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어머니의 저항(Ω)/하 린 어머니의 저항(Ω)/하 린 건전지 갈아 끼우듯 여자를 바꾸던 아버지가 안방에 들어서면 스파크가 튀는 밤이다 두꺼비집에 두꺼비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저항 한 개를 추가하며 꼬마전구처럼 소심하게 깜빡거리고만 있다 아버진 뒤늦게 어머니와 접속을 시도하지만 어머닌 차단기 내린지 오래 전압이 센 할아버질 수발한 이력을 어머니가 토해낼 때마다 양과 음이 쪽쪽 빨아대는 전류의 본능만 탓하는 아버지 어머닌 한이 충전된 배터리를 꺼내 아버지 몸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여자들을 지져댄다 눈이 뒤집힌 여자들이 하나둘 꽁무니를 뺄 때 아버진 수명 다한 필라멘트처럼 퍽 맥이 풀린다 과부하가 걸리는지 면상에 손가락까지 찔러대는 어머니 오긴 왜 와? 여기가 어디라고! 급기야 하늘과 지상 사이에 퓨즈.. 2021. 12. 16. 바닥의 힘/김충규 바닥의 힘/김충규 갓 태어나 바닥에서 자란 사람, 갓 죽을 때 바닥에 눕는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어냐,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닥에서 시작 하여 바닥으로 끝나는 것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난 힘으로 걸었고 뛰었고 지치면 쉬었고 하고 싶으면 바닥에서 정사를 나눴고 병들면 바닥에 누웠다 지하역의 노숙자도 청와대의 대통령도 바닥에 눕고 바닥을 딛고 살아간다 제 아무리 떵떵거 리며 살던 사람도 추락하기 시작하면 바닥에 닿는다 바닥은 추락의 마지막 지점, 바닥을 피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해도 그곳에도 바닥이 있다 죽어 무덤에 대한 애착을 갖는 것도 바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바닥에 등을 댄다는 것, 그것은 바닥의 힘에 순응하는 것,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준 힘으로 오늘 내가 호흡을 이어간다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주지 .. 2021. 12. 15. 넥타이/박성우 넥타이/박성우 늘어지는 혀를 잘라 넥타이를 만들었다 사내는 초침처럼 초조하게 넥타이를 맸다 말은 삐뚤어지게 해도 넥타이는 똑바로 매라, 사내는 와이셔츠 깃에 둘러맨 넥타이를 조였다 넥타이가 된 사내는 분침처럼 분주하게 출근을 했다 회의시간에 업무보고를 할 때도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계약을 성사시킬 때도 넥타이는 빛났다 넥타이는 제법 근사하게 빛나는 넥타이가 되어갔다 심지어 노래방에서 넥타이를 풀었을 때도 넥타이는 단연 빛났다 넥타이는 점점 늘어졌다 넥타이는 어제보다 더 늘어져 막차를 타고 퇴근했다 그냥 말없이 살아 넌 늘어질 혀가 없어, 넥타이는 근엄한 표정으로 차창에 비치는 낯빛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넥타이를 잡고 매달리던 아이들은 넥타이처럼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귀가한 넥타이는 이제 한낱 넥타이에 불과하므.. 2021. 12. 15. 놀란흙/마경덕 놀란흙/마경덕 뒤집힐 때 흙도 놀란다 쟁기 삽 괭이 호미 쇠스랑 포클레인… 누가 제일 먼저 괭잇날에 묻은 비명을 보았을까 낯빛이 창백한, 눈이 휘둥그런 겨냥한 곳은 흙의 정수리거나 잠든 미간이거나, 흙의 표정을 발견한 누군가의 첫 생각, 그때 국어사전에 놀란흙이라는 명사가 버젓이 올라갔다 흙의 살붙이, 지렁이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 그것들이 가랑이를 헤집어 집을 짓고 길을 내도 놀라지 않는다 나무뿌리, 바위뿌리에도 덤덤한 흙이 사람만 보면 왜 그리 놀라는지, 흙의 나라 태초에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닮은 흙의 심장은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공사장 주변, 포클레인이 파헤친 땅 매장된 산업폐기물을 껴안고 까맣게 죽어있었다 싱싱하던 흙빛은 흑빛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버지는 흙집으로 들어가 더는 놀라지 않고, .. 2021. 12. 15. 이전 1 ··· 50 51 52 53 54 55 56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