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한라산/김춘기
흰나비들 떼창처럼 1100고지에 내리는 눈
제설차 경적은 이미 경사로에 묻혔다
하늘은 엊그제부터 공습경보 발령 중이다
해일 같은 눈보라에 관목들이 엎드린다
산정 향해 포복하는 숨찬 구상나무 군락
북벽은 두 눈 꾹 감고 *매킨리산이 된다
구름은 설피도 벗고 남벽 수직 벼랑 탄다
날 밝기 전 사람들은 숫눈길 또, 헤친다
아이젠 나사 조이며 길 없는 길 뚫어낸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제주 산악인 고상돈이 등정 중 희생된 곳으로 북미 최고봉(6,191m)이다. 초강풍 제트기류가 직접 이곳을 통과하며, 화이트아웃이 극심한 산으로도 악명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