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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어머니의 양식/신병은

by 광적 2023. 7. 3.

어머니의 양식/신병은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후에야

어머니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렇게 창창하던 분이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이

일용할 양식이 떨어졌는가 봅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게지요

어머니는 지금 남아있는 몇 개 목소리로 견디는가 봅니다

가끔 드리는 전화 한 통으로 사나흘을 견디곤 하지만

목소리도 유효기간이 있어

전화로 하는 목소리, 얼굴로 하는 목소리,

장남이 전하는 목소리, 동생이 전하는 목소리의

약발이 각기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유효기간이 제일 긴 것은

오래전에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빛깔로 기억 속에 남아

함께 저물어 가고 있는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단번에 눈이 빛나며

'그럼, 니 아버지는 그랬제'

소녀처럼 해맑은 웃음도 띱니다

오늘 아침 한 통의 전화에

어머니의 하루가 탱탱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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