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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714

구두와 고양이/반칠환 구두와 고양이/반칠환 마실 나갔던 고양이가 콧등이 긁혀서 왔다 그냥 두었다 전날 밤 늦게 귀가한 내 구두코도 긁혀 있었다 정성껏 갈색 약을 발라 주었다 며칠 뒤, 고양이 콧등은 말끔히 나았다 내 구두코는 전혀 낫지 않았다 아무리 두꺼워도 죽은 가죽은 아물지 않는다 얇아도 산 가죽은 아문다. 2023. 12. 30.
빗소리/ 박형준 빗소리/ 박형준 내가 잠든 사이 울면서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여자처럼 어느 술집 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거의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손으로 만지기만 하던 그 여자처럼 투명한 소주잔에 비친 지문처럼 창문에 반짝이는 저 밤 빗소리 2023. 12. 30.
괜찮다/심동현 괜찮다/심동현 어느날 작은 새가 나무에게 말했다. 내 의자가 되어주고 내 동지가 되어 주는데 난 아무것도 해줄게 없어요. ​ 나무가 작은새에세 말했다. 너의 지저귐은 좋은 노랫소리였고, 너가 지은 둥지는 나의 옷이 되었다. 내게 앉은 너는 나의 난로였다. 그러니 괜찮다. ​ 2023. 12. 30.
연탄 한 장/ 안도현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2023. 12. 16.