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만횡청류(蔓橫淸流)를 위한 따라지 산조(散調)/정휘립1 詩, 통신1호 -만횡청류(蔓橫淸流)를 위한 따라지 산조(散調) 1정휘립 시(詩)여,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는, 지지리도 잘난, 시여, 그대는 왜 그토록 많은 헛소리를 잔뜩 들고 있나뇨 주둥이 가는 어깨 허리춤 엷은 등판 두 손모가지에 물고 이고 지고 메고 얹고 차고 끼고 또 그것도 모자라 윗도리 아랫도리 주머니란 호주머니 뒷주머니 속주머니 윗주머니 동전주머니 조끼주머니 속바지주머니까지 가득 잔뜩 철렁철렁 채워 넣고 울룩불룩 뒤뚱뒤뚱 거리면서도 꽉 쓰러져 엎어질 줄 모르나뇨 황당한 네 배포에 깔려 내 쥐포 될까 하나니 밥 정情 -만횡청류(蔓橫淸流)를 위한 따라지 산조(散調) 4정휘립 딸넴아, 지발 아무나 허고 밥 같이 먹지 말거라, 잉? 이 에미도 읍내 장날 품 팔러 나갔다가 그냥 그리 된겨, 거시기.. 2023. 6. 23. 밥주걱/박경남 밥주걱/박경남 내 별명은 밥주걱이다 단지 얼굴이 넓적하다는 이유로 붙여진 밥주걱은 딸이 내리 셋인 우리 집에서 다른 형제와 차별된 또 하나의 나였다 노래를 잘하는 언니는 꾀꼬리 얼굴이 아기주먹처럼 참한 동생은 이쁜이 하필이면 나는 밥알 덕지덕지 묻은 볼품없는 밥주걱일까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를 적마다 별명을 입에 달고 다니던 친척 아저씨를 원망하면서 골목에서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다녔다 평생을 꼬리표처럼 지녀야 할 그 이름을 단번에 뗄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라고들 입방아 찧을 무렵 대구의 한 예식장에서 아버지 손잡고 첫 걸음을 옮길 때 "우리 밥주걱 입장합니다!" 나지막한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목청껏 추임새를 넣듯 친척 아저씨의 엇박자 완창! 봉숭아 씨방 .. 2023. 6. 23. 바깥에 갇히다/정용화 바깥에 갇히다/정용화 우리 집 현관문에는 번호키가 달려있다 세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가차 없이 문이 나를 거부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바깥에 갇히고 말았다 안과 밖이 전도되는 순간 열리지 않는 문은 그대로 벽이 된다 계단에 앉아있는 30분 동안 겨울이 왔다 바람은 골목을 넓히려는 듯 세차게 불고 추위를 모르는 비둘기는 연신 모이를 쪼아댄다 내 것이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어디 문뿐이겠는가 낡을 대로 낡아버린 현수막이 바깥에 갇힌 나를 반성도 없이 흔든다 걸터앉은 계단이 제멋대로 흩어지는 길 위의 낙엽이 새들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허공이 나를 구속하고 있는 바깥이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지금 바깥이다. 2023. 6. 18. 보랏빛, 그 꽃잎 사이/김우진 보랏빛, 그 꽃잎 사이/김우진 1. 고향에서 감자 한 상자를 보내왔다 감자 꽃에 앉았던 땡볕도 테이프에 끈적끈적 묻어있다 호미에 딸려 나온 하지의 낮달과 밭고랑을 지나던 바람도 따라왔다 끼니마다 밥상에 고향의 안부가 올라왔다 어느 날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몇 개 남은 감자들이 허공을 향해 하얀 발을 뻗고 있었다 먼저 나가려고 발들이 서로 엉켰다 흙이 그리운 감자들을 고이 화분에 묻어주었다 2. 보랏빛, 그 꽃잎 사이로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어머니가 보인다 밭고랑에 엎디어 감자밭을 매다가 어린 내 발소리에 허리를 펴던, 찢어진 검정고무신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흙 묻은 발가락, 오늘 그 어머니를 만났다 뻐꾸기시계가 감자 꽃을 물고 온 날이었다 2023. 6. 18. 이전 1 ··· 34 35 36 37 38 39 40 ··· 2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