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울음을 볶다<교원문학상 수상작>
매미울음 볶다/김춘기 아침부터 매미가 제 울음을 굵은 체에 쳐서 볶는다 발가벗겨진 말복 햇살이 테팔 프라이팬에서 탁탁 튀어 따끔따끔하다 붉은 꽃 배롱나무가 고개 흔들며 몸을 털고 있다 전봇대에 납작 엎드린 털매미, 참매미, 애매미 느티나무 어깨와 겨드랑이에 다닥다닥 붙은 쓰르라미, 깽깽매미, 두눈박이좀매미 혼성합창 경연 중이다 정오쯤부터 산 넘어, 개울 건너 재수생, 대학생, 취준생 매미들까지 무더기로 프라이팬을 들고 몰려온다 동네 참깨, 들깨 죄다 퍼 날라 달달 볶는다 한쪽에선 기름에 지글지글 녹두 지짐이 육적굽기, 계란말이, 꼬치꿰기 야단법석 시끄럽다 앞마당 마른 솔가지 타는 화덕 국 끓는 열기에 속옷이 다 젖는다 벽오동나무는 옆에서 눈 감고 부채질 중이다 큰어머님, 작은어머님, 고모님, 서울 누님 ..
2009.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