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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314

DMZ, 늦은 가을 DMZ, 늦은 가을/김춘기 가을이 강물에 실려 바다로 흘러간다. 잊을 수 없는 것들 지병처럼 안고서 이념에 덧난 상처가 녹슨 철모에 기대어 있다 양산도 구성진 가락 봉산탈춤 청보리밭 날마다 산이 내려와 사방치기 하던 그곳 아이들 발자국소리 지뢰 곁에 묻혀있다. 가시여뀌 숨죽인 샛강 감국 향에 잠긴 산녘 쇠백로 울음 혼자 국경을 넘는 하오 강물이 가을을 싣고 어머니 품으로 흘러간다. 2015. 10. 4.
봄은 분주하다/김춘기 봄은 분주하다/김춘기 심술쟁이 꽃샘 한 떼 징검다리 건너고 있다 현암초교 통학버스 아이 몇 싣고 간 뒤 봄바람 머플러 꺼내 겨울 꼬리 터는 아침 마당 어귀 백목련 앞산 능선 바라보며 향기로 지은 엽서 가지마다 걸어놓자 물안개 산을 오르며 난전 펼쳐놓는다 폭포 곁 숲길 따라 새소리, 바람소리 기지개켜는 나무들 왁자지껄 부산한 하루 사월은 산과 들 곳곳 꽃집 개점 중이다 2015. 10. 4.
서울증후군 서울증후군 - 구룡마을* 김춘기 눈치 빠른 고양이들 퇴거한 지 오래전 목쉰 바람 몇 줄기 남아 깃발 흔들고 있다 골목 끝 집 잃은 쌀개 빈 젖 물리는 아침 응달쪽 시궁쥐 배를 쥐고 있는데, 햇발은 큰길 건너 양지마을만 비춘다 하늘은 짙푸르지만 담벼락은 골다공증 양철지붕 판잣집 이명까지 달고 산다 텃새들은 오늘도 보건소나 들락거리며 긴병은 견딜 수밖에 통장마저 빈 껍질뿐 작달비는 왜풍 따라 온 동네 휘저어도 늙은 집은 힘을 다해 제 터전 지켜낸다 동洞에서 덧난 상처에 빨간 딱지 연신 붙여도 여의도 철새, 촉새 비상행로 개통소문 하늘 번지 마천루만 별빛, 달빛 독차지… 어쩌나 중환자 서울 시름 깊은 저 한강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판잣집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 2015. 10. 4.
비와 저수지 비와 저수지 김춘기 비 오는 날 저수지에서 낚싯대 드리운다 마파람 그 틈새로 사선 긋는 빗줄기 다발 초등교 시험 보는 날 종아리 울리던 회초리들 수면의 찌 춤춘다 피라미쯤 걸렸나보다 빗방울 따라 그려가는 동그라미 물결 향연 손 뽀얀 면장집 금자 시험지 만날 흔들었지 2015.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