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詩54 통조림 뉴욕에 가다 통조림 뉴욕에 가다/김춘기 황도 12궁 따라 돌던 태양이 양자리쯤에 닿는 춘분이 벌써 진지 구축했다고, 사월은 손난로 트럭에 싣고 달려와 아야진포구 일대에 노점 펼친다. 낮은 포복으로 울산바위 오르던 맵찬 바람이 주머니에 숨겨둔 부비트랩의 스위치를 누른다. 당황한 봄은 순간 납죽 엎드리고, 하늘은 중청봉에 진눈깨비를 한 겹씩 쏟는다. 대낮에도 꽃샘은 포구 일대를 쏘다니고는 마을 고샅길 아래 머리를 일찍 내미는 초봄의 새순들을 얼리고, 잠에서 먼저 깬 참개구리 눈망울을 궁굴리게 한다. 며칠 후, 남녘 따순 봄이 동해대로를 달려와 양양 들판의 뚜껑을 열자, 봄비 봄샘 봄동 봄꽃 봄병아리 봄미나리 봄아지랑이가 함께 촛불을 켜고는 마을마다 뛰어다니며 춤추고 미끄럼타고, 벼랑 위에서 엉덩이도 찌며 장기자랑 하는 .. 2012. 4. 17. 자목련, 춤 자목련, 춤 / 김춘기 생강냄새 풍기고 싶어서 맨 먼저 피어나는 생강나무꽃 노란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블록담장에 몸을 기댄 자목련이 새벽부터 구관조처럼 부리를 내민다 돋을볕의 금빛을 두르고 마음 속으로 캉캉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춤을 춘다 프랑스에서 유행했다는 캉.. 2012. 4. 17. 면벽 면벽/김춘기 꽃이 피거나 지거나 하늘이 웃거나 울거나 북한산 인수봉이 백운대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처럼 달마대사가 중국 숭산 소림사에서 9년간 좌선 면벽面壁 끝에 바위가 되었다는데 나는 매일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에 두 눈을 집어넣은 채 면벽하고 퇴근하면, 다시 신제품 티브이 앞에 붙어 앉아 있는데 순환선 전철에서는 학생도 취준생도 대학교수도 휴가 중인 군인도 수진이 엄마 아빠까지도 진종일 스마트폰에 두 손 모으고 면벽하는데 먼 훗날, 우리는 모두 도통하여 무엇이 될 거나, 몰라. 면벽(제주어) 꼿이 피거나 지거나 하늘이 웃거나 울거나 북한산 인수봉이 백운대에 꾸러앚고 비념ㅎ.는 것추륵 달마대사가 중국 승산 소림사에서 9년간 좌선 면벽 끗에 바우가 뒈엇다는디(뒈엇덴 ㅎ.는디) 나는 메날 ㅅ.무실이서 컴.. 2012. 3. 28. 전화/김춘기 하늘 전화 / 김춘기 전화선을 타고 오는 어머니의 음성처럼 가을비가 내린다 아침 창가에서 고향에 홀로 계신 아버지와 통화하고, 한낮 사무실에서 불알친구의 입원소식을 듣고 내복 잘 받았다는 막내 이모의 손전화를 받고는 순간,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러나 신호 없는 벨소리 가슴 속에만 몇 줄 남겨진 재작년 겨울 함박눈 내리는 날 꽃상여를 타신 당신의 나지막한 목소리… 오늘도 내게 하늘 전화로 ‘춘기야! 잘 지내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소리 없는 그 목소리가 가슴에 빗금을 긋는다 하늘 전화(제주어) 전화선을 탕고 오는 어머니의 음성추룩 ㄱ.슬비가 ㄴ.린다 아칙 창가이서 고향에 혼차 계신 아버지광 통홯.고, ㅎ.ㄴ낮 사무실이서 불알친귀의 입원 기벨을 듣고 내복 잘 받앗덶.는 막냉이 이모의 손전화를 받.. 2012. 3. 23. 이전 1 2 3 4 5 6 7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