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 회고사
세상은 폭설에 갇혀 아직 한겨울이지만, 우리 마음의 남쪽 창틈으로는 벌써 새봄의 기운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오늘 바쁘신 중에도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하여 본교 제9회 졸업식에 참석해 주신 김춘성 운영위원장님, 임성은 학부모회장님, 그리고 ~님을 비롯한 귀빈과 학부모님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지난해 9월 1일자로 본교 공모교장에 취임하여 첫 번째 졸업식입니다.
사랑하는 양주백석중학교 졸업생 여러분!
지난 3년 동안의 중학교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늘 영광스런 졸업을 맞이하였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최선을 다한 여러분들의 열정에 대하여 치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또한 오늘의 영광된 졸업이 있기까지 가르쳐 주시고 보살펴 주신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의 노고에도 충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여러분들은 2010년 3월 2일 작은 나무로 본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여러분들은 몸도 제법 단단해지고, 우듬지가 푸른 보기 좋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왕 나무에 대한 얘기를 꺼냈으니까, 오늘은 나무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옛날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한 젊은 농부가 대청마루 아래에 흩어져 있는 아주 작은 씨앗들을 보았습니다.
“이게 뭐지? 누가 이런 걸 어질러 놓았을까? 어휴 집이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에이, 쓸어버려야겠구나.”
그리고는 싸리비를 가져다가 그 씨앗들을 마당 밖으로 휙휙 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씨앗 중의 일부는 바람에 의해 밭으로 날아갔습니다.
농부의 넓은 마당 곁 화단에는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 나팔꽃, 접시꽃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얼굴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또 그 옆에는 호박과 수세미도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마당 저 편에는 조그만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부가 비로 쓸어버린 작은 씨앗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멀리 밭으로 날아간 씨앗 알갱이는 생각하였습니다. “지금은 내가 비록 작지만, 앞으로 키가 크고 굵직한 나무가 될 수 있을 거야.”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은 이렇게 다짐하며 흙속에서 웅크리고 견뎠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왔습니다. 농부네 마당은 작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세미도 감나무도 여전히 그 자리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딱 한 가지가 바뀐 것이 있다면 마당 한쪽 구석에 여린 싹이 돋아난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20년쯤 지나갔습니다. 어느덧 그 여리던 나무의 싹은 몸통도 굵어지고 가지도 무성하고 키도 훌쩍 자라났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멋진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농부는 그 나무를 보고는 ‘야! 이 나무 좀 봐! 내가 비로 쓸어버린 그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드디어 이렇게 늘씬한 나무가 되었구나.’
농부는 나무 아래에 평상을 만들어 놓고 무더운 여름날이면 땀을 식히기도 하고, 책도 읽었습니다. 또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을 두기도 하였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매일같이 놀러 와서 그네를 타고, 술래잡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 위에는 멋진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나무가 농부의 빗자루에 의해 쓸려져 날아간 볼품없는 작은 씨앗이었다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지금까지 한 제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느낌이 옵니까?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들이 정든 교정을 나서면 거기에는 넘어야할 높고 험한 산맥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준령을 ‘얼마나 힘차게 넘고, 또 오르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의 가치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 산맥을 향해 부는 세찬 바람은 곧 여러분이 헤쳐 나아가야할 삶의 시험대일 것입니다. 그 길에는 험하고 거친 바윗길, 깊은 골짜기와 같은 고통의 길이 수시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의 앞에 펼쳐지는 험한 길을 자신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폭풍은 나무의 뿌리를 더욱 땅속 깊이 들어가도록 만듭니다. 사람들이 가는 길에 못 보던 돌이 나타났을 때, 실패하는 사람들은 걸림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디딤돌이라고 합니다. 분명 여러분들이 가야할 자갈길 다음에는 푸른 초원이 기다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양주백석중학교 제자 여러분!
여러분의 앞날에 행복의 활주로가 끝없이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빨간 빛깔의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는 튼실한 나무가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사랑하는 제자들이 오늘의 영광된 졸업을 맞이하기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온 정성으로 보살펴 주신 학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노고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졸업생 여러분! 사랑합니다.
2013년 2월 7일 제9회 졸업식 회고사
양주백석중학교장 김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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