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 김수영의 '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황동규는 '시의 소리'에 서 '우리가 풀을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 특히 '비를 몰아오는 동풍'은 외세의 상징이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하다.'고, 최하림은 '문법주의자들의 성채'에서 몇몇 문인들의 풀에 대한 의미 분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풀잎이란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다양한 방법과 탐구를 통하여 획득한 이미지의 하나로써, 그것은 우리들의 삶 자체와 항상 연관을 가진다. 김수영은 그것을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는, 그 자신의 본질속에 운동성을 내포한 존재로서 파악하였고, 황동규는 뿌리 뽑혀진 존재로서 인식하였으며, 오규원은 말을 만드는 것으로써, 이성부와 이시영은 저항하는 민중상으로 이해하였으며, 정현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어둠속에 자신을 열어놓고 흔들리고 있는 풀잎의 부드러운 힘 그것이다.
(서익환, 월간문학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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