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앙금/김영주 앙금/김영주 들끓던 아우성도 이명만 남습니다 피 흘린 시간들도 꾸들꾸들 눅었구요 내리고 가라앉히니 고요합니다 편안합니다 2023. 7. 11. 느티나무/나석중 느티나무/나석중 괜찮다 몸 한구석에 귀뚜라미가 울어도 보이지도 않는 귀뚜라미는 왜 와서 우는지 요즈음 보이지도 않는 아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 때 나는 깜짝깜짝 뉘우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나에게 서운한 때 많았을 거라고 그러니 아들아 너는 걱정하지 마라 너도 일가를 이룬 나무, 몰아치는 비바람 잘 견디며 귀뚜라미처럼 괜히 와서 우는 일 없도록, 해가 짧아지면서 오른쪽 무릎에서 악기 소리가 나지만 몸이 알아서 현 한 줄 심심치 않게 튕겨주는 일 이제 뼈가 닳고 가슴이 밭는 일도 괜찮다. 시선집 『노루귀』 도서출판b 2023년 2023. 7. 10. 잠지/오탁번 잠지/오탁번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한 밥 얻어먹겠네 2023. 7. 3. 어머니의 양식/신병은 어머니의 양식/신병은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후에야 어머니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렇게 창창하던 분이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이 일용할 양식이 떨어졌는가 봅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게지요 어머니는 지금 남아있는 몇 개 목소리로 견디는가 봅니다 가끔 드리는 전화 한 통으로 사나흘을 견디곤 하지만 목소리도 유효기간이 있어 전화로 하는 목소리, 얼굴로 하는 목소리, 장남이 전하는 목소리, 동생이 전하는 목소리의 약발이 각기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유효기간이 제일 긴 것은 오래전에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빛깔로 기억 속에 남아 함께 저물어 가고 있는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단번에 눈이 빛나며 '그럼, 니 아버지는 그랬제' 소녀처럼 해맑은 웃음도 띱니다 오늘 아침 한 통의 전화.. 2023. 7. 3. 이전 1 ··· 32 33 34 35 36 37 38 ··· 2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