 연금 동시창작, 그림그리기 대회’ 등까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서귀포시의 ‘다 더 어울림 마당’이 이어졌다.
우리 합창단은 지역사회 문화 한마당에서 더욱 수준 높은 곡의 연주를 위해 연주일 막바지에는 한 달 전부터는 일주일에 4~5회씩 자발적으로 모여 새로운 곡을 연습한 것이었다. 그 결과 성공적인 연주발표로 단원들의 성취감과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우리 합창단 중 소질 있는 단원들로 구성된 ‘소피아 앙상블’은 기타와 톱 등의 여러 악기 연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다른 단원은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민요를 춤까지 곁들이며 불렀다. 이어서 소프라노 솔로와 남녀 혼성 듀엣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드릴 수 있었다. 그날 우리 단원의 L총무의 개성 넘치고 매끄러운 진행은 관객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우리들의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들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단원들의 숨은 끼와 재능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단원들과 비슷한 연령대이면서도 늙고 몸이 아파 요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계시는 분들을 본다. 우리는 건강한 몸으로 노래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우리 합창단은 앞으로도 계속 지역사회의 어두운 곳을 찾아 더욱 많이 봉사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우리 ‘혼디갑주상록합창단’은 머리 희끗희끗 은빛물결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청춘으로서 우리들의 인생2막을 ‘나눔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고가 아니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여 노래하고, 연주할 것이다. 그리고 바람 가득한 서귀포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따뜻한 길을 만들며 오래도록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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