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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자목련, 춤

by 광적 2012. 4. 17.

 

자목련, 춤 / 김춘기

 

생강냄새 풍기고 싶어서 맨 먼저 피어나는

생강나무꽃 노란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블록담장에 몸을 기댄 자목련이

새벽부터 구관조처럼 부리를 내민다

돋을볕의 금빛을 두르고

마음 속으로 캉캉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춤을 춘다

프랑스에서 유행했다는 캉캉춤을

우리도 춰야겠다며

초록 배꼽티 살짝 여미고

어머니가 지어주신 보라색 스란치마 나풀거리며

온몸 흔들며 캉캉캉…

키 작은 바람도 여럿 데려와

남자고등학교를 향하여

온종일 티켓 없는 무료 공연이다

하얀 속치마까지 홀랑 들어올리고

맨 다리 다 드러내놓고

아침밥도 굶은 채, 일제히 춤판에 빠진

철딱서니 없는 저 서울 가시내들

그녀들이 날려보내는 웃음소리에

사랑의 건반을 밟는 총각 얼굴처럼 환한 하늘도

창문을 열며 맨몸을 다 보여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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