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밭/時調205 청명 청명 김춘기 강가에서 붓을 꺼내 물감 찍는 산능선 골짝마다 타는 불길 아버지 가시는 길 저음의 뻐꾸기 울음 봄비에 젖고 있다 길 잃은 햇살 머물던 자리 목 쉰 바람 불러놓고 백양나무 우듬지에 문상 온 새들 둘러 앉아 해종일 다비식 중인 산, 하늘도 눈이 붉다 2008. 3. 1. 암탉의 비애悲哀 암탉의 비애悲哀 김춘기 눈곱 낀 보리수 눈알 종일 궁굴리면서 곰팡내 피어나는 골방에서 아메리카 음식만 먹고, 백색 항생제쯤은 조미료라며 밤낮의 구슬을 꿰고 꿴다. 미국은커녕 옆집 마실 한번 못 가보고,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줄 아는 너. 눈부신 알전구를 태양이라며, 물 한 모금 마시고도 경배 또 경배. 주인장에겐 평생 놀고먹어 미안하다고, 두 발 모으며 고개 꾸뻑꾸뻑. 백야의 천국이라며 토막잠도 아끼면서 혼신을 다해 알을 낳고, 또 낳고. 그러나 온몸 맥이 탁 풀렸다. 꿈에서도 상상치 못한 어느 날의 혼절할 그 귀띔 무정란! 생명 없는 생명을 낳는 숨만 쉬는 기계라는… 2008. 3. 1. 아내 아내/김춘기 일 만년 전 바위와 소나무 지구별에서 만나 배에 올라 어깨춤 추며 갈매기처럼 살고 있다. 만 년 후 미리내강에서 비목어* 로 다시 만. 나. 리. *비목어(比目魚): 당나라 시인 노조린의 시에 나오는 외눈박이 물고기 2008. 3. 1. (옴니버스시조)아침을 클릭하며 아침을 클릭하며/김춘기 1. 아침을 클릭하며 한 여자가 출장 간다. 새벽 별 곁들여 캡슐 한 알 이온음료에 타 마시고,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시간을 잘게 썰며, 공항으로 차를 쏘는 여자. 초음속 비행기 띄워 창공을 가른다. 실리콘 유방에 일회용 브래지어 착용감이 좋다는 에스라인 몸매. 청담동에서 얼굴 견적 다시 내겠다는 미스 아시아. 카멜레온 선글라스에 다국적 언어 줄줄, 초현실파 깍쟁이. 일주일 연애한 로봇과 동거쯤은 해야겠다는 비혼주의 얼짱. 손가방엔 일급 비밀파일, 천리안렌즈, 해저 여행티켓 깊게 숨긴 유리 같은 여자. 빨간 머리 휘날리며, 은빛 오픈카로 바다 위를 질주한다. 점심은 테이크아웃 미니 버거에 블랙커피 한잔. 하오엔 휴게방에서 산소 샤워하는 신소재 인간. 홍콩 페이 비상 결재하고, 검지.. 2008. 2. 28.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