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옷이 자랐다/최순향 옷이 자랐다/최순향 구순의 오라버니 옷이 자꾸 자랐다 기장도 길어지고 품도 점점 헐렁하고 마침내 옷 속에 숨으셨다. 살구꽃이 곱던 날에 2023. 5. 19. 뇌우/오세영 뇌우/오세영 모락모락 구름 속에 풀무소리 요란하다 대장장이 망치소리 벌겋게 단 시우쇠 참물에 담금질 끝나자 하늘 고운 무지개 2023. 5. 19. 봄은 전쟁처럼/오세영 봄은 전쟁처럼/오세영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어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튀어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2023. 5. 18. 새벽시장/정연홍 새벽시장/정연홍 키를 꽂으면 부르르 몸을 떤다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바퀴 달린 코뿔소 사내는 엑셀러레터를 깊이 밟는다 드문드문 불 켜진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그들의 실루엣 어둠 속 고양이들이 청소부의 빗자루를 툭툭, 건드리는 사이 간밤의 오물자국들이 바퀴에 눌러 흩어진다 골목길이 급히 허리를 휠 때마다 조수석 여자가 자리를 고쳐 앉는다 뒤로 젖힌 그녀의 얼굴에 선잠이 머리칼처럼 흘러내린다 사내는 여자를 돌아보고 잠시 웃는다 저들이 살아왔던 길들도 저렇게 급커브였을까 수금되지 않던 수수수 단풍잎 밤이 되면 안방까지 점령하던 빚쟁이들, 이삿짐을 꾸리던 그날 밤도 골목길은 휘어져 있었다 새벽 야채시장, 밤새 달려왔을 초록의 잎들이 사내의 트럭으로 옮겨진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도 척척 자리를 잡고 정좌하는.. 2023. 5. 15.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2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