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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1급 연장/마경덕 1급 연장/마경덕 인부들이 떼로 모여 드릴을 돌린다 밤낮이 없는 한철 공사 울음 끝이 뾰족하다 허공에 구멍이 나는 시간, 소리에 감전된 감나무가 툭툭 풋감을 떨어뜨린다 평생 울지 않는 암컷들은 어디에 있나 그악스레 울음을 돌려야 무덤덤한 암컷의 심장이 뛰리라 거침없이 달려와 사람의 가슴까지 뚫어버리는 저 1급 연장 지하에서 수년 갈고 닦은 매미기술자들, 몸이 연장이다 그늘 밑 낮잠까지 단숨에 통과해 어디론가 달려간다 공사 기일이 다급하다고 찬바람이 불기 전 마쳐야한다고 울음은 더욱 사나워진다 허공마저 출렁거리는 저 동력은 어디서 끌어오는 걸까 잠깐 퓨즈가 나간 사이 재빨리 구멍 난 자리를 복원하는 허공 점점 달아오른 공사에 감나무는 퍼렇게 질려 가는데 날을 갈아 끼운 수컷들, 또 드릴을 돌리기 시작한다 2023. 11. 1.
나무의 건축법/오새미 나무의 건축법/오새미 햇살이 길게 팔을 늘이고 바람이 살랑살랑 찾아오는 언저리에 튼튼하게 터 잡은 나무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공사 땅을 깊게 파 잔잔한 자갈과 모래를 섞어 철재처럼 굳건한 기둥을 세운다 바위가 가로막기도 하지만 틈을 지나가며 감싸는 유연한 공법으로 해결한다 굵은 줄기로 층층이 쌓아가며 넓고 푸른 잎사귀로 인테리어를 한다 전기공사는 벌과 나비의 일 꽃들이 눈부신 조명을 켠다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우듬지 테라스 날아가는 음표들이 햇빛에 찰랑댄다 더욱 깊어지는 초록 그늘 나무의 건축이 완성되는 날 하늘은 드넓은 정원이 되어주었다 2023. 10. 26.
값/이태정 값/이태정 밥값도 못 해요, 밥값은 겨우 해요 언제부터 서로를 밥값으로 매겼는지 밥이란 갑甲에게 치르는 뜨거운 몸값 ― 이태정, 『빈집』, 책만드는집, 2022. 2023. 10. 24.
죄와 벌/이소영 죄와 벌/이소영 붕어빵에 붕어 없고 비엔나엔 비엔나커피 없고 쥐포엔 쥐가 없고 세고비아엔 기타 없다고 검사님, 죄가 되는 건 아니죠, 궁금해서 세월호에 세월 없고 정의구현에 정의 없고 위안부에 위안 없고 아동보호에 보호 없다면 판사님, 벌을 받는 거 맞겠죠, 궁금해서 ― 이소영, 『두근두근 우체국』, 책만드는집, 2023. 2023.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