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백석들녘
김춘기
긴 여름,
바람도 목이 마른 몽골 초원에서 대가족을 거느리던 쥐라기 어미공룡이 겨울 준비를 끝내고 앉아 있는 것 같은 한강봉이 마을 쪽으로 내려오고.
어머니 시집오실 때 가마의 뒤를 따라온 자욱한 안개로 새벽을 여는 26사단 쪽으로 가는 길의 너른 들판,
누구에게 돈 한 푼 꾸어본 적 없는데도 엎드려 있는 논두렁, 밭두렁
밤마다 저수지로 별빛을 소복하게 받아내는 흥복마을
반딧불이 눈빛을 따라다니던 풀벌레 울음은 다 어디로 갔나? 윤기나는 깃털의 참새, 산비둘기 떼,
가끔은 마실 나온 고라니 가족의 세상살이도 모두 산을 넘은 적막한 하오.
말랑말랑한 연시 하나 입에 넣어 보지도 못하고 굴참나무 울창한 여름이 불곡산을 넘기도 전 하늘로 가신 여든다섯 아버지.
내 가슴엔 터널이 뚫려 있네.
막차도 떠난 정류장을 지키는 그믐달처럼 이 세상의 고아가 된 나를
한강봉이 해종일 내려다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