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詩54 빈 배/ 김춘기 빈 배/ 김춘기 밀물이 해안에 닿으면, 누군가를기다리는 낡은 구두 한 짝 닮은 배는먼 바다로 나갔다그렁그렁한 엔진소리만 몇 마디남겨 놓고 떠난 배밤새도록 파도 위에 낚시를 던졌지만구겨진 달빛 몇 조각과성단에서 떨어져 나온 잔별들만겨우 건져 올렸다여명과 함께 항구로 들어오는 것은 늘,허기와 수조 바닥이 보이는 빈 배 남자는 젊은 시절 대관령 비알밭에서고랭지 배추를 재배하였다파출부로 이골난 아내 통장에입금내역이 이따금씩 찍히긴 했지만풍년이면 가격 폭락에 속이 꽉 찬 자식들을갈아엎어야만 했고흉년이면 원금도 못 건져농협 빚 독촉 고지서만 날아왔다 그래도 만선의 꿈 꺾을 수 없었던 가장길을 바꾼 배추 유통업도친구에게서 덥석 물려받은 철물점도구불구불한 벼랑길로 이어졌다 늘그막 남자는빈 배에 쿨럭쿨럭 기침소리만 싣.. 2020. 10. 9. 양주에 내리는 눈/김춘기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18. 10. 4. 사춘기라면 사춘기라면 김춘기 고춧가루 푼 라면이 가슴 속에서 끓는다. 뇌성 뿜던 우박이 교차로 아스팔트 위에서 돌연,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오월 아침 생라면 머리 빠글빠글 중2 딸내미로부터 벼락을 맞은 엄마의 마음 속에서. 시험기간 중에도 밤잠 없이 옥탑방에서 입술 붉은 장미가 되어 언니 .. 2013. 9. 17. 여름 하오, 남춘천역 여름 하오, 남춘천역 / 김춘기 도심의 등을 닦아주던 소나기가 철길을 가로질러 교외로 달려갔다. 전철역을 빠져 나온 여자들 핸드백 지퍼가 열리고 삼단양산이 모두 얼굴을 내밀며 오륜 빛깔의 꽃을 하나씩 피운다. 공원의 느티나무는 팔을 최대한 벌려 다시 그늘을 만들고 건달들을 불.. 2013. 6. 25. 이전 1 2 3 4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