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기억할 만한 지나침/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3. 12. 9. 편/정철 편/정철 "내 편은 없어." 미안하지만 이런 말은 없다. 누구에게나 내 편 한 사람은 있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 15년을 독방에 갇혀 꼼지락거린 오대수.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징그러운 군만두를 수없이 씹으며 절망의 바닥을 경험한 그에게도 내 편 한 사람은 있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그의 탈출을 도왔다. 그가 누구일까? 오대수의 내 편 한 사람은 바로 오대수 자신. 내 인생 끝까지 내 편은 바로 나 자신. 내가 나를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나, 힘내세요! 2023. 12. 7. 네안데르탈 11/박우담 네안데르탈 11/박우담 ― 시간의 목덜미 나는 시간의 목덜미를 알고 있다 그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 사이에 있다 시간은 상반신이 염소이고 하반신이 물고기인 판의 아버지의 아버지 나는 아직도 필봉산 언저리 학교에서 공을 차는 마지막 네안데르탈인 축구화 끈을 묶고 운석을 차 올리듯 시간의 축구공을 우주로 차올린다 뻥 뻥 뻥 뻥 차올린다 수염이 흰 염소들이 담벼락 밑에서 풀을 뜯고 있다 오늘 밤 시간의 목덜미 같은 백무동 계곡 아래로 별사탕 같은 운석들이 쉬익 쉬익 쉬익 쉬익 떨어질 것이다 2023. 12. 6. 시적 장치의 삼각도 시적 장치의 삼각도 임 보 (시인, 충북대학교 교수) 시를 설명하기 위해 편이상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여 따져보기로 한다. 훌륭한 시는 좋은 내용이 적절한 형식을 빌어서 표현된 글이다. 나는 시에서의 좋은 내용은 시정신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며, 시다운 표현 형식을 시적 장치라는 말로 설명해 오고 있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좋은 시는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적 장치 곧 시다운 표현 형식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이것을 탐색하는 것이 우리시 이론을 세우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생각된다. 일반 산문과는 달리 시에서 즐겨 사용하는 표현법 곧 수사적 특성은 무엇인가. 나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판을 얻은 기존의 시들을 바탕으로 해서 시적 표현의 특성을 고구.. 2023. 12. 6.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1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