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에 관한 고찰/김춘기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기 싫어 꾀병하다가 어머니 회초리에 쓴맛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지.
어느 날인가, 탱크 훈련 중인 미군 병사가 시레이션을 하굣길에 던졌지. 내가 먼저 주워 하필 커피를 입에 털어 넣는 순간, 혀까지 죄다 내뱉었지. 초등학교 때 유사 장티푸스로 사경일 때, 어머니가 코를 막고 가루약을 입에 털어 넣으시면, 온몸이 정말 가루약이 되는 줄 알았고.
중학교 입시에 낙방했을 땐, 그냥 밍밍했지. 고등학교 시험에서 미끄럼 탔을 적엔 씁쓸했었고. 사대 졸업하고 선생 휴직 후, 입대해 논산훈련소에서 박격포탄 기합 못 받겠다고 버티다가 인간 샌드백이 되었을 때, 바로 쓴맛의 진수를 터득했지.
아들내미 여자친구 인사를 처음 받았을 때처럼 달콤함이 어쩌다 스치기도 하지만, 삶이란 늘 쓴맛을 견디는 일의 연속이지. 콜롬비아산 원두커피를 몇 잔씩 마시면서도 고소하다고 말하지. 과육 달콤한 커피 열매에서도 하필 씨앗에서 추출한 쓰디쓴 맛의 결정체를 우리는 찾지, 블랙 블랙커피 하면서.
쓴맛을 쓴맛이 아니라며
달콤함의 원조도 쓴맛이라는 것을 지천명을 넘어서 깨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