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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時調

입원/김춘기

by 광적 2021. 8. 31.

입원/김춘기

 

 

  현주소가 바다였다

  평생 집시, 섬이었다

   

  태평양 물의 평원을 밤별처럼 누비던 삼십 년 된 컨테이너 무역선, 베링해에서 뜨거운 심장 사철 펄떡이며 바다의 코를 낚던 명태잡이 주낙어선, 남중국해를 늑대처럼 어슬렁거리며 레이더가 눈이었던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미사일이 노리는 걸프만을 낮은 포복 자세로 드나들던 유조선, 북극해의 냉동 복부를 강철 이마로 쩍쩍 가르던 쇄빙선, 대서양 적도해역을 어기차게 역주행하며 파도를 토해내던 공룡 벌크선이 현대미포조선에서 배를 다 열고 나사, 볼트가 새 것으로 교체되어 반짝반짝 조여지고 있다

 

  수술실 침대 위에서

  중고품 내 몸이 수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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