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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명태/임영석 명태/임영석 입을 짝 벌린 명태 한마리 묶어 자동차 트렁크에 몇 년을 달아 놓고 다녔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놈은 눈을 더 부릅뜨고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몇 년을 굶은 놈의 몸을 만지니 이미 몸은 새가 되어 날아가고 두 눈만 살아서 바다로 돌아가겠다는 자세다 몇 년을 굶은 마른 명태의 입에서는 본능의 힘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요동을 치는지 실타래가 삭아 더는 묶어 놓을 수가 없다 2023. 2. 23.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를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 갓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 2023. 2. 22.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 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 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2023. 2. 4.
쏘주/정용국 쏘주/정용국 소주보다 쏘주에는 진한 눈물 스며 있다 고맙고 마음 짠한 사람들이 만났을 때 소주는 쏘주가 되어 눈자위를 적신다 쌍시옷의 위세가 거칠게 터져 나와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꼈을 때 쏘주는 위로가 되어 굳은 어깨 감싼다 착한 술 소주보다 깡다구가 조금 쎈 쏘주의 쓰디쓴 맛 알 사람은 다 알지 쓴맛에 쓴맛을 더해 주먹 불끈 쥐게 하는 2023.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