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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時調205

가을 택배/김춘기 가을 택배 김춘기 가을이 애월항 곁에 택배회사 차렸답니다 성산일출봉 아침 햇살 두 병, 우도 서빈백사 은물결 찰랑찰랑 세 양재기, 산양곶자왈 피톤치드 머금은 공기 되 가웃, 월령포구 노을로 빚은 약주 한 주전자, 새별오름 시월 그믐밤 별밭 반 평, 백록담 아래 물수제비뜨는 달빛 세 접시, 가파도 해녀할망 주름진 미소 한 보시기, 그리고 포장지에는 절물휴양림 은목서 향기 골고루 뿌려서 하늘로 보내드립니다 어머니 내일모레가 열 번째 기일이군요 2020. 9. 22.
아버지 속울음/김춘기 아버지 속울음 김춘기 우리 집 토종 칡소 새끼 낳았습니다 백일 지나 젖 뗀 송아지 우시장에 갔습니다 어미 소 꺼멍 두 눈은 호수가 되었습니다 연체이자 독촉장에 밤 지새던 아버지 여물에 콩을 넣어 쇠죽 끓이십니다 줄담배 피우시면서 매일 끓여 주십니다 2020. 9. 19.
종택, 아침 밥상머리 종택, 아침 밥상머리 김춘기 옛날 강릉 김씨 종택 아침 밥상머리렷다 대청에서 식구들 죄다 모여 식사하는데유, 새 며느리 순간 거시기가 급했다지유 그래도 궁디 힘 꾹 주면서 시부모님께 ‘요것 드시구요, 조것두 잡수셔유’하면서 맛깔나게 반찬 놓아드렸다지유 그러나 끝내 참을 수 없는 그 방귀, 두 무릎 비비 꼬며 꾀를 낸 며늘아기 잠깐 숭늉 가지러 부엌에 다녀온다는데유 버선발 옮길 때마다 뿡~ 뿡~ 뿡~ 꽃향기 날렸다나요 2020. 9. 18.
아버지 전장 아버지 전장戰場 김춘기 6 . 25 때 아버지는 꽃미남이셨답니다. 영장 받으신 당신, 바로 신분 바뀌셨지요. 마을 사람들 만세소리에 마을 어귀 미루나무 두 그루 종일 먼 산만 바라보았고요. 새색시 울 엄니 정화수에 뜨던 북두칠성 푸른 별들, 눈물 그렁그렁했지요.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는 시베리아 왜바람 지옥이었지요. 대동맥 혈류처럼 울컥울컥 흐르던 핏빛 낙동강 언저리 불꽃 빗발치는 야전 산허리, 일등병 이등병 계급 없는 학도병들 목숨은 하늘이 쥐고 있었지요. 은빛 따발총알이 쓩~ 쓩~ 쓩~ 날아오면, 당신 곁 전우들 깡 마른 몸은 돌풍 앞 수수깡처럼 픽↘ 픽↘ 픽↘ 꺾였고요. 빽↗ 빽↗ 빽↗ 마지막 비명은 들풀이 얼른 안았답니다. 2020.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