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1109 성선설(함민복) 묘사보다는 의미 부여가 더 좋은 시이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 「성선설」전문 잘 쓴 시의 대부분은 좋은 묘사보다는 '의미부여'다. 의미부여는 상상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서술하거나 아름다운 말로 치장을 했다고 해도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되기 힘들다. 함민복 시인의 3행밖에 되지 않은 저 시도 울림을 크게 준다. 어떤 과학으로도 태아의 손가락이 열 개로 형성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 태아의 노력"이라는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실로 시인이 아니면 이 위대한 여정을 저토록 명쾌한 의미부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시인이 되느냐 마느냐는 이렇게 대상에 어떤.. 2023. 2. 27. 족쇄/서상만 족쇄/서상만 훌륭한 아비이고 싶었다 새끼들에게는 혹, 총을 갈겨서라도 훌륭한 아비이고 싶었다 새끼들에게는 혹, 담장을 넘더라도 훌륭한 아비이고 싶었다 새끼들에게는 죄지으면 벌 받는 걸 다 알면서도 새끼들에게만은 시집『사춘思春』2017. 책만드는집 시인선 2023. 2. 23. 바람의 두께/안도현 바람의 두께/안도현 씨근덕씨근덕 그렇게 몇날을 울던 제 울음소리를 잘게 썰어 햇볕에다 마구 버무리던 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때맞춰 배롱나무는 달고 있던 귀고리들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울음도 꽃도 모두 처연한 무늬만 남았습니다 바람의 두께가 얇아 졌습니다 2023. 2. 23. 상계1동 수락산 입구/김기택 상계1동 수락산 입구/김기택 해마다 조금씩 기우는 집들 판자와 천막과 비닐로 지붕을 기운 집들 나무 기둥과 벽돌에서 푸른 이끼 자라는 집들 하루 종일 빨래만 널려 있고 사람은 안 보이는 집들 숨 쉴 때마다 변소와 하수도 냄새 들썩거리는 집들 비가 오려고 하면 마디마디 관절이 쑤시는 집들 해마다 봄이 되면 아픈 곳이 갈라지고 터지는 집들 페인트 냄새 마르지 않은 고층 아파트 바로 밑에서 큰 열대 초목 화분에 신장개업 띠를 두른 영양결핍 옆에서 땅값이 오르기를 끈질기게 기다리며 있는 힘을 다해 낡아가는 집들 2023. 2. 23. 이전 1 ··· 39 40 41 42 43 44 45 ··· 2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