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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유용선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유용선 내 나이 여섯 살 적에아버지와 함께 간 그 냄새나는 식당,그 옆에 냄새나는 변소,그 앞에 묶여 있던 양치기,는 그렇게 묶인 채로 내 엉덩이를 물었다.괜찮아, 괜찮아, 안 물어.그 새끼 그 개만도 못한 주인새끼의그 말만은 믿지 말았어야 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나는 번번이 짖는 개에게 물렸다. 사랑을 부르짖는 개,는 교회에서 나를 물어 뜯었다.정의를 부르짖는 개,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덮쳤다.예술을 부르짖는 개,는 백주대로에서 내 빵을 훔쳐 달아났다. 괜찮다, 괜찮다,는 개소리는 지금도 내 엉덩이를 노린다.괜찮아, 괜찮아, 물지 않을 거야.저 새끼 저 개만도 못한 새끼의싸늘한 속삭임을 나는 도시 믿을 수 없다. *시집, 개한테 물린 적이.. 2024. 10. 19.
한 여름/고두현 2024. 8. 16.
풀/김수영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 김수영의 '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황동규는 '시의 소리'에 서 '우리가 풀을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 특히 '비를 몰아오는 동풍'은 외세의 상징이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하다.'고, 최하림은 '문법주의자들의 성채'에서 몇몇 문인들의 풀에 대한 의미 분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풀잎이란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다양한 방법과 탐구를 통하여 획득한 .. 2024. 8. 13.
폭우/함순례 폭우/함순례 식탐 부리다 혀를 깨물었나 불룩한 배가 슬펐나, 토사곽란이 났다 응급실에 갔다 아프지 말거라 수액을 맞는 동안 외삼촌이 병실 천정에서 굽어본다 스무 살 내게 곁방을 내어주고철로변 흔들리는 세간에도 맑은 기운 잃지 않았던 그 손 잡아보려 하는데 가뭇없이 멀어진다  자리보전하고 누우셨어, 뼈만 남은 모습이더라 눈시울 붉어지고내장은 뒤틀려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고 깨물린 혀는 쓰라리고 웅크린 담요를 가로질러 기차가 지나간다가로등 불빛이 덜컹거린다 경적을 울리면서캄캄하게 재생되는 구름 이 비 그치면 새로이크고 마른 별로 태어나실까밤이면 창문을 두드리실까  내가 속상한 여름에 잠겨 식은땀을 흘리는 동안 문밖에서는 다정한 외삼촌이 줄기차게 쏟아졌다 2024.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