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3
덫에 채인
짐승 한 마리
목이 조이어 막 숨이 꺼져 갈 무렵
어딘가
한 송이 꽃이
벼랑 끝에 피고 있다
- 이정환이 '묵시록3'
필자가 인용 시조를 찾다 발견한, 필자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외경심이 느껴지는 시조로, 선(禪)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생각나게 했던 작품이다.
남송우 교수는 이 시조를 이렇게 말했다.
한 송이 꽃핌이나 시 한편의 완성이 그렇게 단순하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어쩌면 한 송이의 꽃핌은 바로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그런데 한 세계의 열림 혹은 펼침 은 다른 한 세계의 닫힘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 성과 소멸 현상을 시인은 꽃의 피어남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죠.그것을 다시 묵시록에서 만 날 수가 있습니다.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다. 이백은 ‘천지는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라 했고 백발을 두고 어디서 된서리를 맞고 왔는가하고 말하지 않았는가. 봄과 여름을 어찌 경계 지을 수가 있는가. 사람이 경계를 지운 것이지 시간이 경계를 지운 것은 아니다. 겨울이 있어 봄이 있고 여름이 있어 가을이 있다. 한쪽은 소멸이요 한쪽은 생성인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생성과 소멸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삶과 죽음은 수유간으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옆에 있다. 위 시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무래도 이 시는 선시로 풀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석야 신웅순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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