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뉴욕에 가다/김춘기
황도 12궁 따라 돌던 태양이 양자리쯤에 닿는 춘분이 벌써 진지 구축했다고, 사월은 손난로 트럭에 싣고 달려와 아야진포구 일대에 노점 펼친다. 낮은 포복으로 울산바위 오르던 맵찬 바람이 주머니에 숨겨둔 부비트랩의 스위치를 누른다.
당황한 봄은 순간 납죽 엎드리고, 하늘은 중청봉에 진눈깨비를 한 겹씩 쏟는다. 대낮에도 꽃샘은 포구 일대를 쏘다니고는 마을 고샅길 아래 머리를 일찍 내미는 초봄의 새순들을 얼리고, 잠에서 먼저 깬 참개구리 눈망울을 궁굴리게 한다.
며칠 후, 남녘 따순 봄이 동해대로를 달려와 양양 들판의 뚜껑을 열자, 봄비 봄샘 봄동 봄꽃 봄병아리 봄미나리 봄아지랑이가 함께 촛불을 켜고는
마을마다 뛰어다니며 춤추고 미끄럼타고, 벼랑 위에서 엉덩이도 찌며 장기자랑 하는 하오. 동안거에서 깬 대청봉이 팔 내밀어 구겨진 하늘을 팽팽히 잡아당기고는 캔버스에 새봄을 풀어 경작지를 넓히고 있다.
오월이 오기 전에 저 봄 풍경 죄다 압축하여 통조림 만들고 싶다. 깡통마다 최신 봄 상표 붙여 몽땅 대형 컨테이너선에 싣고, 태평양 건너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실어다가 아시아의 봄, 특별 전시회 열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