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가을 오후 / 김춘기
하늘마저 도약하고 싶은 가을날 오후
동네에서 제일 높은 연립주택 옥상
탑층에서 나온 꽃무늬 앞치마 새댁이
엉덩이를 통통 튕기며 바지랑대를 올리자
건너 편, 티브이 안테나에서 날아온 고추잠자리 쌍이
한 몸이 되어 은빛 줄 위로 날아오르네.
하늬바람이 숨바꼭질을 하고 나올 때마다
만국깃발처럼 펄럭이는 원색의 율동
곁에서 백로처럼 날갯짓하는 기저귀의
팔분의 육박자 춤사위.
마음 들뜬 하늘은 그것을 보고
옥상을 이리저리 흔드네.
길 건너 가납초등학교 1학년 윤서가
몽당연필로 삐뚤빼뚤 글씨를 쓰는 것처럼
집으로 뛰어오자, 일층 셋집 삽살강아지
자전거 밑을 빠져나가 구멍가게 앞으로
팔짝팔짝 마중을 나가네.
웃음 제조기 몽골 새댁엄마
옥상에서 맨발 뒤꿈치를 바짝 들고
딸내미 부르는 소리에
연립 입구 돌감나무의 고욤들이
방긋방긋 얼굴을 내미네.
햇살을 씻어내던 물빛 하늘
장난꾸러기 바람을 불러다가 곽 티슈를 풀듯
손바닥만한 텃밭을 여기저기 일구고
거기에 벌개미취꽃을 옹기종기 피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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