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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아침 이미지/박남수 아침 이미지/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사상계』 179호, 1968.3) 2023. 12. 6.
물의 결 / 박우담 물의 결 / 박우담 1. 너는 노를 젓고 있다 물을 노크하고 있다 너는 물을 벗겨내고 있다 노를 저어 물의 척추를 간질이고 있다 척추는 고요를 깨트리고 있다 입에 재갈을 물린 듯한 템포 빠른 호흡을 하고 있다 너는 노를 젓고 있다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나아갈 방향으로 결을 따라 애무해야 한다 2. 척추가 물꼬를 트게 물을 잔뜩 애무해야 한다 어느덧, 물은 넌출거리며 갑시게 추임새를 넣고 있다 2023. 12. 6.
합장合掌/민수경 합장合掌 ​ 지문과 지문이, 손금과 손금이 만나 희망이라는 새 지도를 만드는 날 보세요 손바닥과 손바닥이 서로의 바닥을 감싸주는 손과 손이 만들어낸 저 푸른 좌표를 -민수경(2020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2023. 12. 4.
크레바스에서/박정은 크레바스에서/박정은 왁자지껄함이 사라졌다 아이는 다 컸고 태어나는 아이도 없다 어느 크레바스에 빠졌길래 이다지도 조용한 것일까 제 몸을 깎아 우는 빙하 탓에 크레바스는 더욱 깊어진다 햇빛은 얇게 저며져 얼음 안에 갇혀 있다 햇빛은 수인(囚人)처럼 두 손으로 얼음벽을 친다 내 작은 방 위로 녹은 빙하물이 쏟아진다 꽁꽁 언 두 개의 대륙 사이를 건너다 미끄러졌다 실패한 탐험가가 얼어붙어 있는 곳 침묵은 소리를 급속 냉동시키면서 낙하한다 어디에서도 침묵의 얼룩을 찾을 수 없는 실종상태가 지속된다 음소거를 하고 남극 다큐멘터리를 볼 때처럼, 내레이션이 없어서 자유롭게 떨어질 수 있었다 추락 자체가 일종의 해석, 자신에게 들려주는 해설이었으므로 크레바스에 떨어지지 않은 나의 그림자가 위에서 내려다본다 구멍 속으로.. 2023.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