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참
김춘기
하늘로 출근한다, 돌팔이 점성술사
마누라 잔소리쯤은 클래식으로 듣는 털보 영감. 세상 사람들 앞날은 자신만이 지킬 수 있다는 신념에 하루라도 별을 못 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는 자칭 유명 점성술사. 오늘 밤 개기월식이라며, 저녁밥은 드는 둥 마는 둥 뒷산 천문대로 향했겠다. 비포장 굽은 길 낡은 운동화를 끌지만, 눈 감고도 오르는 언덕. 개울 건너 밀밭 둑에선 뛰기까지 한다. 근데, 한낮 소낙비가 언덕에 흙구덩이 미끄럼틀을 만들었지 뭐야. 하필 그 덫에 걸려 오른 발목을 접질린 점성술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월광욕이나 할 수밖에. 다행히 속정만은 누구보다 깊은 아내, 밤참으로 삶은 달걀에 따끈한 커피를 들고 오다가 그 광경을 눈에 넣었겠다. 두 눈을 보름달처럼 확대한 아내, 터질 것 같은 울화를 꺼내는 별빛 목소리.
당신, 참
하늘 박사님!
발밑이나 똑바로 봐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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