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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산문

헬리콥터 맘

by 광적 2012. 6. 21.

헬리콥터 엄마

양주백석중학교장 김춘기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하여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처럼 신비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키우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습니다. 그녀들은 오직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아무리 어려워도 난바다의 파도를 끝까지 헤쳐 나갑니다. 가파른 산맥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어머니, 현명한 어머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자식에게 끝없이 사랑만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현명한 어머니, 즉 어진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동시에 바르게 가르칠 줄 아는 어머니입니다. 자식에게 때로는 사랑의 회초리를 댈 수 있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가진 어머니, 그녀가 어진 어머니입니다. 요즘 어머니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대부분이고, 어진 어머니는 천연기념물 수준이라 문제입니다. 자식이 해달라는 것은 무조건 들어주는 어머니. 다른 집 아이들보다 공부 잘하고, 출세하기만을 바라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사람, 즉 행복한 인생이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은 반드시 출세하여 남보다 풍족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본능적 사랑은 때로 자식을 불행의 나락으로 빠트리기도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만으로 자식을 감싸 안으면, 자식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남보다 빨리 화려해질 뿐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위기가 닥쳐서 아이와 어머니 가운데 한 사람만 살아야 할 경우라면,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몸을 기꺼이 던지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그 이름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 뭇사람의 가슴을 울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두 아들을 정성껏 키우던 어머니가 집에 불이 나자, 망설임 없이 불속으로 뛰었습니다. 두 아들을 이불에 싸서 구했으나, 어머니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까지 다쳐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의 도움 없이 두 아들을 잘 키워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두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가 먼저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화려한 졸업식장에 초라한 어머니가 나타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은 얼른 경비실을 통하여 그런 사람은 없다고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마음의 상처만 안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큰아들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는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전에 둘째아들의 졸업식에라도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둘째아들이 졸업하는 대학으로 갔습니다. 절뚝거리며 걸어오시는 어머니를 본 둘째아들은 어머니를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달려와 어머니를 얼른 업고 졸업식장으로 신나게 뛰어갔습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자식사랑처럼 극성맞은 것은 정말 보기 힘들지요. 바로 한국형 치맛바람을 말입니다. 요즘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초특급 치맛바람이 유행입니다. 이런 어머니를 헬리콥터 엄마(helicopter mom)이라고 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부터 학습 매니저가 된 헬리콥터 엄마는 자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모든 것을 해결해주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합니다. 헬리콥터 엄마는 치맛바람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녀들은 착륙하는 헬리콥터의 날개가 만들어내는 세찬 바람처럼 늘 자식의 주위를 빙빙 돌며, 그들에게 장애가 되는 것들을 모두 날려 보내는 어머니입니다.

헬리콥터 엄마의 자식은 어머니가 세운 일과표에 의해 로봇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어머니들은 자식의 매니저 겸 코치가 됩니다. 심지어 자식의 친구까지도 정해준답니다. 또한 자식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는 엄청난 바람으로 주변의 장애물을 다 날려버리고, 그 힘으로 헬리콥터를 띄웁니다. 어머니들이 그렇게 자식들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줄 때마다, 자식들은 그 상황에 익숙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해결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됩니다. 시련과 좌절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프리카의 세렝게티초원을 누비는 사자의 새끼 키우기는 유명합니다. 어미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사냥을 통해서 정성껏 먹이를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새끼가 독립할 때쯤이면, 절대로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에 새끼에게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어미사자는 새끼가 일 년쯤 지나면 반드시 독립시킵니다. 새끼사자는 어미에게 배운 대로 사냥을 하며, 혼자의 힘으로 맹수가 우글거리는 푸른 초원을 누비게 됩니다. 자식에게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 이것이 우리 어머니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식 키우기 방법입니다.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Parents Who Love Too Much)’의 공동저자인 제인 넬슨(Jane Nelson)은 부모들에게 과연 사랑이면 모든 게 충분한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부모의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풍요로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과 자살이 점점 더 심해지겠습니까? 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늘어만 가는 것입니까? 저자들은 그 이유를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법에서 찾고 있습니다. 제대로 자식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리는 부모들의 판단과 선택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이 책은 좋은 부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지나친 허용과 통제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자식을 너무 방관하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방관은 자식을 성숙하게 만들게 됩니다. 과잉보호는 자식을 어른으로 키우지 못하고 아이와 어른사이에 가둬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넘쳐서 문제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모의 지나치게 높은 교육열과 엄청난 교육비지출은 가정의 몰락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전인적 성장의 저해, 학교교육의 비정상화, 국민들 사이의 위화감 조성, 가정경제의 파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제 헬리콥터 엄마가 사회문제를 넘어 우리 대한민국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출생교육취업결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려합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자식만은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오늘도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습니다. 헬리콥터 엄마는 결코 자식을 오월의 숲속을 거니는 행복이 가득한 삶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넘쳐서 문제입니다. 이제는 자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부모의 넘치는 사랑과 과잉보호가 오히려 자식의 장래를 망친다는 것을 우리 어머니들은 정말 모르고 있는 계신 것입니까?

 

<정선기 컬럼 참조. 2014. 3. 20. () 학부모총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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