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이 나를 불렀다
2024. 5. 8(수) 1일 차 - 집을 나서다
한낮 아파트 앞, 캐리어를 옆에 놓고 핸드폰을 열어 송추행 카카오택시를 부른다. 계속 거부가 나온다. 답답함이 배가 될 때쯤 택시가 얼굴을 내밀었다. 16시 40분 송추에서 7200번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에 오른다. 좌석은 거의 만석, 다행히도 맨 뒷켠에 3자리가 남아있었다. 오늘은 일진이 좋은 걸까? 지난번에는 자리가 없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가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날아간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날씨가 화창하다. 녹음 짙은 북한산이 잘 다녀오라고 손짓한다. 경인 운하 물살이 초여름 햇살을 빙빙 돌리며, 차창 밖을 지나간다. 서해 밀물이 출렁이며 하늘빛을 국숫발 모양으로 잘게 부수고 있다. 작은 섬들도 힘차게 버스와 함께 달린다.
17시 30분쯤 공항 1터미널 3층 J1에 도착. 귀에 낯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이 바로 어버이날, 기념 공연이었다. 미스터트로트 출신 가수 이찬원이 젊음의 에너지를 담아 ‘시절 인연, 하늘 여행, 미운 사내’를 부르며, 여행객들의 귓바퀴를 굴린다. 3층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붉은빛 화려한 무대. 남성적인 목소리가 매력적인 한판 울림이다. 팬들이 모여 열띤 응원을 보내며, 공항 대합실을 후끈 달군다.
18시쯤 하얀 띠 중절모의 신사 박광열 인솔자가 나타났다. 여행안내서와 수신기를 받았다. 익숙하지 않은 키오스크에서 비행기 표를 뺐다.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아내는 면세점에서 립스틱과 오일을 구매한다.
밤 9시 FINAIR AYO 042기에 몸을 싣는다. ‘잘 다녀오세요’ 아들, 며느리, 손주의 카톡이 날아온다. 밤 10시 3분 비행기가 밤하늘에 좁은 터널을 끝없이 뚫는다. 불빛만 가득 모인 도시가 환송 인사를 한다. 검은 하늘에 검은 바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였다. 고기잡이배 몇 척만이 우리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다며 밤바다를 누빈다.
중국 산둥반도가 비행기를 올려다보고 있다. 항구의 불빛이 촛불처럼 여기저기 반짝인다. 금방 비행기는 보하이만으로 접어든다. 발아래 불빛이 여기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알려준다. 비행기의 엔진소리, 바람이 비행기의 창을 씻어내는 소리가 진폐증 걸린 환자의 숨소리 같다.
저녁 기내식. 밥, 불고기, 김치, 채소에 빵, 버터. 내게는 Good dinner 진수성찬이다. 레드와인 두 잔이 여행객의 들뜬 마음을 데워준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비행기는 어느새 카스피해 위를 날고 있다. 흑해 위에서 본 해변의 불빛은 수많은 멸치가 떼로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눈을 깜빡이는 것 같다. 비행기는 다시 방향을 틀어 몇 년 전 여행했던 동유럽의 루마니아로 상륙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러시아 영공을 빗겨 중앙아시아와 튀르키에의 이스탄불 인근을 지나 유럽 쪽으로 향한다. 빨리 전쟁을 마감하고 빠른 비행길을 회복해야 할 텐데 말이다.
2024. 5. 9(목) 2일 차 - 북유럽에 진입하다
새벽 4시 아침이 나온다. 감자 부침, 계란말이, 소시지, 블루콜리, 완두콩, 쓴 커피를 입에 밀어 넣는다. 비행기는 체조 요정 코마네치의 나라 루마니아를 벗어난다. 컴컴한 기내 화장실 가던 아내가 칫솔을 분실했다더니, 금방 찾아냈다.
느닷없이 아랫배에서 국지 내전이 벌어진다. 새벽하늘의 구름은 그 옛날 어머니께서 떼어놓으시는 밀수제비 한 점, 한 점. 그 구름바다를 발밑에 놓은 채, 비행기는 유럽 하늘을 계속 뚫는다. 여기는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한 나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상공. 트랙터로 갈아놓은 것 같은 희디흰 구름 밭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에 사과, 배, 감, 블루베리 등 유실수와 땅콩, 감자, 옥수수, 밀, 그리고 온갖 채소를 가득 심어 배곯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맘껏 먹이고 싶다.
다시 눈앞에 닿는 하늘은 한겨울의 설경처럼 내 눈을 끌어들인다. 페루의 리마에서 쿠스코로 날아갈 때,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을 마치 엘도라도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새벽 5시 30분 비행기는 헬싱키공항에 착륙한다. 북유럽의 아침 해가 환하다.
환승을 위해 짐 검사를 한다. 검색대 위에는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와 함께 한글이 눈에 꽂힌다. 공항직원들의 행동이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인다. 저렇게 느려터져도 월급을 받을까나. 핀란드는 수동으로 돌아가고, 한국은 완전 자동시스템 같다. 뱃속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장실이 얼른 내 뱃속의 평화를 회복해 주었다.
07시 10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행 AY991기에 오른다. 비행기는 양탄자를 깐 스칸디나비아산맥을 넘어서 북대서양을 건너고 있다. 캐시미어 같은 구름, 저 멀리 하늘과 구름의 경계 운평선이 그림 같다. 하늘과 구름이 운우지정을 나누는 것일까? 쟁기로 갈아놓은 양떼구름이 연속 이어진다. 내 유년 시절 고향의 천수답에서 아버지가 모내기를 위해 써레질을 끝낸 논 같다.
대서양 저 깊은 바다에도 고래, 상어, 고등어, 대구, 참치가 떼를 이루어 유영하겠지. 술 한 잔씩 걸친 유럽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힘차게 바다를 걷어 올리겠지. 무역선이 기적을 울리면 바닷새들은 잠에서 깨어 피붙이들의 먹이를 구하러 파도 속으로 화살이 되어 파고들겠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쇠새(鐵鳥)가 되어 구름 위 허공을 날고 있다.
12km 상공 비행기의 창에 성에가 끼어 있다. 지구는 서에서 동으로 돌고, 우리 비행기는 동에서 서로 날아간다. 눈을 감으니, 시간이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구의 판이 갈라지는 현장으로 간다. 만년설, 얼음, 황야, 화산, 지열발전, 꿈에서만 그리던 나라 아이슬란드로 간다. 비행기 창 아래에서 인도의 목화밭 같은 설경으로 뚜렷한 줄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은 분명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갈라지는 현장이었다. 내 가슴 깊은 골짜기에서 감탄사가 연신 터졌다.
3시간 40분을 날아온 비행기는 드디어 현지시각 아침 8시, 수도 레이캬비크 공항의 활주로에서 부드럽게 바퀴를 굴리며 대형버스가 되었다.
한국과 –9시간 시차. 북유럽의 북서쪽 대서양의 중앙에 자리한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의 남부와 위도를 공유하는 북위 65도가 지나는 북극에 가까운 나라. 변화무쌍한 날씨라지만, 멕시코만류 영향으로 그나마 일부 땅에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겨울이면 사람을 날려버릴 것처럼 바람이 거센 땅. 빙하의 나라, 화산과 온천의 나라. 총인구는 약 35만, 수도인 레이캬비크는 20만, 국토는 남한과 면적이 비슷하다.
아이슬란드의 주요산업은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한 어업과 지열, 그리고 수력으로 생산된 전력은 온 국민이 쓰고도 남는다. 거기에 더해 알루미늄 공장과 같은 전력 소모가 많은 기업에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관광업을 비롯하여 서비스업 역시 발달했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나라,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급성장하여 지금은 유럽에서도 삶의 질이 매우 높은 부유한 국가로 자라났다.
작년 11월 이곳에 온 여행팀은 혹한을 무릅쓰고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오로라를 못 보았단다. 하긴, 여행조차도 운이 따라야 하는 것. 버스로 달리는 창밖은 황량한 벌판. 안개가 무리를 지어 낮은 포복을 한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바위들이 벌판을 이루며 이끼를 두껍게 집어쓰고 널브러져 있다. 철사로 엮어 만든 시골 호텔의 이정표가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이 그리운 땅,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가 널찍하여 시원시원하다.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스스로 행복해져라”라는 말씀처럼 널찍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설산이 백발의 노인처럼 희끗희끗 지나간다. 가끔 보이는 차량이 전조등을 켜고 달린다. 길이 텅 비어있다. 섬처럼 뜨문뜨문 민가가 보인다.
여행사 30년 경력의 83학번 가이드 박, 그도 코로나 시절 여행사를 나와 아들, 딸을 키우느라 택시 운전에 이것저것 힘든 일을 하며 견뎠단다. 앞으로는 가장들에게 그런 불행한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레이캬비크를 벗어나 외곽도로를 탄다. 호수가 지나가고, 남아공의 테이블마운틴을 닮은 눈에 덮인 산이 뒤를 따른다. 풍화가 거의 안 된 돌무더기로 덮인 원시의 땅. 붉은빛 지열 송수관이 몸을 드러냈다. 길옆에서 고래가 하품을 하듯 수증기가 솟아오른다. 아이슬란드에는 용암이 분출하고, 가스가 솟는 활화산만 140여 개.
채소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BONUS라는 마트에서 생수 Still water, 바나나, 당근, 방울토마토를 산다. 나무가 없는 땅, 당연히 도로에는 가로수는 볼 수 없다. 길 따라 샛강이 같이 가자며 흐른다. 물빛이 예사롭지 않다. 화산 쇄설물인 스코리아가 널려 있다. 멀리 설산이 다시 보인다. 자작나무 가로수가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전나무도 몇 그루 지나간다. 염소 목장이 그림같다. 아이슬란드에는 인구의 2배인 60만 마리의 양이 산다. 사람 키 높이 정도의 낮은 이정표가 가로 방향으로 서 있다. 가구 수가 적어 국민들끼리 거의 서로 친척이라는 아이슬란드. 4촌까지도 결혼할 수 있단다.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적은 나라. 눈앞에 계속 펼쳐지는 그림에서 남미 파타고니아가 오버랩된다.
처음 내 눈을 끌어들이는 케리드 분화구. 중앙의 물빛이 에메랄드빛이랄까?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원시적인 물의 빛깔이다. 사유지라며 입장료가 1인에 450크론 한화로 4500원이다. 3천 년 전 분화했다는 커다란 접시 모양의 칼데라호. 깊이는 7~14m, 물속에 비친 구름과 호수의 능선이 멈춰있다.
그 유명하다는 골드서클 투어로 간다. 골든서클이란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시작으로 싱벨리어 국립공원과 굴포스 폭포, 게이사르 간헐천을 연결한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아이슬란드 3대 관광 벨트이다.
먼저 굴포스 폭포. 북유럽에서 가장 큰 이 폭포는 아이슬란드의 나이아가라폭포라고 부른다. 굴포스(Gullfoss)는 '황금빛 폭포'라는 뜻. 레이캬비크에서 150km 떨어진 흐비타강 계곡에서 쏟아져 내린다. 아이슬란드 여행객들이 탄성을 지르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굴포스는 총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가 무려 32m,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은 폭포이다. 굉음을 내며 끝없이 투신하는 수백만 물줄기가 장관이다.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날개를 달고 올라가 그 위용을 내려다보고 싶다.
폭포 아래에 초대형 크레바스 같은 골짜기가 입을 벌리고 있다. 땅 아래 발밑이 꺼지는 듯하다. 굴포스는 마초 같은 폭포답게 엄청난 굉음, 등짝이 서늘하다. 물줄기 속에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내 머리와 옷깃을 눅눅하게 만든다. 폭포에서 멀리 떨어져서 뒤돌아본다. 칠월칠석도 아닌데, 무지개가 폭포에 다리까지 놓았다.
이곳 아이슬란드는 북위 65도 근방의 북극권. 따라서 여름엔 낮이 길어 밤 11시쯤 해가 지고 밤이 짧다. 다음은 게이시르 간헐천. 여행자들이 골든서클 투어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인기 코스이다. 아이슬란드 남서부 호카달루르 근처의 아우른 니스에 있다. 1647년부터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 간헐천은 지름 18m, 깊이 1.2m. 비록 근처에 있는 다른 온천보다 뿜어내는 횟수가 적지만 물줄기가 거의 60m까지 올라갈 때도 있다. 6분에 한 번씩 솟아오르는 온천수. 사람들은 와~ 소리를 내며 감탄이다. 하지만, 내게는 미국 옐로스톤의 간헐천이나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것에 비해서는 만족하기에는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골든서클 투어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싱벨리르 국립공원. 아이슬란드의 지질을 세계적으로 알린 곳이기도 하다. 싱벨리르(Thingvellir)의 Thing은 ‘대지'라는 의미. 이는 이 지역과 관계가 없을 듯한 아이슬란드의 역사, 문화와의 관련성이 있다. 서기 930년에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의회가 결성된 곳. 그곳이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바이킹의 후손인 이들은 동물적이고, 전투적인 정부 밑에서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아이슬란드에 살던 30여 개의 씨족들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움트고 있었다. 그들은 첫 번째의 모임부터 매우 긍정적이었으며, 그것이 연례 회의로 진전되었단다. 분쟁을 법으로 해결하고 범죄자를 공정하게 재판했다. 씨족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제정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싱벨리르에는 거대한 협곡이 있다. 바로 판구조론에서 말하는 대서양 중앙해령과 연결된 동일한 축을 이루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 판의 경계임을 보여주는 곳이다. 두 판은 매년 2~3cm씩 갈라진다. 마그마가 맨틀 위에서 펄펄 끓는 액체 상태로 화산을 분출하고, 맨틀이 대류하는 살아있는 지구의 현장이다. 지질학에 관심이 많은 내가 그렇게도 직접 싶었던 곳, 교과서에서만 보고도 감탄했던 바로 그곳이다. 물론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이끼 푸른 대지와 빙하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바위산만으로도 환호할 수 있는 곳이리라. 단층대를 따라 발길을 조금 옮긴다. 눈앞에 옥사나폭포가 굴포스의 위용을 흉내내며 하늘을 쏟아내고 있었다.
1시간 반 정도 이동하여 호텔 CABIN에 짐을 푼다. 저녁 식사 후 검푸른 대서양 해변을 따라 걷는다. 선선한 저녁 날씨. 아이슬란드 무명작가의 조각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작품이다. 갈매기가 날아오고, 사람이 키우는 거위도 눈에 띈다. 풀을 뜯어 먹는 개를 처음 본다. 나는 지금 검푸른 대서양 중앙에서 넘실대는 물살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광주에서 온 일행 부부와도 얼굴을 마주한다.
밤 9시 반이 넘었는데도 태양은 여전히 지평선 위를 돌고 있다. 여기가 극지방에 가까운 곳임을 실감하게 한다. 호텔이 얼른 들어오라고 부른다. 바로 아이슬란드의 첫날밤 꿈속으로 잠수했다.
2024. 5. 10(금) 3일 차 - 아이슬란드에 빠지다
새벽 6시 해는 벌써 중천이다. 간단하게 몸을 씻고 아침을 먹는다. 빵, 치즈, 과일잼, 토마토, 파프리카, 켈로그, 달걀에 커피까지. 해외에만 나오면 내 위장은 자동으로 3배쯤은 확장되는 것 같다.
버스에 오른다. 기사의 오른발이 엑셀을 밟기 시작한다. 차창 밖은 흐림이다. 기상 예보에 맞춰 곧바로 이슬비가 내린다. 레이캬비크는 겨울에도 영하 1~2도 정도. 제주도보다는 약간 기온이 낮은 기후이다. 가이드 왈, 이곳에서는 교회에서조차 소매치기에 조심하란다. 그도 7년 전인가 그들에게 일만 유로를 털렸단다. 교회, 그리고 성당에서는 여행객들은 물론 소매치기도 나름으로 열심히 기도한단다. 골치 아픈 하느님은 결국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소망을 들어준다나.
1시간쯤 달려 그린다비크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는 블루라군이 기다리고 있었다.대서양 중앙해령과 연결된 화산지대에서 솟아오르는 곳. 지열이 지하수를 데워 만들어진 노천 온천이다. 바람이 살짝 부는 날씨, 비를 맞으며 뜨끈한 유황천으로 여독을 씻는다. 레이캬비크에서 39km 떨어져 있는 이 블루라군은 세계 5대 온천으로 꼽힌다. 100% 자연 온천수로, 우유처럼 뽀얀 물빛에 하늘빛이 채색되어 만들어진 선경이었다. 특히 광물질 풍부한 온천수는 피부병에 효과가 좋단다. 현지 여인네가 주는 백색 머드를 얼굴에 바른다. 수온은 몸을 적당히 덮이는 40℃ 정도. 비와 바람을 피해 다리 아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내와 듀엣이 된다. ‘사랑해 당신을, 등대지기, 아리랑’ 노래 몇 곡을 물결 위에 싣는다. 함께 했던 금발 머리 여행객들이 박수와 함께 우리에게 다국적 환호성을 보낸다.
작년에도 이곳 근처 레이캬네스반도의 토르브욘산에서 8.4 진도의 지진 때문에 이 온천을 일시 폐쇄했단다. 2021년부터는 파그라달스피알 화산이 인근에서 계속 분출하고 있다. 나는 이곳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기 전부터 화산이나 지진 때문에 안전에 문제는 없을까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다시 수도 레이캬비크로 되돌아간다. 세계에서 가장 극지방에 가까운 수도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의 문화, 경제, 교통의 중심이 되는 곳. 우리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백야, 겨울에는 오로라가 나타나는 곳. 점심은 ASKUR에서 현지식 스테이크다. 오랜만에 입에 착착 감기는 한 끼였다.
현무암 교회 할그림스키르캬로 간다. 17세기 목사이자, 유명한 시인인 할그림스 페투르손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교회. 광장 앞에 서 있는 바이킹 동상이 교회의 앞을 가리고 있어 흠이었다. 이 교회는 건축가 구드존 사무엘손이 아이슬란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상절리를 모티브로 해 설계했단다.
완공까지는 41년. 레이캬비크의 도심인 스콜라보르두헤드 언덕에 우뚝 선 이 교회는 74.5m의 루터교 교회. 레이캬비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이다. 시간에 맞춰 종이 울린다. 입장료를 내면 종탑까지 올라가 볼 수도 있다.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있어 해마다 세계의 연주자들이 이 악기를 연주해보기 위해 찾는다.
번화가 라우가베구르거리를 아내와 함께 걷는다. 부슬비가 내린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산을 쓴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 우리만 우산을 폈다. 그냥 비를 맞는 것이 그들은 모두 낭만주의자는 아닐까? 혹시, 아이슬란드에는 우산 공장이 없는 것인가?
시청사가 보인다. 마치 제주의 방주교회처럼 물에 떠 있는 것 같다. 내부에는 아이슬란드의 지형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놓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우리 일행들은 지형도를 보며, 담소를 나눈다. 시청 밖의 호수 위에서는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들이 군무를 펼친다. 사진에 담을 만한 운치 있는 풍경이었다.
붉은색 레이캬비크 시티투어 버스가 지나간다. 무지개 거리(Rainbow Street)가 유난히 내 눈을 자극한다. 별것 아니지만, 별것으로 보인다. 조그만 발상이 여행객 발길을 늦춘다. 우리나라 행정가의 머리에도 이런 파격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리라. 남의 생각을 뛰어넘어 나만의 창의적 번뜩임 말이다.
1986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과 소련 코르바쵸프가 만나 냉전 종식 회담을 했던 호프디 하우스 곁을 지난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들렀다는 소시지 푸드트럭엔 여전히 여행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저녁은 중국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닭고기, 생선, 탕수육, 두부, 브로콜리)이다. 호텔은 어제와 같은 CABIN이다.
2024. 5. 11(토) 4일차 ㅡ 덴마크로 향하다.
빵, 켈로그, 요구르트로 아침 식사 후 6시 반, 레이캬비크 공항으로 이동한다. 길가에 펼쳐지는 들판이 TV에서 본 화성의 표면 같다. 지평선 위에 구름이 내려앉으며 이끼 낀 나이 어린 검은 돌들을 감싼다. 전조등 환한 자동차가 삐쭉삐쭉 서 있는 전봇대를 비춘다. 아담한 고압선 전주가 뜨문뜨문 박혀있다. 길가에 돌로 만든 사람 모형이 외딴섬에 버려진 사람처럼 물끄러미 서 있다.
버스가 우리를 공항에 내려준다. 발권이 불편하다. 짐 부치기도 불편하다. 잠시 쉴 의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금발의 서양 여행객들은 바닥에 엉덩이를 철버덕 깔고 앉아 손전화 속으로 들어간다. 9시 55분 SK596기에 올라 3시간 동안 시간의 바퀴를 굴리자, 코펜하겐이 얼굴을 내민다.
덴마크는 유틀란트 반도와 동쪽 바다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치령으로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가 있다. 공용어는 덴마크어이며, 종교는 주로 복음주의 루터교, 화폐단위는 덴마크 크로네이다. 산업은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혼합 경제체제를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도 생활수준이 높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입헌군주국가로 국가원수는 덴마크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면적은 43,098㎢ 인구는 590만명. 기네스박물관이 있는 수도 코펜하겐은 유틀란트 반도가 아닌 셸란섬이 있다.
공항엔 이미 리투아니아 기사 세르게이가 버스를 몰고 와서 대기하고 있다. 캐리어는 버스 기사가 또, 일일이 싣는다. 여행 중에는 우리가 갑인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공항을 빠져 나온다. 도로 풍경이 한국처럼 낯익다. 시간은 아이슬란드보다 두 시간 빠르게 바뀌었다.
덴마크에서의 자유시간이다. 원색 물결이 넘치는 정겨운 운하, 그리고 유람선이 눈을 자극한다. 카페 밖 노천에서 술, 음료수, 간단한 식사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한편으론 부럽다. 점심은 아내가 준비해 온 간단한 먹을거리로 해결했다. 저녁은 중국집에서 돼지고기, 달걀, 채소, 버섯으로 맘껏 입맛을 다셨다. 일행 중 말씨가 구수한 전라도 남자분은 중국 음식의 향이 싫다며, 집에서 가져온 마른 멸치 한 가지로 밥만 몇 숟가락 뜬다. 어딜 가나 현지식에 전혀 문제가 없는 내가 나를 부러워한다. Thon Hotel HØje Taastrup 투숙하여 또 하루의 피로를 풀어낸다.
2024. 5. 12(일) 5일 차 - 코펜하겐 니하운 항구, 유람선에 오르다
5시 반 기상, 아내는 이미 밖을 다녀왔다. 식사 후 코펜하겐을 다시 만난다. 북유럽의 아침이 청량하기 그지없다. 도로를 따라 새 두 마리가 달리는 버스 앞을 좌우로 날며 길을 안내한다. 8시 반 코펜하겐 중앙역에 닿는다.
노란빛 염색 머리 홍금희, 현지 가이드가 버스에 오른다. 산이 거의 없는 나라, 4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한국전쟁 때 병원선을 보내준 나라. 안데르센의 나라, 칼스버그 맥주와 레고의 나라가 덴마크다.
공중에 철선을 서로 연결하여 단 가로등이 이채롭다. 눈길을 돌리니, 바다처럼 푸른 운하가 물살을 반짝인다. 납작 배가 지나간다.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코펜하겐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섬 사이를 오간다. 유럽의 기사들은 시간을 잘 지키는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단다. 그들이 듣는 한국 여행객의 가장 흔한 말은 “빨리빨리, 아이고”. 그래서 어떤 버스 기사는 아침에 한국 가이드를 보자, Good Morning 대신 “아이고, 아이고”하고 했다나.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 인어 공주'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안데르센 동화의 유일한 동상 ‘인어 공주상’ 쪽으로 간다. 푸른 물결 출렁이는 물가에 홀로 앉아있는 인어공주 동상은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명작인 '인어공주'의 주인공. 전체 길이 80cm에 불과한 작은 인체 조각상. 하지만, 800여m의 긴 줄이 이어져 있어 가까이서 기념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다. 여행객들이 인어공주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는 것. 멀리서 아내의 손전화를 빌려 인어공주의 사진을 담는다.
현재 덴마크 왕실의 주거지인 아말리엔보르 성으로 간다. 이 궁전은 1794년부터 현재까지 덴마크 왕실이 거주하고 있는 로코코 양식의 왕궁. 중앙 광장 주변에 4개의 건물에 왕족이 거주하고 있다. 왕궁의 내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오에 이루어지는 왕궁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객이 몰려 있다
왕실, 국회 등이 자리한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을 지나 니하운 항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유람선에 오른다. 니하운 항구는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로 1673년 스웨덴 포로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마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옮겨놓은 것 같다. 유람선은 약 1시간 동안 우리에게 코펜하겐의 속살을 보여준다. 안데르센이 살았다는 붉은 집을 지난다. 여러 개의 낮은 다리를 만날 때마다 가이드는 고개를 숙이라고 했다. 오페라하우스가 지나가고, 노란색 수상버스가 옆에서 달린다. 세계 제2위 해운대기업 머스크의 사옥도 얼굴을 내민다.
멀리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인어공주 동상이 가물거린다. 그리고 왕실가족이 거주하는 아마리엔보르궁전의 노르웨이 깃발도 펄럭였다. 덴마크 왕립도서관 블랙 다이아몬드도 우리의 시선을 잠깐 정지시켰다. 화창한 북유럽의 날씨. 운하를 따라 늘어선 18세기 풍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이 안데르센 동화 속처럼 내 기분을 빨아들였다.
중세 건물로 발길을 옮긴다. 코펜하겐의 시청사이다. 이 도시의 모든 건물 높이 기준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시청사는 1905년 건축된 붉은 벽돌의 중세풍 건물. 청사 내부에는 100년에 1천분의 1초밖에 오차가 생기지 않는다는 예슨 올센의 천문시계가 있다.
이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하이라이트 노르웨이로 향한다. 오후 3시, 코펜하겐에서 오슬로행 크루즈선 DFDS SEAWAYS에 탑승한다. 그루즈는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반도 사이의 스카페라크 해협을 건넌다. 열쇠를 받고, 2034호 방에 짐을 내려놓는다. 크루즈의 5층이 지상 1층에 해당한다. 결국 우리 부부는 밤새도록 잠수함에 실린 것처럼 밤바다의 뱃속을 여행한 것이다.
크루즈의 갑판 위로 오른다. 멀리 수평선 쪽에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바다를 돌리고 있다. 바다 건너 섬의 유채꽃밭이 제주도 산방산 앞의 풍광처럼 보인다. 배 위에서 햇볕을 쬐는 여인들, 카드에 빠진 사람들, 각 한 병의 맥주를 놓고 담소하는 신사들, 나는 손전화의 사진 셔터를 계속 누른다. 하늘로 가신 어머니의 허리 같은 초승달이 밤바다를 옅게 비추며 따라오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코펜하겐-오슬로를 왕복하는 이 크루즈는 덴마크 국적 회사. 140년 넘게 북해를 항해하고 있다. 배의 길이는 170m. 내부에는 레스토랑, 카페, 면세점, 사우나, 수영장, 카지노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저녁은 뷔페식. 북유럽과 발트해의 채소, 해산물, 고기, 빵,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무한량의 와인까지 그야말로 만찬이었다. 4인실에서 뱃고동과 파도 소리를 베개 삼아 아내와 함께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선잠에 빠진다.
2024. 5. 13(월) 6일 차 - 노르웨이에 닿다.
눈을 뜨자마자 갑판 위에 오른다. 아침 하늘이 바다 안개를 걷어내며 투명하게 다가온다. 기적이 안개와 대놓고 몸을 섞는다. 크루즈의 뒤를 따라오는 물결이 세차다. 굴뚝의 매연이 코를 괴롭힌다. 아내도 갑판 위에 올라왔다. 빨간 바탕에 흰색 십자 모양 덴마크 국기가 이 배는 노르웨이 국적이 아니라고 펄럭인다. 새벽 갑판 위에 몇 여행객들이 올라와 있다. 그들도 나처럼 호기심이 많지는 않을까?
노르웨이는 면적 38만㎢, 인구 550만 명. 국토 중앙과 남서부가 넓은 고원으로 이루어진 산악 국가이다. 국민 대다수는 노르웨이인, 공용어는 노르웨이어. 종교는 주로 복음주의 루터교이며, 화폐단위는 크로네이다. 노르웨이는 전통적인 어업, 임업 국가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광업과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1975년 북해유전의 개발로 산유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행운까지 얻은 나라.
근처에 사막이 없어 하늘이 깨끗한 나라 나라, 태풍이 없는 나라. 주로 서비스업,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과 함께 경공업, 중공업에 기반을 둔 경제가 든든한 나라.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해 있어 노후가 편안한 나라다. 나토 회원국이지만, 1994년 유럽 연합 가입을 거부했다.
크루즈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나는 빵, 잼, 과일, 치즈, 커피를 접시에 담는다. 아내는 내가 잼을 너무 많이 가져왔다고 걱정하며 잔소리를 한다, 암세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당분이라며. 창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아침에 세찬 물살로 유리창을 닦는 것이었다.
크루즈는 10시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항에 닻을 내린다. 배에서 내려 버스에 오른다. 유민경 현지 가이드가 얼굴을 내민다. 노르웨이는 ‘북쪽에서 왔다’라는 뜻. 부유세가 있는 나라. 전기차 하이브리드차가 대세인 나라. 북유럽 네 개의 국가는 모두 국기가 십자가 모양으로 비슷하다. 이것은 덴마크 국기에서 유래한다.
먼저 비겔란 조각공원이다. 이곳은 구스타브 비겔란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조각 작품 200여 개가 전시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가장 멀리 보이는 기둥이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높이 17m의 하나의 화강암으로 조각한 121명의 남녀 군상인 모노리트. 꼭대기로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20년에 걸쳐 완성한 걸작. 안간힘을 쓰는 군상이 역동적이다.
비겔란은 사람 일생의 희로애락을 수백 개의 청동과 화강암에 생명을 실었다. 32만 3,700m2의 너른 장소에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모습을 다양한 조각작품으로 표현했다. 북유럽 여행이 프랑스의 조각가 로뎅만 알고 있던 내게 비겔란이라는 위대한 조각가를 알게 해준 것이다.
오슬로 시청사 노벨평화상 시상식 장소로 간다. 오슬로 시청사는 창립 900년을 기념해 1931년 착공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년에 완공했다. 이곳 1층 대형 홀에서 해마다 노벨상을 시상한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점심은 한식이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된장국, 김치, 묵, 무생채, 제육볶음에 쌈밥이 나는 한국 토종임을 확인해 주었다. 1960년대부터 북해에서 석유가 나와 산유국이 되어 경제성장을 급속하게 이룬 노르웨이는 GNP 10만 불의 부유국이다. 여기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수출하여 그야말로 땡잡았다. 드디어 경제력이 멀리 앞서가던 스웨덴에 역전한 것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 돔바스로 향한다. 스피커에서는 시셀 슈샤바와 플라시스 도밍고가 부른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주제가 ‘Fire in Your heart’와 솔베이지의 노래가 내 귀에 소리의 향기를 넣는다. 빈 스트라 마을을 지난다. 강 건너는 ‘오따 마을’이다. 알베르트 까뮈에도 나오는 중세 유럽의 페스트로 당시 8명만 살아남았다는 곳. 오따는 8이라는 뜻이다. 도로를 따라 70km의 기나긴 메사 호수가 이어진다. 호수의 끝 릴레함메르에서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는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 당시 개막식이 열렸던 스키 점프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다.
여기에서 1994년 2월 12일부터 2월 27일까지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그리고 6개 종목에 61개 세부종목으로 겨뤘다.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9개국 등 총 67개국이 참가. 선수는 1,737명으로 러시아가 금메달 11개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개최국 노르웨이가 10개, 독일이 9개로 각각 2, 3위. 우리 대한민국은 금 4, 은 1, 동 1개로 톱 10에 진입했다. 당시 전이경은 쇼트트랙 2관왕에 올라 영웅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돔바스의 Dombas 호텔에 짐을 푼다. 잠시 짬을 내어 아내는 마트에 가서 현지의 과일, 채소 등을 사고 나는 산책을 한다. 유럽의 자작나무 위에 살아가는 겨우살이가 눈에 들어온다.
2024. 5. 14(화) 7일 차 - 피오르드의 늪을 헤매다
8시 호텔에서 절벽과 폭포로 둘러싸인 산악을 지그재그로 달리는 일명 "요정의 길"이라는 트롤스티겐에 들어섰다. 샛강이 따라온다. 산꼭대기 눈이 눈부시다. 드넓은 초원이 차창을 스친다. 자작나무 군락이 이어진다. 수직으로 치오른 산에서는 돌무더기가 흘러내리는 테일러스가 연속이다. 산꼭대에서 빙하의 침식에 의해서 만들어진 U자 계곡 사이를 에리다누스강 별자리처럼 굽이굽이 돌아가는 벼랑에서는 실타래 같은 폭포들이 흘러내린다. 마치 내가 신선이 사는 나라에 온 것처럼 마음을 들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주해 온 듯한 금강소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양이 떼를 지어 다닌다, 마치 TV 본 화면처럼. 깊은 산골짜기가 지나간다. 호수에 설산이 비친다. 가축의 먹이인 하얀 풀 묶음이 마시멜로처럼 보인다. 통나무주택이 연이어 지나간다. 비행운이 하늘에 빗금을 긋는다. 호수에 비친 산이 몸을 흔든다. 가이드와 함께 손을 들고 ‘오늘도 좋은 날’을 합창하며, 박수를 친다.
버스가 잠시 멈춰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우르네스 목조교회(ornes stavkyrkje)에 들른다. 1130년경 세워진 이 교회는 지어질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교회가 쉽게 접근하기 힘들고 사람도 살기 힘든 절벽 기슭에 있어 바이킹 같은 해적으로부터 무사하게 오늘날까지 보존되었을 것이다. 이 교회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 외에 건축미나 크기 및 외관에서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속도를 낸다. 맑은 북유럽 하늘, 산굽이를 빙 돌 때마다 산은 다른 빛깔을 만든다. 길가의 쌓인 눈의 두께가 점점 높아진다. 발목, 정강이, 무릎, 허리 높이… 마치 사진에서 본 일본 홋카이도의 겨울 도로를 축소해 놓은 모습이다.
트롤스티겐(Trollstigen)의 절벽에서 수없이 낙하하는 폭포 물살이 하늘을 시원하게 만든다. 트롤스티겐은 세계 10대 드라이빙 코스. 굽이굽이 18km의 산길이 끝없이 뱀처럼 나타난다. 마치 요정들이 나올 것처럼 신비로워 붙여진 이름. 급경사와 좁은 도로는 차들이 서로 비켜 가기에는 나처럼 서툰 운전사가 아닌 베테랑 운전사가 필요한 곳이다.
마침내 게이랑에르에 다다른다. 그리고 우리가 타고 온 버스도 함께 배에 오른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 수업시간 빙하, 피오르드를 가르치던 생각이 난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제자들에게는 그저 변두리 과목의 관심 없는 시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젊음을 쏟아내며,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만년설이 끝없이 눌러 놓은 빙하가 중력을 받아 깎아놓은산의 꼭지 호른에서부터 부드러운 지형 U자곡, 폭포, 그리고 거기에 바닷물이 들어와 만들어진 여체의 곡선 같은 피오르드, 이어서 빙퇴지형이 어쩌구 저쩌구…
내가 직접 가서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입으로만 가르쳤다. 내가 이 장면을 담아다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수업을 진행했더라면, 아무리 입시에 매달린 제자들이라도 넋을 놓지 않았을까? 다시 선생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높은 산의 머리 꼭대기를 넘어 끝없이 낙하하는 물길. 아슬아슬한 풍경이 ‘7자매, 구혼자, 면사포’ 등 다양한 이름을 달고,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아! 어떤 언어로도, 시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스칸디나비아의 비경. 7자매 폭포의 실타래가 펼치는 춤사위를 따라 일제히 카메라가 방향을 튼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셔터가 눌러진다. 동영상이 카메라에 담겨진다.
200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1500m 높이의 산들 사이에 만들어진 16㎞ 길이의 U자 계곡의 끝없는 병풍이다.
빙하에 의해 수십만 년 동안 깎여서 만들어진 부드러운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 만들어진 지형.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수직의 절벽 폭포는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놓은 풍경의 압권, 아니 조물주의 걸작품이었다.
피얼란드로 2시간 30분 걸려 이동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빙원인 뵈이야빙하(Boeyabreen Glacier)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빙원을 자랑하는 푸른 빙하라 불리는 요스테달 빙원의 한 자락이다.
빙하의 생성과정을 보여주는 빙하박물관(Glacier Museum)이다. 빙하를 모델로 한 독특한 형태의 현대 건축물. 전시관에는 4가지 카테고리에 24개의 주제를 가진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기후 변화, 빙하가 만든 동굴, 피오르드의 형성과정이 가득하다. 실제 빙하 얼음을 이용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한글 안내가 지원되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 긴 송네피오르드(Songne Fjord)는 볼 시간이 없다. 언제 다시 북유럽에 와서 볼 수 있을까? 길이 204km, 노르웨이에서 가장 길고 수심이 깊은 장대한 협만인데 말이다. 약 20억 년 전 거대한 화강암 벽이 만을 기준으로 무려 900m나 우뚝 솟아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파노라마 같은 산줄기라는데, 타이트한 여행 일정 때문이라니….
라르달로 이동하여 Hotel Grandane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호수의 비친 저물녘 집으로 돌아가는 산그림자와 그리고 마을의 미니어처 같은 집들이 정겹다. 그저 선경 속을 누비고 있는 것. 여러 장의 사진을 박아야만 했다.
2024. 5. 15(수) 8일 차 - 플롬 열차에 오르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40분 거리 플롬으로 간다. 우리를 실은 버스가 라르달 터널로 들어간다. 세계 자동차 도로에서 가장 길다는 터널. 24.5㎞ 길이의 어둠 속을 20여 분을 달린다. 노르웨이에는 2500여 개의 산악 터널이 있다. 이 나라의 다른 터널은 길이가 대개 6~7㎞ 정도. 라르달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공 두더지 굴, 희미한 조명등만 졸고 있다. 중간 서너 군데 푸른빛 전등만 밝다. 그곳을 제외하고는 음침의 연속이다.
기나긴 공사에서 터널 벽의 암석표면을 그대로 살아있다.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기술자들이 얼마나 노력했을까?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희생되었을까? 대단한 터널이다. 이 거대한 사업이 국가가 아니고 민간에서 만들었다니, 더욱 경이롭다.
중간에 3번의 휴게소가 나온다. 조명이 잘 갖추어진 이곳 휴게소에서 한 쌍의 부부가 결혼식까지 했단다. 터널에서는 1km마다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플롬에 도착하여 1시간 반 여정의 산악열차(Flam Railway)를 탄다. 철도의 종착역인 산악마을 플롬은 이곳과 구드방겐을 왕복하는 피오르 유람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플롬은 노르웨이 송노피오라네주 에울란에 있는 작은 마을. 1670년 지어진 플롬 교회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폭포 아래 작은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로 이 산악철도가 움직인단다. 과연 노르웨이다운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노르웨이 남서부 송노피오라네주의 뮈르달과 플롬을 연결하는 관광을 위한 산악철도. 길이 20.2km의 단선궤도. 시공부터 완성까지 20년이 걸렸단다. 뮈르달에서 플롬까지는 11개의 역과 20개의 터널. 험한 협곡과 협곡 사이 터널과 다리로 연결하고, 급경사로는 지그재그 방식으로 열차가 오르는 것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중간에 공사로 열차가 10분간 정차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효스포센역의 전망대에서 5분간 열차가 멈춘다. 그곳의 폭포가 여행객인 우리들에게 거센 물결을 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제일의 볼거리는 폭포 위에서 빨간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요정인 훌드라. 그녀는 폭포의 이곳저곳을 나왔다 숨었다 하며 노래와 춤으로 여행자들의 넋을 빼놓으려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고 국내 한 자동차 광고에도 출현했던 바다 위 8개의 섬을 이은 ‘아틀란틱 로드’도 이곳 노르웨이에 있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 커브가 심한 유선형 다리를 질주하며, 바람을 가르는 SUV가 등장하는 CF 말이다.
베르겐으로 이동한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지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곳은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나라의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만이다. 1070년 올라프 3세가 건설한 후 1100년경 성이 세워진 뒤 상업적·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었다. 베르겐은 12~13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수도였던 큰 도시. 14세기에 게르만 상인들이 상권을 독점하였고, 이들의 영향력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은 주로 어업·조선업에다 그와 관련된 선박 수리, 장비생산, 기계·금속제품 생산, 식품 가공업 등이 주를 이룬다.
옛 항구에서 보면, 날카롭게 솟은 중세풍의 붉은 지붕의 목조건물들 수십 채가 일렬로 늘어서 눈길을 끈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베르겐 어시장의 물고기들은 싱싱하다. 활력이 넘치는 도시. 산 중턱의 하얀 집들은 12~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였던 베르겐의 자부심이란다.
겨울에는 해가 뜨는가 하면 금방 지는 곳. 황사도 없고 태풍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 노르웨이 베르겐 북쪽 소도시 나르빅의 오로라와 하늘로 가신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내 졸시 한 편을 담아본다.
나르빅 오로라
완행열차 소실점 향해 밤낮없이 가고 있다. 마음 한 줌 실은 바람 손잡고, 동행이네
북빙양 새 아침 햇귀 수평선 아래 잠겨 있다
열 구름 뒤를 밟은 페르퀸트 기다리는
백발의 솔베이지 노래 산릉선에 걸려있는
순록 뿔 그 빛을 받아 능금보다 붉은빛 마을
그믐달도 잠든 백야 잔별 모두 눈뜬 하늘. 만년설 빙벽에 몸 걸친 오로라 여인
어머님 꽃상여 만장 너울너울 펼치고 있다
운전기사 세르게이는 예일로로 엑셀을 밟는다. 산길을 오르는 버스는 헉헉거린다. 굽이굽이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연속 돌아 오른다. 자작나무의 숫자가 줄어들고, 나무의 키들이 점점 작아진다.
해발 1700m, 넓이 6500㎦. 하당에르비다 빙하고원지대으로 가는 길에 버스가 한참 동안 멈췄다. 이곳은 200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차 중인 버스도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곳은 노르웨이에 있는 1500여 개의 빙하 중 세 번째 크기. 만년설이 쌓여 연중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빙하 트래킹의 명소이며, 유럽 최대 고원지대. 붉은 벽돌집에 노란 줄을 그은 포슬리호텔이 머리 위에 우뚝 서 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워드 그리그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았을 때면 이곳을 찾았단다. 그 아래 양쪽 벼랑으로 하늘을 쏟아붓는 뵈링폭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물의 나라, 폭포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폭포를 보았다. 여기의 폭포는 우리 발길 밑에서 산 아래 골짜기로 물을 토하듯이 쏟아내는 비경. 180m의 낙차를 자랑하는 뵈링폭포이다. 떨리는 손으로 안전 난간을 꽉 잡았다. 다리 밑이 공중에 뜬 것 같다. 백색 굉음을 지르며 투신하는 물살을 찍기 위해 손전화를 내민다. 손끝이 흔들린다. 그 와중에 셔터를 연속 누른다. 동영상도 찍는다. 낭떠러지 위에 서니, 나도 고소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 버스는 고원을 향해 달린다. 산마루엔 수목한계선을 넘어 한 그루 나무도 없다. 하얀 눈만 쌓여 말없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신록을 그리워하는 곳. 길가 여기저기 별장이 자리 잡고 있다. 가을부터 초여름까지 사람들을 기다리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길가에 4~5m의 막대기가 연속 꽂혀있다. 나무가 살지 않는 이곳. 이 높은 산길에 나무들이 죽어서 올라와 있다. 그들은 폭설이 내릴 때 길의 위치를 알려준다. 제설작업을 하는 차들이 혹여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1년에 반 이상 눈에 언 발을 묻고 있다. 산꼭대기 하늘에 닿은 호수들은 냉동된 채로 여기저기 숨구멍만 남기고 하늘빛을 연신 반사하고 있다.
상행하던 버스가 하행이다. 동영상을 뒤로 되돌리는 기분이다. 이제부터 버스는 피곤함도 잊고 노래를 부른다. 오히려 브레이크를 밟으며 빙글빙글 산굽이를 돌고 또, 돈다. 산정 호수에서 눈이 녹아 개울이 되고, 샛강이 되어 세차게 흐른다. 캠핑카가 지나간다. 2m 정도 두께의 눈이 길 양옆에 쌓여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앞을 보면 정면이 바로 하늘이다.
현재의 고도는 1150m.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없는 것 같은 노란색 호텔이 보인다. 빨간색 자전거 무리가 지나간다. 여기까지 철 허벅지 근육을 움직여 올라온 저들은 사람인가, 신인가? 영화 ‘독전’의 촬영지가 이곳이란다. 나무가 다시 나타난다. 저녁 햇살을 받은 전봇대의 푸른색 유리 애자가 보석처럼 빛난다. 열차가 비디오 화면처럼 지나간다. 오슬로-베르겐을 연결하는 철도다. 물에 반사된 설산이 눈부시다. 버스가 점점 고도를 낮추면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폭포를 이용하여 수많은 수력발전소를 거느리고 있는 나라, 물과 폭포가 넘쳐나는 나라 노르웨이가 그저 부럽다. 한 통의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땡볕을 등에 지고, 사막 길을 종일 오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엾다.
4시간 40분 이동하여 노르웨이 부스케루주에 있는 스키의 천국 예일로의 Hotel Pers에서 하루를 마감하였다.
2024. 5. 16(목) 9일 차 - 다시 오슬를 거쳐 칼스타드로
아침 일찍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식사 후 여유 있게 다시 스웨덴의 오슬로로 이동한다. 소요시간은 3시간 반 정도, 자유시간이다.
오슬로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주를 이룬다. 노르웨이 남동쪽에 있는 피오르드 끝에 있다. 1050년경에 세워졌으며, 1300년경 하콘 5세가 요새를 세웠다. 1624년 화재로 파괴된 뒤 요새 성벽 아래에 신도시를 세워 크리스티아니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1925년 오늘의 오슬로라고 이름을 바꾸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했다. 많은 위성 도시와 함께 주택지가 동부 쪽으로 확장되었다. 오슬로 항구는 무역·금융·산업·상업의 중심지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항구. 주요산업은 소비재 생산, 조선, 전자공업, 그래픽 산업이다.
이 도시는 19세기부터 인구가 늘어 당시 노르웨이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였다. 그 후 무역·금융·산업·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의 주요산업은 소비재 생산, 조선, 전자공업, 그래픽 등이다.
우리 일행의 일부는 뭉크의 절규를 보러 국립 박물관으로 갔다. 참고로 뭉크는 ‘절규’를 그리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2명의 친구와 산책하고 있었다. 길 한쪽에는 마을이 다른 한쪽에는 깊은 협곡이다. 나는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현기증을 느낀 채 난간에 몸을 기댔다. 구름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공포에 질린 비명이 들여오는 듯했다. 친구들은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 이 두려움에 떨며 홀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대자연을 관통하는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를 들었다.”
노르웨이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나는 아내 그리고 다른 일행들과 시내를 탐방하기로 했다. 먼저 국왕 하릴 5세가 거주하는 노르웨이 왕궁으로 간다. 노란빛을 띤 노르웨이 왕궁은 19세기 초에 지어졌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왕가가 머물던 곳으로 현재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는 국왕의 공식 관저이다.
다음은 칼 요한슨 거리. 노르웨이 최대 번화가 오슬로 최대 번화가로 중앙역부터 왕궁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 거리는 오슬로의 샹젤리제라고 불린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없는 거리, 마음 놓고 걷는다. 카페, 상점, 레스토랑 등 쇼핑의 천국으로 오슬로대학, 국회의사당, 국립극장 등이 함께 있는 곳이다.
다시 버스에 오른다. 3시간 정도 걸려 오슬로와 스톡홀름의 중간쯤 되는 스웨덴의 칼스타드로 간다. 민들레 벌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기슭에 양들이 보인다. 김양, 최양, 박양들이 종종걸음으로 산기슭에서 종일 풀을 뜯는다. 그것은 그녀들의 천직이다. 스키장이 지나간다. 길거리를 청소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손주처럼 대견하다. 학교행사이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아이들이겠지.
이제 노르웨이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실은 노르웨이 3대 트래킹 코스가 있다. 그것은 600m 수직 절벽 위에 대형의 제단이 펼쳐지는 바위 프레이케스톨렌, 거대한 두 절벽 사이의 공중에 바위가 낀 계란바위라 불리는 쉐락볼튼, 그리고 누구라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트롤퉁가. 그중에서도 왕복 28km 코스에 호수 쪽으로 길게 혀 모양 바위가 길게 돌출된 트롤퉁가는 누구에게나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짜릿함을 주는 명소. 이 트래킹 코스들을 그냥 남겨두어야만 하는 이 마음, 아쉬움을 어찌해야 할까나.
도시 자체가 하나의 주를 이루는 바이킹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의 수도 오슬로에서 국경을 넘는다. 스웨덴의 칼스타드로 가는 길.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폭포, 빙하, 도시의 모습 등이 머리 속에서 재생된다.
오슬로와 스웨덴의 중간 쯤인 칼스타드의 Hotel Best Western Gustaf에 캐리어와 함께 내가 나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호텔 옆, 건넛마을 길을 걷는다. 스웨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단독주택마다 개성 있게 꾸미며, 사는 모습이 정겹다.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는다.
2024. 5. 17(금) 10일 차 - 스웨덴으로 가다
클라르 강어귀의 베네른호 북쪽 기슭과 팅발라 섬에 자리 잡은 칼스타드에서 7시 반 출발이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400여km를 3시간 버스로 달린다. 북유럽은 여름이 건기라 남아시아처럼 벼를 재배할 수 없다. 따라서 빵을 주식으로 할 수밖에. 남부지방은 유채, 해바라기, 옥수수 등이 주요 작물이다.
스웨덴은 물가가 비싸다. 택시비는 한국의 2배, 김치찌개·떡볶이 1인분이 3~4만 원이란다. 그렇지만 어떤 호텔에는 아직도 브라운관 TV가 걸려있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아직 잘 나온다나? 참 단순하다. 동쪽으로 버스는 계속 달린다. 자작나무, 삼나무, 소나무, 그리고 짙푸른 호수가 연달아 나온다. 가이드가 개그를 한다. 2.5가 3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런데 다음 날은 2.5가 거만하게 서 있었다. 화가 난 3이 이유를 물어보니, “나 점 뺐다”라는 거다.
잠들었다, 깼다 하다 보니, 어느덧 스톡홀름에 버스가 와 있었다. 스웨덴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북유럽에서 가장 많다. 역사적으로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며, 전통적으로 북유럽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바이킹의 후손이다. 유럽에서는 스웨덴은 스위스, 포르투갈, 아이슬란드와 함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직접 겪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운이 좋은 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을 떠나온 지 50년이 되었다는 가이드 최영희가 까만 원피스 차림으로 승차한다. 나이는 들었지만, 당당한 모습이다.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대 도시인 스톡홀름에는 약 18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스톡홀름은 ‘통나무’라는 뜻으로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리가 주차장처럼 차가 밀려있다. 그러나 윗옷을 벗고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스웨덴은 대도시에 자전거길을 잘 만들어놓아 무동력으로 도시가 돌아간다. 환경 도시라고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은 의료비가 전액 무료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간 평균 SEK 1300까지는 자부담을 해야 한다. 따라서 중증환자들의 의료비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90% 이상의 의료기관이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되다 보니, 의사를 직접 만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암 환자들이 단순한 소화불량, 감기 등으로 오인하여 암의 말기에 입원하거나 자택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원격의료가 합법인 나라. 다양한 원격진료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간호사나 의사 혹은 심리상담사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의료비 면제 상한선인 SEK 1300에 도달하기 어렵다. 병원 1회 방문 시 내는 금액은 SEK 200~250선이며 응급실은 무료이다. 약값도 상한선으로 보호되고 있으므로 의료비 부담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함을 보존하고 있는 바사박물관. 이곳에 17세기 전함 바사호가 전시되어 있다. 이 전함은 스웨덴에서 1625년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 때 침몰한 전투함정. 1956년 발견하여 침몰하여 333년이 지난 1961년 인양되었다.
다음은 노벨상 시상식 연회가 열리는 스톡홀름 시청사와 콘서트홀. 매년 12월, 노벨상(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평화상) 시상식과 함께 황금의 방에서 축하연회가 열린다. 이 방은 무려 1900만 개의 금박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다. 단,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시상식을 한다. 시상식 만찬에는 1200~1300명이 초대된다. 그 방은 블루홀, 그런데 푸른색은 보이지 않는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이곳에 있다. 천장은 배를 뒤집은 모양. 황금방에는 7kg의 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나라는 남자들에게 불편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장실. 유니섹스 물결에 따라 남녀화장실이 동거하기 때문이다.
남자도 여성들과 함께 줄을 서서 좌변기에 일을 봐야 한다. 인질이 인질범과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이름으로도 유명한 도시. 섬이 많아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 스톡홀름이다.
스웨덴의 문화와 언론, 정치 그리고 경제의 중심. 스톡홀름 지역만 해도 스웨덴의 국내 총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인당 GDP가 유럽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곳이다.
다음은 13~19세기 건축물의 정취를 가진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 감라스탄. 스톡홀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이곳은 왕궁, 대광장, 대성당, 노벨 박물관이 있다. 또한,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점, 서점, 카페 등 중세 유럽풍으로 우리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시간을 잘 맞추면 독일교회에서 매시간 울리는 600년 전통의 웅장한 종소리를 들을 수도 있단다.
핀란드로 가기 위해 Truk행 크루즈 바이킹 라인 탑승한다. 이 배는 6만 톤 이상. 배 안에 약 2500여 개의 다양한 선실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클럽, 카지노, 사우나, 오락실, 면세점, 카페 등의 부대시설이 함께 있다. 여행객을 위한 초호화 크루즈, 바다 위를 이동하는 대형호텔인 것이다. 크루즈 안에서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누린다. 4인실을 아내와 둘이 차지했다.
2024. 5. 18(토) 11일 차 - 호수의 나라 핀란드와 마주하다
선상에서 뷔페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버스에 오른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잠시 경유했던 헬싱키로 이동한다. 길가에는 민들레, 자작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잔디밭에 누워서 손을 흔들며 반기는 사람도 있다.
호수의 나라 핀란드는 인구 550만 명, 1/3은 북극권. 가장 북쪽 라플란드 지방은 겨울에 영하 30℃, 백야가 신비로운 5∼7월엔 27℃까지 오른다. 발트해는 멕시코만류의 영향을 받지 못해 겨울에는 쇄빙선을 이용해야 항해할 수 있단다. 발트는 ‘하얗다’라는 뜻이다.
핀란드인들은 스칸디나비아족과 발트족으로 나뉜다. 공식 언어는 2개. 대부분은 핀란드어를 쓰고, 일부가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대부분 복음주의 루터교. 핀란드 남쪽 끝 이곳 헬싱키는 발트해가 깊게 들어와 이루어진 핀란드만에 둘러싸여 있다. 서머타임을 실시하여 우리나라와 6시간 시차이다.
헬싱키는 1550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바사 왕이 건립하였다. 1809년 러시아가 정복했다가 1917년 다시 주권을 되찾았다. 이후 수십 년 만에 헬싱키는 무역·산업·문화의 주요중심지로 발전했다. 또한, 우수한 항만시설과 함께 내륙의 여러 지역과 잘 연결된 철도·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주요산업은 식품·금속 가공, 인쇄, 섬유, 의류 등이다.
헬싱키 대성당과 정부청사들로 둘러싸인 원로원 광장은 알렉산드르 2세 동상을 중심으로 대성당, 정부청사, 대학교, 국립도서관 등 다양한 기관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의 헬싱키 대성당은 핀란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다음은 국민작곡가로 알려진 시벨리우스 공원. 시벨리우스는 1865년 핀란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핀란드계 군의관, 어머니는 스웨덴계.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피아노와 작곡을 배워 9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그는 가족들의 반대로 음대 대신 법대에 입학한다. 하지만 법대에 입학하자마자 헬싱키 음악원에도 입학,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우며, 법대는 중퇴했다. 1889년 음악원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에서 브람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1892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헬싱키 음악원의 교수로 취임했다.
1899년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교향시 ‘핀란디아’를 발표한다. 이 공원은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만든 것. 한가운데
시선을 모으는 600개 파이프 조형물은 시벨리우스의 기념비이고, 그 곁에 보이는 것은 시벨리우스의 얼굴 부조이다. 파이프 아래에서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손전화를 바닥에 놓고 아내와 함께 셀카로 멋진 포즈를 취했다.
계단을 올라 템플리아우키오 암석 교회의 내부로 들어간다. 헬싱키 암석교회는 1969년에 완공되어 독특한 외관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교회는 기존의 바위를 활용하여 건축한 것이다. 암석교회의 독특한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바위벽과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암반을 파서 구리로 만든 둥근 지붕이 독특하다. 이 건물은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바위와 지붕 사이에는 180장의 유리 창문이 있다. 조명 없는 실내가 완전 대낮이다. 또한, 음향이 좋아 콘서트와 결혼식에 자주 이용되는 특별한 곳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마켓광장을 걷는다. 로컬한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이곳은 싱싱한 채소부터 과일, 생선 등이 매일 거래된다. 싱싱하고 값싼 생선이 많아 어물 시장인 ‘피시 마켓(Fish Market)’이라고도 불린다. 바로 먹을 수 있는 훈제 고기로 간단하게 배를 채우거나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완두콩을 간식으로 먹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되돌아가야 하는 길, 헬싱키공항으로 이동하여 짐을 다시 꾸린다. 기오스크에서의 발권은 다른 팀 여자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음료수를 다른 공항과 달리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기내에 실을 짐 검사 후 보안원이 아내의 갈색 모자를 번쩍 들고 뭐라 한다. 알고 보니, 바닥에 떨어져 오염된 것. 공항직원이 괜찮냐고 했다. 아내는 불만을 제기했다. 이메일로 답변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제 12일간의 북유럽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 오후 5시 반 핀란드항공 AY041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숲속의 나라, 호수의 나라가 구름 아래에 펼쳐진다. 샛노란 유채밭이 연속으로 지나간다. 핀란드 시내가 하트 모양의 호수와 함께 발아래에 펼쳐진다. 고도가 높아진다. 구름이 우리를 맞이하고 비행기는 이제 성층권 하부를 시속 1000km 이상의 속도로 아시아로 향한다. 편서풍대의 제트기류가 비행기의 속도에 또, 다른 속도를 더해준다. 서에서 동으로 도는 지구를 따라 대한민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동쪽으로 하늘을 가르는 비행시간은 11시간 반으로 2시간 정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조종사는 비행항로를 일단 러시아 방향이 아닌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쪽으로 튼다. 발트해의 구름이 유난히 눈부시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비행기는 동으로 날아간다. 시간의 가속이 붙는 것이다. 금방 밤이 왔다. 저녁 식사 기내식이 나왔다. 밥, 돼지고기, 샐러드 나는 덧붙여 레드와인을 요청했다.
카스피해를 지나 흑해를 지난다. 캄캄한 밤하늘, 중국 신장웨이우얼의 우루무치를 지난다. 마을들이 마치 별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내방송이 나온다. 안전벨트를 확인하라, 지금부터 화장실 사용은 금지한다. 급강하하는 동체, 나는 순간 숨을 죽인다. 동시에 앞 좌석 의자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잠시 후 비행기는 중심을 잡았다. 사람들이 비로소 숨을 쉰다. 중국 서부 사막지역 투루판의 귀신이 될 뻔 했다. 다시 자다 깨다, 음악을 듣다가, 또 자
다가 어느덧 비행기는 베이징 상공을 거쳐 보하이만을 지난다. 모니터의 귀국 항로를 살펴보았다. 어느 덧 비행기에 실린 나는 조국 상공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2024. 5. 19(화) 12일 차 -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오다
오전 11시 20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도착, 짐을 찾는다. 일행들과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는 제주도로 가야 한다. 공항철도를 이용한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하려니, 낯설다. 생각보다 승객들이 많아 객실이 혼잡하다.
김포공항, 오후 3시 5분 제주행 에어부산이다. 한반도 남쪽을 향해 비행기는 난다. 잠깐 꿈을 꾸니, 비행기는 덜덜거리며 지상에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야자수 푸르른 제주공항이다. 택시를 붙들어 평화로를 달린다. 작년에 불발되었던 북유럽 여행, 그중에서도 꿈에서도 궁금했던 살아있는 지구의 현장에 발자국을 찍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갈라지는 곳을 직접 확인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의미 중 의미였다.
'여행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속의 제주로 들어가다 (0) | 2023.08.08 |
---|---|
신중년, 두 남자 추억 여행 (0) | 2023.06.01 |
이집트, 나일강 크루즈 타다 (0) | 2023.03.31 |
대양주 여행(호주, 뉴질랜드, 피지) (0) | 2020.03.08 |
남녘의 압권, 고흥 일주일 살기 (0) | 2019.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