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내 참 동무
김춘기
시간만 나면 집밖으로 날 이끄는 너
어제는 먼지 낀 하늘을 유리창처럼 닦아주더니, 오늘은 내가 쏘다니는 동네골목을 말끔하게 쓸어주고는 이중삼중 잣대로 보이는 세상을 내게 명료하게 정리해주었지. 마음 화창한 날엔 선글라스로 바꿔 썼지. 블루진엔 푸른 빛깔, 반짝이 티셔츠엔 은빛으로 말이야. 연차 모은 황금연휴, 커플룩차림 아내와 울진 해파랑길 위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구. 생각의 늪에 잠긴 날엔 심야에도 검은 안경차림이었지. 늦잠에서 깬 아침, 덜컥 안경 위에 세수하고는 엄청 두 손을 질책했지. 한겨울, 뜨끈한 국밥집에서 김 서린 렌즈 위에 파스텔화 한 폭 그려주던 너. 내가 긴병으로 입원한 병실 머리맡에서 보호자가 되어주었고, 어머님 돌아가신 날도 내 곁에서 함께 눈물 흘렸지.
눈뜨면 콧마루에 앉아
세상 밝히는 나의 동무, 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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