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탁/김춘기
우리 교실 맨 앞자리를 지키는 나무교탁.
담임선생님이 입학식 전날, 새옷을 입혔다지만, 가슴 속엔 늘 허전한 그늘이 돌처럼 뭉쳐 있지. 휴일엔 그냥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꼬리나 붙들고 흔들어 보기나 하구.
집 나온 햇살과 카드놀이를 하며 그들의 푸념이나 들으면서 불알친구들이 왜 자꾸 도시로 전학 가는 지 궁금해 하고, 3월에 새로 오신 새내기 선생님, 목소리가 은방울 구르는 것 같은 내 짝사랑 여자선생님 애인은 있을까 없을까? 내기해 보는 게 전부지.
개학이 다가오면, 자꾸 긴장하게 되지.
사모님과 싸우고 온 남자선생님이 화라도 나면 더욱 그렇고. 오후만 되면 신경질적인 노처녀 선생님 시간엔 정말 미치지. 졸고 있는 친구를 깨운다면서 왜 내 머리와 옆구리를 연방 때리는 건지 모른다니까?
부어오른 이마에 안티프라민조차 발라주지 않으면서. 인권조례인지, 뭔지도 전혀 소용이 없지. 아니 내겐 교권이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수학여행이나 명절연휴 때면 잠시나마 마음 놓고 낮잠도 자고, 커튼 그림자와 빈 교실을 어슬렁거리기도 하지.
조용히 칠판을 쳐다보며 이번 여름방학 때 몰래 도망가 버릴까 망상도 하고, 지난 주 수행평가가 끝난 교실 뒤의 친구들 작품이 수준 이하라고 평가도 하면서 말이야.
어제는 수학시간에 30cm 두꺼운 자가 부러질 정도로 또, 맞았어. 점심시간엔 일주일 동안 샤워도 안 한 녀석이 엉덩이로 철버덕 내게 앉기도 하고. 일진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진종일 물푸레나무로 플라스틱 컴퍼스로 맞았거든, 이젠 지쳤어.
정말 교육감이 교권조례라도 만들어 공포하겠다는 건지. 언제
가을이면 코스모스 피는 소리 교향곡을 펼치는 강가로 귀촌이라도 할 수 있는 건지, 오늘도 궁금할 따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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